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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장애인: 취약성을 넘어 최전선의 주체로기획 주제 2023. 8. 30. 12:28
염운옥
최근 몇 년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파멸의 상상이 현실감을 얻고 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폭염,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내리는 비, 반복되는 가뭄과 꺼지지 않는 산불, 해수면 상승과 그로 인한 저지대의 침수. 이제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열대화’라고 말한다. 유엔은 2023년 7월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달이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극지방 빙산과 빙하가 녹아내리고, 온대지역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양식장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재난이 엄습할 가능성은 지구 어디에나 상존한다. 아포칼립스의 예감 앞에, 아직 늦지 않았다, 육류 소비 자제하고, 일회용품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탄소 발생 줄여야 한다는 제안은 공허하게 들린다. 긍정과 희망의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기후위기는 다가오는데 개인으로서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과 분노, 슬픔은 심리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생태 불안, 생태 슬픔, 기후우울증 같은 신조어는 이를 부르는 말이다. 기후재난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외상후 스트레스가 나타나지만, 아직 겪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에 대한 불안감으로 외상전 스트레스를 보이기도 한다.
기후위기는 같은 속도로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약한 부분부터 잠식한다. 이미 현실이 되어 버린 기후위기 재난 앞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2022년 8월 8일 폭우로 물이 차 들어온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폭우에 더해 열악한 주거환경과 사회적 고립이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태풍에 샌드위치 판넬 주택이 날아가고, 폭우에 비닐하우스 주택이 떠내려가는 피해를 당하는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법화된 불법은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살도록 방치하고 농업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침해한다. 최근 신간 소설집 『비인간』을 출간한 장애인 SF 작가 최의택은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디자이너 키보드로 글을 쓰고, 마우스를 닮은 보조장치로 아이패드 전자책을 본다. 세상과 유리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지만 그의 소설은 현실 세계와 사이버 공간을 넘나들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질문하며 누구보다 멀리 나아간다. 휠체어와 전자장치를 쓰는 장애인에게 기후위기는 곧 생존 위기가 되기 쉽다. 2005년 태풍 카트리나와 리타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휠체어 장애인들은 피난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가 없어서 탈출이 늦어지는 바람에 생사의 기로에 서야 했다고 한다.

연결과 도움의 관계망 속의 사람들ⓒhttps://pixabay.com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인구의 약 15%인 약 10억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추산한다. 개별 국가 단위로 보면 장애범주의 분류는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 출현율은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22년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인구의 24.6%, 호주는 17.7%, 미국은 13.0%가 장애인이다. 반면 장애범주를 좁게 해석하는 한국은 장애인 출현율이 5.1%에 불과하다. 전체 등록장애인 수는 2,644,700명이다. 이는 보호와 돌봄이 필요함에도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은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요한 이동권, 접근권, 자립생활권, 공동체통합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동성과 자립생활권의 제약은 기후위기 관련 재난 앞에 장애인의 취약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기후위기에 따른 장애인의 취약성은 장애 당사자의 비가시화, 비장애중심적인 건조환경과 사회시스템으로 인한 접근성 제약, 재난 상황에서 구조의 우선순위와 선택으로 나타나는 우생학의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은 단순한 불편이 아닌 생사의 문제가 된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유해한 생활·거주환경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음식과 영양, 위생, 의료 서비스와 의약품, 교육과 훈련, 직업과 사회활동, 주거, 환경과 관련된 비상사태는 생활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그들의 권리를 훼손한다. 자연재해로 인한 장애인의 사망률이 비장애인의 사망률보다 최대 4배가 높다는 통계만 보아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장애인의 이동성과 의료서비스 공급망을 무너뜨렸을 때 도래할 파괴적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친환경적인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서 핵심은 모두를 포용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개발이다. 그러나 이를 설계·실행·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기후위기 타개를 위한 실천에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 장애 항목은 포함되지 못했고, 2019년에야 별도의 프로그램이 부가적으로 채택되었을 뿐이다. 장애인단체들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장애 의제’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은 구체적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y, COP26)에 참석한 이스라엘의 카린 엘하라르(Karine Elharrar) 에너지·수자원 장관이 회의장의 휠체어 접근성 문제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일은 기후위기 논의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한 장애인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2022년 이집트 사를 엘 셰이크에서 열린 COP27에서도 장애 의제를 넣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COP27에서 장애포용기후행동연구 프로그램을 발표했던 아만다 보위 에드워드(Amanda Bowie Edwards)는 각 당사자의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농민, 여성과 청소년, 원주민은 당사자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장애인은 배제되어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취약성에 갇혀 수동적 피해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인권과 정의의 문제로 기후변화를 재정의하는 논의에 힘을 보태고, 〈기후정의행진〉에 연대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기후정의는 2000년대 전후 환경정의로부터 분화·발전해온 개념이다. 201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 이후 기후운동의 틀이 기후변화에서 기후정의로 바뀌었다고 평가될 만큼 기후정의 담론은 확산되고 있다. 기후정의 운동에서는 특히 청소년층의 활약이 눈에 띈다. 기후정의 운동에서 청소년층의 역할이 두드러진 이유는 기후위기를 미래세대 착취로 규정하고, 앞으로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이해당사자로서 청소년이 오늘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에서 청소년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기후소송을 제기했고, 한국에서도 2020년 3월에 〈청소년기후행동〉이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장애인은 어떠한가? 아직 장애인이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없지만, 만성질환자가 기후소송을 일으킨 참고할만한 사례들이 있다. 2016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천식과 라임병 환자가 기후변화로 질병이 악화했다는 이유로 기후변화 완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스위스에서는 노년 여성들이 폭염과 온난화가 노년 여성의 조기 사망, 심혈관질환, 탈수병, 이상 고열, 탈진, 졸도, 열경련, 열사병을 일으켰다며 책임 주체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우리에 관해 어떤 것도 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잘 알려진 이 말은 미국 자립생활 운동가 제임스 찰턴(James I. Charlton)이 제시한 것으로 장애인 운동에서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표명하는 빼놓을 수 없는 문구이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를 제외하지 말라는 이 말이 장애 당사자만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는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결되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만의’ 혹은 ‘그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접근해서는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일본의 장애운동가 토요타 마사히로(豊田正弘)는 장애인만이 장애인 운동을 주도할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을 ‘당사자 환상’이라 부르고 비판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들으면서도 당사자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연결과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기후위기에서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장애인이 가장 취약하고 피해받기 때문만이 아니다. 장애인은 기후위기 거버넌스에서 장애인의 몫을 주장하고 예산을 배정받고 정책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는 인간 존재의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비인간 기계와 결합한 장애인의 몸은 ‘포스트-휴먼’이라 부를 인간 조건의 새로운 차원과 가능성을 미리 보여준다. 최의택은 ‘비인간’을 자처한다. “그래, 나, 장애인이야. 니들이 ‘비인간’이라 부르는 인간이야.” 그의 몸은 기계와 하나가 된 몸, 인간과 사물의 결합을 예시하는 사이보그의 몸이다. ‘크립’, ‘프릭’, ‘퀴어’ 같은 존재들이 그 멸칭을 재전유해 자긍심의 원천으로 삼았듯이, ‘비인간’이란 말도 이런 전복의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의 몸은 비인간 기계 보조장치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의 몸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어릴 때, 나이 들었을 때, 병들었을 때,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모두가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연결과 도움의 관계망 속에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멈추고 기후위기의 파국을 늦추기 위한 운동에서 장애인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기성체제에 균열을 내는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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