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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 독립이 아니라 사법 민주화다기획 주제 2025. 8. 27. 01:53
김종서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데올로기
12·3 계엄 이후 전개된 일련의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로 여겨지는 권력분립은 신화에 불과하고 사법권은 과도하게 비대해졌음에도 사법권 독립 논리에 가로막혀 적절하게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권력분립은 국민주권론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장치다. 주권자와 주권행사자가 분리되고 국민대표는 유권자의 의사에 구속되지 않는다(무기속위임)는 국민주권론에서는 필연적으로 국민대표에 의한 권력 남용의 문제가 남는데 이를 체제내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권력분립이다. 즉 국가권력을 몇 개로 나누고(권력의 분리), 각 권력(입법권, 집행권과 사법권)을 서로 다른 기관들에 나눠주면(권력의 분산) 권력기관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어떤 권력도 남용되지 않는 상태, 즉 권력균형상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견제와 균형). 역설적이게도 권력분립 원리는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면서도, 권력을 분리⋅분산시켜 놓기만 하면 권력남용은 없어지리라는 낙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은 금방 오류임이 드러났다. 권력분립은 때로는 정당을 통한 권력 통합으로, 때로는 권력남용이 있음에도 결코 견제는 이루어지지 않는 ‘권력 간 상호방임’으로 현실화되었고, 그 결과는 자유와 권리의 회복 불가능한 침해였다. 이를 극복할 유일한 방안은 권력에 대한 유권자=시민의 직접통제이지만, 이는 국민주권론의 무기속위임 구상과 배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국민주권론과 권력분립의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다.
권력분립의 한 축인 사법권은 사법권 독립이라는 의심스런 신화로 둘러싸여 있다. 이 신화에 따르면 구체적 분쟁에서 법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선언하는 권력인 사법권은 분쟁의 공정한 해결을 위하여 조직상 입법권이나 집행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함은 물론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사법권 행사, 즉 재판은 외부는 물론 사법권 내부로부터도 독립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강력한 신분보장까지 요구된다.
그러나 사법권이 독립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져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유주의적 허구’이다. 공정한 재판 여부가 독립된 법원에 소속된 법관의 “양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관의 주관적 세계관, 정치 성향, 경험, 편견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사법권 독립은 원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질 때 돌아오는 대가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니라 ‘법률가의 지배(rule by lawyers)’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이런 법률가의 지배는 단순히 사법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전체로 확대된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세력들이 다양한 갈등의 해결을 사법기관에 떠넘겨 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국회에서 걸핏하면 이뤄지는 고소고발이나 권한쟁의심판청구는 전형적인 예다. 반면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기관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공정한 판단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기관이나 재판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을 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고등법원 상고부 도입을 위해 재판을 거래대상으로 삼았던 대법원장 양승태나 법률까지 위반해가며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한 판사 지귀연은 대표적인 사례다.
논리적으로는 정치의 사법화가 선행되고 이에 따라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떠맡은 사법이 정치화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법이 정치화되었다는 인식이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기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정치세력이 문제 해결을 사법에 의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법이 이런 역할을 자임할 것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구나 사법적 분쟁해결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려주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정치적 해결에 비하여 매우 손쉬운 수단이다(20년이 걸려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상황을 비상계엄 후 단 4개월 만에 윤석열이 파면된 것과 비교해 보라). 이런 점에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상호의존적이며, 그 선후가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는 참혹하다. 선출된 국민대표에 의한 정치는 실종되고 선출되지 않은 밀실의 소수 법복귀족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사법통치(juristocracy)’가 전면화한다. 국민주권의 파탄이자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고리 끊기: 정당 개혁과 사법 민주화
정치의 사법화를 가져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극단적인 양당체제야말로 대화와 토론과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치적 토양이다. 거대양당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비례대표제의 전면화 또는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제시되지만, 결선투표 없는 소선거구제로 막대한 이득을 누려온 거대양당이 이에 동참할 리 만무하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거개혁을 논하기 전에 정당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전국정당이 아니면 등록조차 할 수 없도록 한 현행 정당법을 개정하여 지역정당, 군소정당의 설립이 가능해져야 공고한 양당체제를 허물 수 있고 선거개혁도 이루어낼 수 있다. 물론 양대정당은 이런 정당법 개정에도 동의할 리 없다. 그러나 정당개혁의 전망이 선거개혁의 전망보다는 밝은 것은 지역정당 등의 등록을 불가능하게 하는 정당법의 등록요건 조항들에 대한 사법적 시정의 가능성이 조금은 보이기 때문이다(2006년에 전원일치의 합헌결정이 선고됐지만, 2023년에는 위헌의견이 과반수인 5인에 이르렀다). 윤석열의 12·3 계엄 후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람들이 정당제도 개혁에도 좀 더 관심을 보여준다면 머지않아 정당제도 개혁은 현실화되리라고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만약 이런 관심⋅지원과 압력에 힘입어 정당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정치환경은 급변하여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 없이는 어떤 정치적 승리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할 것이고, 이는 정치를 사법화하려는 욕구를 꺾어버리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정치의 사법화를 바로잡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지역정당을 현실화할 정당제도 개혁이다.
