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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 인간종으로서 우리가 타존재를 존중하는 방법기획 주제 2024. 2. 28. 03:05
수경
한때 우리는 북반구 도시의 마천루가 온 세상인 양 굴었다. 그 세상 안쪽을 흘끔거리느라 정신이 팔렸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간힘을 썼고, 그곳만이 우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 속에서 우리의 현재를 결정하고 미래를 내맡겼다. 그런 믿음은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그 믿음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이제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인간 집단 내에서 서구 남성 백인이 차지하고 있었던 특권적 지위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유럽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지난 세기를 가득 채웠고,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을 부여잡고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종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또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는 남반구로 시선을 돌리고, 마천루의 거름이 되었던 인간 집단의 몸과 영토를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에 반응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집단 외부를 사유한다. 우리는 이제 무수한 존재들의 상호 반응으로 이 세계가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인간 외의 존재에 대한 사유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특히 서구는 ‘인간’에게 절대적 위상을 부여하며 비인간 존재들과 차별화를 통해 ‘인간’ 개념을 성립시킨 탓에 오히려 비인간을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개념을 성립시키기 위해 비인간 존재라는 대립항은 필연적이다. 서구에서 비인간 존재를 인식하는 주요한 매개는 동물이었다. 인간은 지난한 인식론적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동물로부터 떼어냈고, 자연과의 투쟁이라는 대결 구도 안에서 인간은 동물과 힘겨루기를 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 철학에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쾌락과 고통을 느끼며,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언어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며, 도덕적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인간은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문명을 수호하며 오롯이 인간만의 서식지를 확보하기 위해 오늘날까지도 싸우고 있다.
인간이 선두에 선 동물계ⓒsoo_파리자연사박물관 내 고생물학·비교해부학 전시실_2021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에게만 허용된 공간을 확장해나가는 도시화는 인간 문명의 발전을 증명하는 근거로 간주되었다. 도시화가 갖는 의미는 인간종과 비인간종 동물의 거주지 분리다. 도시 내 자연은 인공화된 자연으로서 야생과 구분된다. 비인간 동물의 위험을 피해 인간종만의 서식지를 창조하고, 그 서식지에서 안전하게 인간종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이 인간종이 갖는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렇게 인간종은 다른 모든 비인간종의 앞에 서며, 그들 위에 군림한다. 맹수로부터 안전한 인간의 거주지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만’의 거주지라고 믿고 있는 곳에서 발견되는 동물에 대한 혐오와 공격은 계속된다. 도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고양이와 비둘기에 대한 혐오나 강박적으로 이루어지는 곤충 박멸 같은 ‘위생적 녹지 관리’는 인간종과 비인간종 동물의 구별된다는 믿음에서 나타난다.
최근 인간종 스스로 발전시켜온 과학에 의해, 비인간 동물들과 맺는 유대관계에 의해, 비인간 동물들의 소멸 속에서 인간종을 되돌아봄으로써 인간종이 비인간 동물종들과 확연히 차별화되며, 서열화된다는 믿음은 점차 흔들리고 있다. 가령 침팬지, 보노보 같은 유인원뿐 아니라 일부 고래종은 인간종의 고유한 속성으로 고려되는 지능, 감정,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종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동물 ‘자원’으로서 비인간 동물종을 바라보지 않고, 순수학문의 관점에서 각 동물종 고유의 속성을 탐구하는 연구가 활발해질수록 인간종과 비인간종 사이를 가르는 경계는 흐트러지거나 재설정될 것이다. 또한 동물과 반려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간종과 비인간 동물의 경계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역량이 커지고 있다. 인간종과 비인간종 동물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존재론적 위계적 구분 위에 놓여 있었지만, 그러한 위계적 구분은 일상의 경험 속에서 힘을 잃는다. 병든 주인 곁을 지키고 주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반응하는 반려동물의 미담 속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장면, 즉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는 ‘동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명서이자 인간이 이룩한 최고의 성취로 평가되는 도시 역시 비인간 동물종이 배제된 인간만의 배타적 서식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 집단이 공존하는 군집의 서식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등장한다. 군집이란 특정 시간에 특정 공간을 점유하는 여러 종들을 뜻한다. 인간종은 도시의 창조자로서 위상을 스스로 부여해왔지만, 최근에는 도시의 군집을 이루는 한 가지 종으로 자기 인식을 재설정하고 있다. 인간종이 ‘도시공원 및 녹지’로 이름붙인 곳을 자연의 서식지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인간종은 다른 종들과 함께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다차원적 공용공간에서 공존을 위한 거리두기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간종과 비인간종 사이의 소통을 재개하기 위해 도시에서 ‘야생으로 돌아가기’가 회자된다.
