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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동물의 만남: 종차를 넘는 정의를 향해기획 주제 2024. 2. 28. 02:56
염운옥
여성은 왜 남성보다 동물에 더 공감하며 동물해방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가? 이 질문은 분명 불편하게 들릴 것이다. 개인차를 무시하고 ‘보살피는 여성성’과 ‘난폭한 남성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안이하게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동물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18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즘부터 20세기 래디컬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종간 정의와 동물해방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해왔다. 19세기 유럽의 동물보호운동과 생체해부반대운동은 여성과 동물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혐오와 차별의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 맺음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유색인, 여성, 하층민이 인간에 포함되는 지난한 과정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의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났던 것처럼, 동물을 인종, 젠더, 계급과 함께 차별의 구조 분석에 추가하게 되면 종차별주의(speciesism)가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종차별주의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와 교차하며 복합혐오와 복합차별을 낳았다. 백인우월주의는 유색인을 ‘동물화’함으로써 나와 다른 인간에 대한 혐오를 정당한 것처럼 포장했다. 계급 문제에 있어서 엘리트 지배층은 하층민을 종종 동물의 무리로 재현해 ‘비인간화’함으로써 대중의 혁명성을 불온함이라 경계했다.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성난 군중들을 향해 “돼지와 같은 대중”이라고 개탄했다.
종차별주의 개념을 처음 쓴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더는 종이 다르다는 것이 잔인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종차별주의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종차별주의에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만큼이나 오랜 역사가 있다. 피터 싱어와 함께 《죽음의 밥상》을 쓴 동물해방운동가 짐 메이슨은 ‘동물혐오(misothery)’ 개념으로 동물을 사악하고, 잔인한 것으로 경멸해온 서구의 인간예외주의와 인간지배 문화를 비판한다. 메이슨의 동물혐오 개념은 ‘여성혐오(misogyny)’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동물과 여성을 향한 비하와 멸시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다고 간파했다. 여성을 평가절하하고 남성보다 하위의 존재로 묶어놓음으로써 가부장제 억압의 역사가 전개됐던 것처럼, 동물을 인간 아래에 놓음으로써 동물은 인간에게 종속되었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해온 공진화의 풍요로운 역사는 망각되었다. 인간종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는 동물혐오를 먹고 자랐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자, 한 익명의 저자가 《짐승의 권리 옹호》를 출판해 울스턴크래프트를 조롱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인간과 짐승 사이의 잿빛 영역에 던져져 있던 피조물인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감정의 영역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겼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아니라 여성과 동물의 차이를 강조했다. 《짐승의 권리 옹호》의 저자는 철학자 토머스 테일러로 밝혀졌는데, 그는 귀류법으로 여성을 자연에 가까운 존재로 묶어놓는 동시에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에게 이성이 있다면 동물에게도 이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결론은 불합리하기에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테일러가 여성을 여전히 동물과 자연의 영역에 묶어놓으려 했다면,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남성 쪽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테일러가 전통적 이분법으로 여성의 권리를 부정했다면,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감정, 남성=이성’의 이분법을 깨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의 담지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공교육에서 동물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고, 덫에 걸려 굶어 죽은 새나 아픈 반려견에게 눈물 흘리면서도 마차 끄는 말의 노역은 모른 척하는 숙녀들의 모순을 꼬집었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를 연결하는 데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세기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동물보호운동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변화를 반영한다. 동물과의 교감, 동물의 생명 존중은 고대부터 찾아볼 수 있지만, 근대의 인간이 ‘자연의 사다리’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확신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에게는 동물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는 윤리적 태도가 자리 잡았다. 동물을 자동기계에 불과하다고 보는 데카르트주의는 동물과의 일상적 접촉과 교감에 비추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보였기에 영향력을 잃어갔고, 동물을 고통을 느끼는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벤담의 공리주의적 주장이 점차 지지를 얻어갔다. 하지만 각국이 동물학대금지법을 제정한 실제적 동기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며, 거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물에 대한 학대는 인간성을 타락시킨다는 우려의 이면에는 난폭한 하층민에 대한 사회적 통제라는 목적이 있었다. 동물에 대한 폭력과 폭력적 정치혁명의 병치는 프랑스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는데, 1840년대 혁명기의 상황은 프랑스 최초의 동물보호법인 그라몽법(the Grammont Law) 제정을 촉진했다. 고통의 광경은 내면의 잔인성을 잠 깨우기 때문에 피투성이 오락과 만행에 노출된 어린이는 위험한 어른으로 자란다는 것이 1850년 프랑스 의회가 그라몽법을 제정한 이유였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부르주아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 오귀스트 르누아르,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1878)ⓒwikipedia 영국에서는 일찍이 1822년 마틴 법(Martin’s Act)을 제정해 가축에 대한 학대를 금지했다. 골웨이 지역 하원의원 리처드 마틴이 추진한 마틴 법은 악의적이고 잔혹하게 말, 암말, 거세한 말, 노새, 당나귀, 황소, 젖소, 어린 암소, 거세한 수소, 양 등의 가축을 때리거나 혹사했을 경우, 이를 벌금과 구금이 가능한 범죄로 규정했다. 마틴법은 동물학대방지법의 기틀을 마련했고 전 세계 유사 법령에 영향을 미쳤다. 동물보호운동은 선구적인 영국 모델의 영향으로 시작됐지만 트랜스내셔널한 운동이었다. 1824년 영국을 시작으로 19세기 중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에서 동물보호협회가 창설됐다. 동물보호주의자들은 곰 때리기, 닭 던지기, 닭싸움 같은 피 흘리는 오락에 쉽게 흥분하는 하층민을 통제하고, 동물에 대한 친절과 공감이라는 부르주아의 도덕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문명 세계에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국경을 넘는 교류와 활동을 통해 중상류층의 문명화된 사고방식, 감정, 도덕, 행동을 사회 전반에 스며들게 하는 방책 가운데 하나가 동물보호운동이었다.