그러나 정당 개혁이 사법의 정치화까지 바로잡지는 못한다. 경험적으로는 사법의 정치화란 결국 사법이 강자의 편에 선다는 뜻이다. 규범적으로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자에 유리한 판단이 내려진다. 사법의 정치화를 차단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문제 속에 이미 답이 있다. 법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외적 강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법권을 법복귀족의 손에서 인민에게로 되돌리는 것, 즉 사법의 민주화다.

사법 민주화를 위하여 ⓒ iStock 사법 민주화를 위하여
사법 민주화를 위한 선결과제가 있다. 사법권의 민주적 통제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세 가지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기본권 수준에서 재판청구권을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로 한정하면서 인민의 재판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27조, 사법권 조직 차원에서 사법과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제왕적 대법원장 1인에게 독점시키고 있는 제104조, 그리고 재판 차원에서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을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과 나란히 규정함으로써 민주사법의 최소한의 요구마저 사법권 독립의 하위 가치로 격하시키는 제103조가 그것이다. 따라서 사법의 민주화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이들 헌법규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로 바로잡고,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폐지하고 모든 법관을 국민 참여에 의하여 임명하도록 하며, ‘양심에 따른’ 심판 조항을 삭제하여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만 재판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사법 민주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비로소 사법 민주화의 길이 열린다. 구체적으로 사법 민주화는 사법절차 개시, 사법 주체, 사법 과정 및 사법에 대한 접근이라는 네 가지 수준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첫째, 사법절차 개시 단계에서 관건은 인민의 공소제기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가소추주의를 채택한 우리 형사사법체제에서 인민에게 보장되는 것은 수사촉구권(고소 및 고발)뿐이다. 이런 체제를 넘어서 인민의 소송개시권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즉 기소 여부를 인민이 결정하는 기소배심제와 국가의 불기소에 대응하여 인민이 직접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사인소추제도가 요구된다.
둘째, 사법 민주화의 핵심인 사법 주체의 민주화다. 사법절차에서 인민이 재판의 주체로서 일정한 권한을, 바람직하게는 1차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 배심제와 참심제는 이런 요청에 부합하는 핵심 제도이다. 분업의 원리에 따른 배심제는 인민을 대표하는 배심원이 유무죄판단을 하고 법관은 이에 구속된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사법 민주화 방안이다. 반면 협업의 원리에 따른 참심제는 인민참심원이 직업법관과 함께 재판의 전 과정을 함께 판단하는 것이어서 독립성은 다소 덜하지만 인민의 관여 범위는 더 넓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모든 재판은 원칙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자치의 정신이 이들 제도의 기반이다.
그러나 사법 주체의 민주화가 인민 참여형 재판제도의 도입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사법절차의 또 다른 핵심 주체는 직업법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법관의 선발에 있어서도 일정한 수준의 인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법관공선제를 들 수 있으나 절차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인민이 일정 비율로 참여하는 법관선발기구의 심사를 통해 법관을 선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심급별로 법관의 자격요건을 달리 하되 대법관을 포함한 모든 법관의 선발에 비법조인 인민이 참여하는 기구에 의한 자격심사를 필수화해야 한다. 인민의 의식과 동떨어진 비상식적 법관의 출현을 가로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셋째, 사법 과정의 민주화이다. 그 핵심은 재판과정에서 무기평등의 원칙을 보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 수준에서 규정되겠지만, 원칙만큼은 헌법 수준에서 선언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 원칙은 민사소송에서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와 형사소송에서 디스클로저(disclosure) 제도로 구현된다. 영미법에서 유래한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의 재판 전 절차의 한 단계로, 각 당사자가 심문, 문서 생산 요청, 인정 및 증언 요청과 같은 방법을 통해 다른 당사자로부터 증거를 확보하는 제도이다. 한편 형사절차에서는 검찰이 수사기록, 증인의 진술서, 물리적 증거, 전문가의 의견서 등 사건에 대한 증거를 피고인 또는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미리 공개해야 하고, 특히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뿐만 아니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디스클로저 제도가 요구된다. 무기평등의 원칙 실현을 위한 디스커버리/디스클로저 제도는 공정한 재판을 위한 최소보장이자 사법 과정 민주화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법에 대한 접근성 제고가 긴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원의 대폭 증설과 법관의 증원, 그리고 인민에게 조력을 줄 변호사 수의 획기적 증대가 필요하다. EU국가 중 법원이나 법관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프랑스 수준으로라도 맞추기 위해서는 법원 및 법관 수가 거의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나야 하며, 변호사 수 증대를 위해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화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법절차 개시, 주체 및 과정에서의 민주화가 제도화되더라도 법원, 법관 및 변호사 증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졸속 재판과 재판 지연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사법 민주화의 물리적 전제라고 보아야 한다.
공화국의 최소한의 의미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공존인데, 사법 민주화 없는 사법권 독립은 사법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켜 공화국의 붕괴를 가져올 위험한 이데올로기다. 사법 민주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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