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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로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기획 주제 2024. 8. 28. 00:25
쥬
진격의 K-방산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국제 무기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19~2023년 2.0%로 5년 연속 세계 10위에 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목표는 2027년까지 세계 4대 무기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5.8%의 점유율을 차지한 중국을 앞지르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무기 수출 수주액은 10여 년 전만 해도 연간 30억 달러 안팎에 머물던 것이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40억 달러로 급증했다. 2024년 목표인 200억 달러도 현재 추세라면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아시아와 북미 중심이던 한국 무기산업의 수출 시장은 중동, 유럽, 중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 무기 수출 수주액 추이 (출처: 방위사업청, 산업연구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비극도 무기산업에는 호재다. 2023년 산업연구원이 낸 보고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 같은 신흥 무기 수출국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표현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무색하게, 한국은 제3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공급하는 등 이 기회를 적극 활용 중이다.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전차, 자주포 등 대량의 무기를 지원한 폴란드는 한국산 무기로 빈 무기고를 채우고 있다.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한 ‘50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의 무기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한국은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격화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수출해왔다.
무기산업은 전쟁산업
무기는 유일한 목적이 살상과 파괴라는 점에서 여타 상품과 성격을 달리한다. 무기산업의 근본적 문제는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무기는 독재자와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내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데도 쓰인다. 무기거래는 의료나 교육, 기후위기 대응처럼 더 시급한 곳에 쓰일 자원의 오용을 가져온다. 무기의 개발과 생산, 시험, 사용을 포함한 모든 군사활동은 심각한 환경 영향을 낳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방위산업은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을 죽여 자국민을 지키는 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전쟁이 무기산업을 촉진하는 것처럼 무기산업 역시 전쟁을 촉진한다. 무기산업이 전쟁과 무력분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이미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기거래는 무력분쟁의 발발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계적인 금융 기관들이 무기 회사, 특히 확산탄이나 대인지뢰 같은 비인도 무기 생산 기업들을 투자 배제 목록에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기산업은 담배, 도박 산업 등과 함께 죄악산업으로 여겨진다. 전쟁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고, 전쟁수혜활동이 정상적인 사업 활동으로 인정받는 한 전쟁은 사라질 수 없다. 무기를 사고파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당연시될 때 전쟁은 비로소 끝날 것이다.
한국 무기산업의 윤리적 문제
무기산업 일반의 문제에 이어 한국 무기산업의 윤리적 문제 몇 가지를 살펴본다.
(1) 무기거래의 불투명성
무기거래의 투명성은 책임 있는 무기거래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한국은 구체적인 무기거래 내역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통계인 국가별 수출입 액수조차 비공개한다. 정부는 해당 정보의 공개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그런 정보를 공개한다. 정보 공개에 따른 위험이 한국에만 있고 유럽 국가들에 없을 리 없는 만큼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렇게 거래가 불투명하다보니 한국의 무기 수출 관련 정보는 국내외 언론 보도나 SNS, 현지 활동가의 제보 등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산 무기는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무력분쟁에 사용되고, 독재자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동원된다.
(2) 분쟁에 사용되는 한국산 무기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총기, 장갑차, 곡사포 등 각종 무기는 웨스트파푸아 지역의 분리독립 운동을 탄압하는 데 쓰인다. 한국산 대전차무기 현궁이 2018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 연합군과 예멘 정규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현궁은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2017년 필리핀군의 민다나오섬 공습에 FA-50 경공격기가 사용되었다. 이는 FA-50의 첫 ‘실전’ 투입 사례로 당시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이른바 살상무기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한열, 김주열 열사처럼 튀르키예, 바레인, 스리랑카 등지에서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사용이 중지된 최루탄이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시민 수십 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당시 한국 시민단체들은 최루탄 수출 중단 캠페인을 벌여 추가 수출을 막아냈다.
웨스트파푸아 시가지를 누비는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출처: War on West Papua) (3) 독재자도 전쟁광도 환영하는 K-방산
한국은 금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라 불리는 예멘 내전에 깊이 개입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 무기를 수출한다. 많은 북미, 유럽 국가들이 이들을 무기 금수 대상으로 지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프리덤하우스가 비자유국 또는 부분자유국으로 분류한 국가 중 71%에 무기를 수출했고, SIPRI가 전쟁이나 무력분쟁에 개입된 국가로 분류한 국가 중 74%에 무기를 수출했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등 매년 한국에서 열리는 무기박람회에는 각국 군대의 무기 획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장관 및 군 수뇌부, 방위사업청장급 인사들이 ‘VIP’로 초청된다. DX KOREA 2022에는 37개 국가 대표단이 ‘VIP’로 초청되었는데 이중 14개가 전쟁이나 무력분쟁에 개입된 국가였다.
