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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군산복합체 + 동물산업복합체: 산업과 정치라는 이름의 전쟁기계기획 주제 2024. 8. 28. 00:12
고정갑희
생산과 산업이란 이름으로 은폐되는 파괴와 학살: 군수산업과 동물산업의 결합
이 글은 전쟁이 생산체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그 체계를 완전히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필자가 오랫동안 관심만 갖고 있던 ‘군산복합체’와 ‘동물산업복합체’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을 전쟁과 연결해 보려는 시도다. 그리고 이 둘이 결합된 군·동물산업 복합체를 살피고자 한다. 지면이 제한된 이 글에서 이와 관련하여 충분히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힘들겠지만 현재의 지구지역적 상황과 전쟁을 고려할 때, 직면해야 할 문제로 생각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그리고 그 이전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니제르 분쟁, 수단 분쟁 등을 보면서 동물이 전쟁에 동원되는 ‘군·동물산업복합체’와 연결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보정치와 방산경제라는 이름으로 은폐되는 전쟁국가
지금의 상황은 ‘정치’라는 이름과 ‘경제’라는 이름에 얼마나 많은 군사주의적 지배권력과 폭력이 함께 하고 있는지, 문화라고 하는 이름과 일상이라고 하는 이름에 얼마나 많은 군사주의적 폭력이 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폭력의 구조를 밝히면서, 동시에 그 구조가 드러내는 증상들, 형태들, 상태들을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라고 정의 내린다. 이 말은 인간사회 정치가 얼마나 군사주의적으로 폭력적인지, 역으로 알려준다. 전쟁에 대해 쓰겠다고 하자 동료들은 말한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세계사는 모두 전쟁으로 점철된 듯하다. 왜 이런 파괴의 역사를 인류는 이어오고 있는가? 무엇이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가? 우리는 영구전쟁체계에 갇혀 있는가? 전쟁의 반대말이 평화인가?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곳은 평화로운가? 이 질문들은 정치이며 경제이며 동시에 집단적으로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한반도와 지구지역적인 상황은 전쟁 정치와 경제 즉 안보정치와 방위산업경제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최근 윤석열정부는 무기거래와 방산업으로 경제적 이윤을 더 적극적으로 남기려는 야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전쟁’을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윤석열대통령은 북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과거 냉전 시기의 이데올로기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는 2024년 8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힘을 모으는 국가 총력전 태세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쟁이데올로기를 여과없이 던지면서 오히려 남한 내부의 분열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70년이 넘게 남북이 나누어진 상황에서 적대관계와 전시체제를 부추키고 있다.
지구지역적으로도 여러 곳에서 전쟁과 내전이 진행 중이다. 2024년 8월 중순, 지금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에 폭격을 가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하마스의 지도자 하니예가 이란에서 암살당했고 이란은 미국의 중재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습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지역에서는 지난 9개월 동안 거의 매일 교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의 한 축구장에 2024년 7월 27일 로켓포가 떨어지며 1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헤즈볼라 보복에 나섰다.
군산복합체 + 동물산업복합체: 전쟁을 유지하는 일상의 엔진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자 토대인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와 ‘군·동물산업복합체(military-animal industrial complex)’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국가간체계로 이루어진 글로벌 사회는 자본주의적으로 군사주의적이고, 자본주의-군사주의적으로 제국주의적이다. 자본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장치로 군산복합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정부와 군수기업 복합체가 가장 강력한 형태를 유지하는 국가는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이러한 군산복합체는 부분적으로 동물산업복합체와 연결된다. 동물산업과 군사주의의 교차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군사적으로 동물이 사용되거나, 군사연구에 동물이 실험대상이 된다. 동물의 유전자를 연구하여 생물학적 무기나 방어기술 개발에 활용하기도 한다. 군사적 감지 기술로도 동물이 실험대상이 된다. 군사 퍼레이드에 동물이 활용되기도 한다.
‘군산복합체’는 오래전 1961년에 아이젠하워가 퇴임하면서, ‘동물산업복합체’는 1989년 바바라 노스케가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는 이 둘을 함께 생각함으로써, 전쟁을 둘러싼 기존의 개념들의 정의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지, 남성중심적인지 그리고 자본중심적인지 다시 보게 된다. 그러니까 여성과 동물이 불평등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쟁을 둘러싼 국가, 국방, 방위산업, 군사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의 개념 범주를 모두 다시 보아야 한다.
전쟁의 전과 후 그리고 전쟁 과정에 대해 ‘우리’는 폭력도, 살해도 인간을 중심으로 보아 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라는 관념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 인간이 반려, 실험, ‘축산’ 동물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전시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실상 인간과 관계맺고 있는 비인간동물들은 일상에서 늘 죽음에 노출되고 집단학살에 노출되고, 유전자변형에 노출된다. 하지만 이 글은 전쟁과 관련되는 ‘군·동물산업복합체’에 집중하려 한다. 특히 비인간 실험실 동물들과 전쟁의 수행 도구가 되는 많은 비인간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군사주의적 폭력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한 체제와 자본-군사-제국주의의 개념을 다시 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논의를 인간중심적으로 하는 것을 넘어 종관계와 전쟁 그리고 무기산업을 연결시킬 필요를 느낀다.
‘군산복합체’는 “거대한 군사체계와 대규모 무기산업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그 영향력에 대해 경고했다. “정부는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 획득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 주어진 권력이 부상할 재앙적 가능성은 존재하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결합의 영향력이 우리의 자유나 민주적 절차를 위협하도록 놔두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시드니 랜즈 외. 『군산복합체론』 지양사. 1984). 오래전인 1961년의 경고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으며 더 강력한 결합력을 갖고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국가의 군대와 비공식적인 동맹 관계로,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기득권이 되어 있다. 미국 정부와 방위 산업은 전쟁 무기 획득과 무기 공급에서 양측이 이익을 얻는 관계다. 이 용어는 미국 군대 시스템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사용된다.