1820~1850년대 초기 동물보호운동이 하층민의 잔혹한 동물학대를 통제하는데 주력했던 반면 1870, 80년대 동물보호운동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을 실험에 이용하는 생체해부에 대한 반대운동이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생체해부반대운동 역시 세계적으로 전개된 운동이었다. 1885년 영국에만 15개, 스위스에 3개, 독일에 2개, 프랑스에 2개 생체해부반대운동 단체가 있었고, 유럽 전체로는 26개 단체가 활동했다. 동물보호운동과 생체해부반대운동에는 여성의 참여가 많았다. 회원의 60~70%가 여성인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는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협소했기 때문에 각종 자발적 사회단체가 여성의 세력화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던 상황을 감안하면 동물보호운동에 여성이 많았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생체해부반대운동에서 여성들은 단지 수적으로 많았던 것이 아니라 생체해부를 당하는 동물의 고통을 수술대 위에 묶인 여성의 고통과 동일시하고, 동물의 권리없음에 빗대어 여성의 권리 박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영국에서는 매춘여성으로 의심되는 여성에 대한 강제검진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성의 이중기준을 정당화했던 1860년대 조세핀 버틀러의 전염병방지법 캠페인의 유산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와 남성과 과학의 침범에 항의하는 언어를 생체해부반대운동을 통해 얻고자 했다.
프란시스 파워 코브는 여성참정권운동, 결혼법 개정운동, 여성 고등교육 도입을 주장하고 영국 생체해부반대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였다. 코브는 “온화한 척하지만 냉정하기 짝이 없는 과학자”가 의학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개, 고양이, 말 같은 동물을 실험에 동원하는 것은 “고문”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코브는 육식과 모자 장식용 깃털을 포기하지 못해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식량과 같은 필요 충족을 위해 동물을 활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잔인한 동물 생체해부 실험에 노출되었던 의과대학생이 어떻게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팸플릿 〈어두운 곳에 빛을〉에서 코브는 프랑스의 생리학자 끌로드 베르나르의 생체해부를 비판하며, 마취제를 쓰면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클로로포름 같은 마취제, 아편 같은 마약, 큐라레 같은 독약이 동물의 마취에 쓰이는데 이는 동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고통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민첩하고 인도적으로 이뤄지는 외과수술과 달리 생체해부는 칼날 아래 동물의 고통을 낱낱이 전시하는 악덕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코브의 주장이었다.
생체해부반대운동은 여성참정권 투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으며 수술대 위에 묶여 해부당하는 개는 브릭스턴 교도소에서 헝거 스트라이크를 벌이다가 강제급식을 당하는 서프러제트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실험동물의 고통은 출산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성, 광기 치료를 위해 난소와 자궁을 적출당한 여성의 고통과 겹쳐 보였다. 생체해부를 당한 동물은 생체해부를 당한 여성을 의미했다. 생체해부반대운동은 여성만의 운동은 아니었고, 남성 지지자와 남성 지도자도 함께였다. 정치 지형에서도 자유주의부터 사회주의, 우생주의, 신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심지어 모순적인 정치 이념이 혼재했다. 따라서 ‘남성 대 여성’, ‘과학자 대 일반인’, ‘진보 대 보수’ 같은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이 운동을 포착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체해부반대운동은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동물의 권리까지는 아니라도 동물에게도 인정받아 마땅한 요구가 있고, 인간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사고를 확장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종중심주의에 균열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32,000~30,000년 쇼베 동굴의 동물 그림ⓒwikipedia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과 톰 레건의 《동물권 옹호》 이후 ‘동물로의 전환(Animal Turn)’이라 불릴 만큼, 동물권과 동물해방에 관심이 높아졌다. 다종다양한 동물의 생태와 역량은 인간과 공통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 능력을 월등히 넘어서는 것이며, 동물의 세계에 아직 인간이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널리 존재한다는 인식도 높아졌다. 이제 겨우 인간은 동물 앞에 겸손해지기 시작했다. 인류학의 최대 공적은 ‘원시인’이란 이름으로 부당하게 과거로 추방당했던 ‘원주민’이 현재의 시간 속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떠오르는 분야인 동물연구와 동물사의 최대 업적은 인간사는 언제나 동물과 함께해온 역사였고, 인간과 동물이 공진화해온 역사였음을 밝힌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동물을 보는 방식,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은 인간이 자신을 보는 관점과 관련되는 근본적인 요소였다. 인간과 동물의 얽힌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동굴벽화 같은 원시예술과 토테미즘 종교, 어떤 문화권에든 동물과 관련된 수많은 언어 표현이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만을 떠올려보아도 알 수 있다. 통시적으로뿐만 아니라 공시적으로 보아도 인류는 인간종만이 살아가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동물원, 반려동물 문화, 공장식 축산산업, 도축과 육식 시장, 멸종동물 및 야생동물보호센터 같은 것을 떠올리면 인간사회는 사실상 다종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19세기 동물보호운동과 생체해부반대운동으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동물의 권리를 향한 관심과 논쟁과 노력은 종차를 넘어 정의로 향하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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