16세기 말 인간종이 재현한 비인간종 ⓒAgostino Carracci작(作)_https://www.meisterdrucke.uk/ 이처럼 인간 존재의 위상이 전반적으로 재설정되면서 동물 윤리와 동물권의 법률적 보장은 최근 급속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인간 곁에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반려동물 덕분에 동물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2024년 1월 제정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은 그러한 사회심리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이다. 식용, 사냥, 실험, 교육, 연구 등의 이유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비난하는 동물권 보호 단체의 주장은 논쟁적이지만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비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이 동물로부터 싹튼 것, 특히 인간-동물 관계의 윤리적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이러한 동물권 담론은 과잉된 인간 개념의 반영이기도 하다. 동물권은, 동물은 인간과 다르지만 또한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권 개념의 확장 속에서 주장되는 동물권이 생물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법률적 권리 담론이라면, 자연의 권리는 생태중심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태중심주의에 따르면 세계란 인간 개념을 토대로 성립되기보다 인간종이든, 비인간종 동물이든, 비생명체든 다수의 존재들이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권리는 일부 동물종의 권리 보호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담론과 교차하는 동시에 대립한다. 1975년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을 출간하던 무렵 1972년 크리스토퍼 스톤은 나무에게 제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총체적인 세계를 이루는 존재들, 가령 나무, 강, 산, 대지 등 무생물 역시 세계의 구성요소로서 상호작용한다. 인간종이든 비인간종 동물이든 백지 위에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동물과 서식지는 분리불가능하다. 하나의 세계로서 생태계를 이루는 그 모든 존재들을 아우르는 이름으로서 ‘자연’은 서구의 전통적 이분법에 따라 인간과 대립항을 이루었던 ‘자연’과는 다른 맥락과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헌법상 규정한 곳은 2008년 에콰도르였다. 에콰도르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자연은 헌법이 인정하는 권리의 주체이다”. 에콰도르 헌법에서 자연은 파차마마(Pacha Mama)라는 이름으로 함께 표기되는데, “삶이 재생산되고 실현되는 장소”로 규정된다. 즉 자연이란 인간종이 살아가는 무대와 분리된 외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삶을 실현하는 총체적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총체적 세계는 법률적 주체로 고려되며, 그 존재는 통합적으로 인정될 법적 권리가 있다. 즉 그 삶의 주기, 구조, 기능, 진화 과정의 존속 및 재생이 통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정한다. 제72조에서 규정하는 ‘회복권’이란, 환경파괴의 피해자로서 인간 집단에게 주어지는 배상과는 별개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복구되어야 할 권리를 가지므로, 환경 파괴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 국가는 즉각적으로 자연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개인, 공동체, 마을, 민족 집단은 자연의 제소대리인이 되어, 위에서 설명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에콰도르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
세계로서 미소서식지ⓒsoo_Puerto Maldonado, Peru_2019 에콰도르에 이어 2010년에는 볼리비아에서 자연의 권리를 법률로 제정했다. 〈대지의 어머니의 권리에 관한 법〉은 ‘대지의 어머니’로 지칭되는 총체적 세계의 권리를 명시하고,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와 개인의 의무를 담고 있다. 이 법안 제3조에 따르면 ‘대지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 시스템과 상호연결·상호의존·상호보완적 관계를 맺는 모든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분할불가능한 공동체의 생동하는 역동적 시스템”을 뜻한다. 대지의 어머니는 존속할 권리, 그를 이루는 존재들의 다양성을 유지할 권리, 물의 순환을 보장할 권리 등이 있다. 대지의 어머니의 권리는 공공기관 및 검찰이 우선적으로 소송대리인을 맡고, 후순위로 대지의 어머니의 권리 침해로 영향을 받은 개인이나 집단이 제소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양국에서 거의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법률적 언어로 도입한 배경에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2000년대 분홍빛 물결이라는 이름으로 좌파 정부가 연이어 집권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좌파 세력은 서구 정치경제적 모델의 전형이었던 신자유주의와 차별화된 지향을 제시하면서 원주민 운동과 연대했다. 단순한 정치적 지지를 넘어서 원주민의 사유로부터 새로운 인식론과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자연의 권리가 법제화된 것은 정치 운동과 인식론적 전환이 맞물린 효과였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담론은 인간종과 비인간종의 친연성을 통해 인간 개념을 확장시켜 비인간종조차 인간종의 범주로 포섭해버리는 함정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을 함정이라 부르는 까닭은 오늘날 인간 사회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타존재를 타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자아 내부로 흡수하여 그 존재를 무화시키는 한편 자아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얻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종으로서의 존재 양식과 사유를 계속 확장시키는 것만으로는, 다른 존재들을 그대로 존중하기 위한 법률적·사회적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인간과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가까운 동물에 대해서는 인간의 개념을 확장시켜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언정, 인간종과 멀어질수록, 야생동물일수록, 비생명체일수록 그 존재를 존중하기를 요구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자연의 권리는 이러한 함정에서 비껴나, 인간종이 비로서 타존재와 상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로 안내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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