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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란위기’와 자본주의 국가의 정당성 위기기획 주제 2025. 2. 27. 00:17
김선철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정치위기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군대를 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힘으로 계엄을 막고 광장의 힘으로 국회의 탄핵 표결은 이끌어냈지만, 광장은 갈렸고 음모론과 극단주의로 무장된 극우 세력은 부쩍 커진 목소리로 끝 모를 불신과 혐오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한국 사회를 밀어 넣고 있다. 극우 세력이 광장에 나타난 것, 혹은 ‘정치적 양극화’로 정치위기가 대두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위기는 이전과는 달라 보인다.
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야당과 검경, 주류 언론은 위기의 원인을 윤석열 개인과 주변의 ‘내란 동조세력’, 혹은 그의 극단적 지지자들의 ‘일탈’에서 찾고, 그들을 엄벌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이런 작업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지금의 정치위기는 기존 법질서를 정상화 한다고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 한국이 겪는 정치적 격랑은 자본주의 국가의 모순이 발현되는 세계사적 징후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시야만 넓혀봐도 알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현대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 할만한 서구 국가들은 이미 극우로 권력이 넘어가거나 그들에 의해 정치가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 지구적 극우정치의 부상이 그 반대편에서 더없이 심화된 불평등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체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좌파의 목소리와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공통된 흐름이다. 체제에 대한 불신은 좌우에서 항상 제기된 문제지만, 대체로 주어진 제도 질서 안에서 관리 혹은 통제되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국가 관리와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고금을 통틀어 국가는 사회적 불신과 불만이 지배 체제에 대한 심대한 위협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즉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지배의 정당성을 구축하는 것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삼는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투쟁은 언제나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왔다. 왕정 시대에도 기근이 오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민란이 일어나곤 했고, 이를 막기 위해선 최소한의 정당성 근거가 필요했다. 정당성의 문제는 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새 국면을 맞았다. 대공장에 기반한 산업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고, 착취에 저항하는 이들의 투쟁은 자본주의 국가에게 큰 위협이었다. 결국 유럽은 1848년 혁명에 휩싸였고, 동일한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식민주의 수탈에 기반해 초과 축적한 부와 점진적인 노동권과 선거권 확대를 통해 정당성의 기초를 닦아 나갔다. 대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국가 정당성의 요체로 자리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오제성 작(作) <조각에 대한 기억> 2024 ⓒKo_서울대학교미술관_2025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은 또다시 심대한 위기를 초래했다. 수많은 이들의 경제적 삶이 파괴된 조건에서 한쪽에서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내건 급진적 대중운동이 터져 나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의 불안과 좌절을 차별과 혐오, 폭력으로 전환시킨 파시즘 운동이 팽창했다. 대공황이 촉발시킨 체제 위기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을 거치면 서야 해결의 단초를 찾게 되었는데, 대공황 직후 국가개입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미국의 ‘뉴딜’이 그 모델을 제공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모토 아래 ‘복지국가’가 등장하며 전후 자본주의 국가 정당성의 기초가 되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세계 자본주의는 또다시 축적의 위기에 봉착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위기 대처 방편으로 국가개입의 축소와 시장의 확대를 요체로 한 신자유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1973년 칠레를 필두로 영국과 미국으로 확대된 신자유주의는 1989년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전 세계로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국가의 사회보장과 공적 서비스는 크게 축소되었고 다수의 경제적 삶은 시장 논리에 종속되었다. 동시에 세계은행이나 IMF, WTO, 세계경제포럼과 같이 선출되지 않은 관료/전문가가 주도하는 국제기구들이 개별 국가의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빈곤과 불평등이 확대되고 시민적 권리가 축소되는 조건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새로운 정당성의 근거를 필요로 했으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터진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그나마 남아있던 국가 정당성의 근거를 심대하게 뒤흔들었다. 규제 완화를 틈탄 미국 금융기업들의 부실한 주택담보대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경기침체로 이어지며 미국에서만 천만이 넘는 이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위기를 불러왔다. 그러나 정부는 서민의 삶 보다 위기를 만들어낸 금융사 등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썼고 이에 대한 분노가 좌우에서 터져 나왔다. 이후 고조된 불신과 불만,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은 결국 트럼프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2008 위기 이후 스페인, 그리스, 영국 등의 유럽권 국가나 중남미 국가들도 비슷한 격랑을 겪었고, 더 많은 나라들은 장기 경기침체에 대응한다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화했다. 한국도 그 중 하나였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성장률을 보이기 힘든 조건에서도 한국 정부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앙 아래 기업 권력을 강화하는 전략만을 추구했다. 그 결과 기업은 더없이 비대해졌으나, 서민의 삶은 곤궁해졌다. 세계 최고를 달리는 노인 빈곤율,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해 결혼도 자녀도 구직도 포기하는 청년층의 증가, 가진 자들 만을 위한 잔치가 되어버린 정치 현실, 여기에 연이은 재난과 참사 때마다 ‘국가는 어디에 있나’를 묻는 현실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국가와 체제 정당성의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1930년대 파시즘이 대공황 이후 대중이 가진 삶의 불안과 불만을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한 세기가 지나 전 세계적으로 목도되는 극우정치의 발흥과 체제 불안정성도 결국은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의 불안과 불만을 그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헬조선’, ‘n포 세대’, ‘수저론’이 유행했던 시기와 극우 세력이 부상했던 시기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비상계엄 이전’에 이미 지금의 ‘내란위기’가 준비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정치위기가 ‘헌정질서’ 회복, 즉 비상계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다.
불평등이 사상 최대 수준을 보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더없이 추락한 현실, 여기에 기후위기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조차 위협받는 현실은 지금까지 국가를 지탱해왔던 ‘성장’이나 ‘대의 민주주의’와 같은 정당성 기제들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가 혹은 체제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틀 자체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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