(4) 비인도 무기 생산 및 수출 시도
확산탄과 대인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성과 분쟁 후에도 남아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는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확산탄 생산 기업인 풍산, LIG넥스원, 코리아디펜스인더스트리(KDI) 등은 비인도 무기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많은 해외 공적 기금과 투자 기관에 의해 투자 제한 대상으로 지정된 상태다.
202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무기박람회 유로사토리 2024에서는 KDI가 불법 반입한 확산탄 소폭탄을 전시했다가 부스가 폐쇄되고 행사장에서 퇴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는 확산탄금지협약 당사국으로 프랑스로의 확산탄 이전은 금지되어 있다. 행사를 감시한 오메가연구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KDI 영업사원은 제품이 현재 생산 중이고 한국에서 사용 중이며 수출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KDI는 한화가 2020년 ESG 경영상의 이유로 확산탄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만들어진 회사이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KDI는 확산탄뿐 아니라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의해 금지된 대인지뢰 관련 무기체계(지뢰살포기, 포투발 살포탄 등)도 생산한다. KDI는 현재 논산에 신규 확산탄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유로사토리 2024에 전시된 KDI의 확산탄 소폭탄 (출처: Omega Research Foundation) 무기산업이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
무기산업으로 국내 및 국제 평화는 물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기산업의 잘못된 신화 몇 가지를 살펴본다.
(1) 무기로 평화를 지킨다는 신화
무기산업이 자국민과 우방국 국민의 ‘안보’에는 도움이 될까? 수출은 차치하더라도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평화를 지키려면 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방정책 기조로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로 안보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와 최근의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에서 보았듯 압도적인 힘으로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한국의 국방 지출은 2022년 기준 464억 달러로 세계 9위였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총 GDP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을 국방비로 지출해왔다. 한국이 재래식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 북한도 핵무기,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몰두하는 안보 딜레마가 초래된다.
사드(THAAD), F-35 등 한국이 큰돈을 들여 사들이는 첨단 무기체계는 더 공격적인 대북 정책을 부추길 뿐이다. 더 많은 무기는 효과적인 억지력이 아니며, 갈등 심화의 원인이 된다.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선제적 위협감소 조치를 통한 상호 군축이다. 내가 먼저 선의의 본보기를 보일 때 상대의 선의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2) 국방은 자산이라는 신화
무기산업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 내지 ‘신성장 동력’이라 불리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 지출을 “비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국방의 의미가 자산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가 우리 GDP를 늘리고,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 지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무기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면 무기를 사는 데 쓰이는 돈은 편익 없는 비용이다. 무기산업에 투자할 돈을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사업에 투자해도 부와 일자리는 창출할 수 있다. 전쟁 준비에 투자되는 돈은 불평등과 기후위기처럼 전쟁의 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3) 무기 수출로 경제를 살린다는 신화
내수가 아닌 무기 수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무역에서 무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그런 것처럼 어딘가에서 무기가 계속 소모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 것처럼 한국이 전쟁경제로 특수를 누리려면, 다른 나라의 전쟁을 말릴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추겨야 한다. 전쟁경제와 평화외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무기산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정치적, 외교적 독립성을 약화시킨다.
게다가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러북 접근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이 폴란드, 미국 등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국들에 무기를 공급하고,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현 상황은 이미 ‘대리전’과 같다는 지적이 있다.
저항과 평화의 목소리
한국에서도 무기산업에 저항하는 상징적 행동인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무기박람회는 무기의 생산과 거래를 촉진하기 위한 행사이다. 국내외 거대 무기 회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종 무기를 전시하고, 수출 상담과 실제 거래를 진행한다. 무기산업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은 국가 안보의 명분 아래 흑막 뒤에서 벌어지기에 무기박람회는 이 문제를 가시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한 해에 한 번 무기박람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당장 무기거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횡행하고 극도로 군사화된 한국 사회에서 전쟁과 무기거래를 부추기는 무기박람회에 저항하는 것은 무기 수출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무기박람회 DX KOREA 2022에서 직접행동을 하는 활동가들 (출처: 전쟁없는세상) 전쟁은 남의 나라에서 어느 한 순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전쟁에 공급되는 무기가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무기산업이 국제화된 오늘날 무기거래 없이 전쟁은 일어날 수 없고, 무기거래를 막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궁극적으로 무기산업으로는 평화도 풍요도 이룰 수 없다는 인식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무기산업은 기껏해야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뿐이며, 무기를 통한 평화 유지와 경제 성장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한국은 무기산업이 아닌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사업 등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무기의 힘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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