2019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는 세계의 군비 지출이 1조 9,000억 달러라고 추산해 발표했다. 세계 인구 1명당 약 250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미국의 군사비와 안보비는 연간 9,000억 달러, 하루에 25억 달러, 1초에 3만 달러 가까이 쓰는 셈이다(『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책공장더불어. 2017). “미국 내에서 방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210만 명에 달한다. 주요 군산복합체 채용 회사인 〈아카라 솔루션즈(Acara Solutions)〉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연봉은 미 전체 평균보다 40% 높고,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의 2022년 매출은 7,410억 달러(약 978조 원)에 달한다.” 또한 미국은 세계 전역에 700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국방비 지출과 미군기지 구축은 기하학적이다. 군산복합체는 미국 전체 경제의 주요 엔진이며, 전쟁의 명분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인 ‘전쟁기계’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현 세계의 국가 방위비와 방위산업과 군사력 경쟁의 주요 원인이 된다. 2차대전 이후의 모든 전쟁은 ‘군산복합체’가 벌인 전쟁이며, 전쟁의 동기가 경제적이기도 하다.
미국 군산복합체와 정치의 연결을 보여주는 이미지. Ⓒ https://www.codepink.org/12422 군·동물산업복합체 또한 인간을 넘어 비인간동물에게 폭력적이다
동물이 전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최근에 논의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동물은 전쟁의 ‘도구’이자 ‘희생물’이면서도 ‘영웅’으로 등장한다. 이 중에서 군산복합체와 동물산업복합체의 결합 개념인 ‘군·동물산업 복합체’라는 개념 또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전쟁의 파괴력과 참상을 말할 때, 주로 어린이와 여성이 언급된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의 잣대를 어린이와 여성 같은 약자의 파괴로 둔다면, 동물 또한 희생물이 되어 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군·동물산업복합체는 전통적인 반군사주의에 내재된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 전쟁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파괴적인 폭력행위를 넘어 인간/비인간 모두에게 파괴적이다.
동물에게 가해지는 군사적 폭력은 동물사와 세계사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동물은 인간이 하는 대다수 활동에 그래왔듯이 전쟁에도 수천 년 동안 강제로 동원되었다. 수많은 군사적 폭력 중 하나의 예만 말한다면 1990년대 초 군대가 자금을 지원하던 한 의료 실험에서 대략 700마리의 고양이가 기계에 고정된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전투 중 뇌손상을 입을 군인들을 치료하는데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에서 이루어진 연구였다. 무기 연구에 동원되는 동물의 경우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영국의 경우 예를 들면 국방과학기술연구소가 전쟁관련 생체실험을 한다. 그곳에서 동물은 화학전 유독물질에 감염되고 폭발 부상의 피험자가 되며, 강제로 감각 자극물질을 주입받고, 고의로 부상을 입고, 세균 독소로 죽임을 당한다.
전쟁은 제노사이드, 페미사이드를 넘어 에코사이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은 비/인간 존재들을 그들의 동의없이 끌어들인다. 우리는 군사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개념과 범주를 성모순과 종모순에 기반하여 다시 써야 한다. 나는 여성이라는 젠더와 군사-자본-제국/식민주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아직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 성관계를 넘어 종관계와 전쟁을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관계와 함께 전쟁이 군사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식민주의와 연결된 고리를 살피는 일은 전쟁의 기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무수한 여성편력으로 많은 여성들의 인생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진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전쟁의 대학살〉을 무척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이 그림은 한국전쟁을 성별 대립으로 놓았을 뿐 아니라 여성들 쪽에 아이들과 자연(산과 나무 그리고 땅)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그림에서 전쟁 속의 비인간동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남성들, 그리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극단적인 정치의 장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피카소, 〈한국전쟁의 대학살〉 Ⓒ https://en.wikipedia.org/wiki/Massacre_in_Korea ‘우리’는 이제 전쟁이 인간들만이 아니라 비인간동물들을 동원하고, 도구화하고 학살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과 에코사이드의 관계도 인식해야 전쟁의 토대가 되는 군/동물산업복합체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비판과 전쟁의 토대가 되는 군대, 군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도처에서 군복입은 남자 정치 ‘지도자’들을 본다. 그들은 군수 통수권자들이다. 국가지도자는 자동으로 군통수권자가 된다. 이들은 평소 군복을 벗지만, 군복을 입은 사령관들이다. 젠더화된 세계 질서와 국제 정치는 방위와 안보라는 개념 위에 세워진 남성권력자들에 기반한 전쟁의 탑들이다. 국가간체계라는 ‘국제 질서’ 속에서 각국의 지도자-군통수권자는 군사력을 과시하고, 무기 경쟁에 항시 전쟁에 대비하는 힘을 과시해야 한다.
우리는 군산복합체와 군동물산업복합체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전쟁이란 인간들에 대한 침략과 폭력일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자연과 땅과 하늘에 대한 침략과 폭력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단순히 적국에 가하는 침략과 폭력이 아니다. 전쟁범죄는 제노사이드를 넘어 페미사이드와 에코사이드다. 전쟁은 군사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이득을 위한 특정 국가의 행위 차원을 넘어선다. 그리고 전쟁은 자신의 옛땅을 찾겠다거나 자신들을 공격한 자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전쟁은 지구 차원의 물리적 폭력이다. ‘우리’는 전쟁의 장치가 되는 군산복합체와 함께 군·동물산업복합체에 대한 비판과 저항 그리고 이 복합체들의 폐지를 향해 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은 생산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과 연관된다. 전쟁을 시장 체계에 맡기고 있는 현재의 생산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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