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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공장식 축산 논의가 만나는 방식: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논의를 넘어 체제전환으로기획 주제 2023. 8. 30. 12:28
고정갑희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의 목소리는 다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의 정책을 넘어 사회운동의 중요한 의제로도 등장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넘어 기후재난, 기후재앙, 기후비상이라는 언어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게 되었다. 2019년에는 전세계 1,600여개 도시에서 수만 명이 〈기후파업〉에 참가했고, 2023년 한국에서도 〈414 기후정의파업〉이 세종시에서 열렸다. 노동과 연결되어온 ‘파업’이 ‘기후’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기후위기가 노동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 또한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체제전환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있다. 체제전환은 산업의 전환을 의미하며, 동시에 노동체계의 전환 또한 의미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기후정의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으로 시작하여 자본주의체제 전환까지 닿고 있다. 에너지체제이든, 자본주의체제이든, 가부장체제이든 체제전환은 생산-노동체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 글은 다양한 논의와 행동과 정책 속에 진행되는 기후운동 가운데 노동체계의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노동체계 문제 중에서 에너지산업의 전환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임노동자들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노동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이라 지목된 성장중심의 상품생산체계는 여성과 동물의 생산-노동을 자연화하고 자원화하였다. 이러한 자연화/자원화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인간여성과 비인간동물의 생산-노동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와 노동, 그 중에서도 여성과 동물 그리고 자연의 생산과 노동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이 미미하다.
지금은 공장식 축산의 비인간동물들의 생산-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와야 할 시점이다. 인간여성과 비인간동물의 생산-노동을 자연화/자원화하는 것이 현 자본주의-가부장체제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고, 현 체제는 기후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에너지산업과 임금노동자들에 머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화석연료에 기대는 에너지체제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전환을 생각할 때, 관련 생산-노동체계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 자본주의, 필자의 말로 가부장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체제를 유지재생산하는 인간여성들과 비인간동물들의 생산-노동체계의 전환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공장식 축산 비인간동물의 생산-노동의 자연화/자원화
현 가부장체제는 한쪽을 생산-노동으로 명명하고, 다른 쪽들을 비생산-비노동으로 명명한다. 비생산-비노동의 영역은 ‘자연화’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특성을 갖는 현 가부장체제는 이 자연화를 통해 ‘자원화’ 한다. 그리고 이 자연화/자원화는 착취와 수탈 그리고 동물의 경우에는 이를 넘어 학살의 성격을 갖는다.
공장식 축산 비인간동물들의 생산-노동이 자연화되고 자원화되는 것은 인간여성의 임신출산이라는 생산-노동이 자연화되고 자원화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여성은 ‘자연스럽게’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임금이나 화폐나 그 무엇을 지불하지 않으며 심지어 지불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자연이 오랜 시간 걸려 생산한 석탄이나 석유는 그냥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고 아무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는 자원으로 생각하는 것과 연결된다. 오늘날의 문명은 출발점에서 석탄에너지에 기대어 ‘산업혁명’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를 맞고 있다. 석탄과 석유를 오랜 세월 만들어 온 ‘자연’의 과정에 대해서는 노동은 물론이고 생산이라고조차 부르지 않는다. 인간을 생산한 ‘노동’을 한 여성은 자연스러운 모성적 일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생산-노동들이 너무 ‘자연스러워’ 자본주의 체제를 그린 피라미드 삽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체제의 토대가 되는 생산-노동이 드러나지 않고 은폐된다. 자연화되어 자원화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피라미드ⓒ Reinhard Bendix (1980). Kings Or People: Power and the Mandate to Rul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540 앞의 자본주의체제를 나타내는 피라미드의 하단에는 은폐된 생산-노동들이 존재한다. 이 자본주의 피라미드에는 하단에 프롤레타리아 혹은 노동자(남성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 계급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부르주아지 혹은 중산층 여남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를 정치, 종교, 군대 권력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종교와 국가정치와 군대의 비호하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에서는 그려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 또 다른 생산-노동들이 있다. 자연화된 여성노동과 자원화된 ‘자연노동’이 있다. 특히 인간생산을 담당한 인간여성들의 임신출산노동과 동물생산을 담당한 임신출산 노동을 하는 비인간여성들의 생산과 노동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논의는 이 삽화처럼 인간여성+비인간동물의 생산과 노동을 은폐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생략해 왔다.
공장식 축산의 비인간여성동물의 착취, 수탈, 살해
공장식 축산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된다. 흔히 이 소설은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의 스탈린체제를 비판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암탉들과 젖소들의 이야기가 아주 조금 들어가 있다. 인간 농장주 존스에게는 암탉의 생산물인 달걀과 젖소들의 우유와 나무 열매인 사과의 처분권이 주어진다. 이 작품은 인간사회의 정치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현재의 공장식 축산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인간이 달걀, 우유 그리고 자연의 생산물인 사과를 어떻게 상품화하면서 인간의 먹거리로 만드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숫말 ‘복서’는 건강이 나빠지자 ‘말 도살업’이라고 쓰인 마차에 실려간다. 노동자계급의 상징인 복서의 일생이다. 조지 오웰이 단순히 러시아 혁명과 노동자 계급 혁명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하기에는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동물농장』이다. 거기서 동물들, 그중에서도 알을 낳는 암탉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처형당한다. 그리고 소들의 우유는 혁명 이후 지배계급이 되어 버린 수퇘지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다.
공장식 축산의 동물은 철저히 암수로 구분된다. 이 중 암컷/ 비인간여성 동물들은 특히 축산업 유지의 기반이다. 새끼를 낳고 모유를 수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젖소는 임신해야 모유(=인간의 언어로는 우유)가 나오기 때문에 축산업자는 항상 젖소에게 인공수정을 한다. 임신한 10개월 동안 착유당한다. 출산 뒤에는 2개월 만에 다시 인공수정 그리고 임신-수유-출산을 반복하다가 4-5세에 도축당한다. 암탉은 원래 한 달에 한 번 정도 생리하지만 산란계 암탉은 거의 매일 생리한다. 알을 더 낳도록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달걀은 암탉의 월경주기 분비물이다.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하는, 즉 생산력이 떨어지면 굶긴다. 굶은 뒤 사료를 먹으면 다시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또한 도축당한다. 암탉의 경우와 달리 산란계농장의 수평아리는 힘들게 알을 깨고 나오면 집단으로 분쇄된다. 달걀을 생산할 몸이 아니고 육계만큼 빨리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암퇘지는 인공수정 뒤 감금 틀인 스툴에서 지내면서 분만한다. 수퇘지들은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태어나자마자 거세당한다. 암퇘지는 분만이후 다시 인공수정을 반복하고 도축당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동물을 의인화하여 우화와 풍자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축산농장의 숫퇘지들은 ‘동물주의’를 설파하는 사상가도, 최고 지배계급이 된 나폴레옹도 아니다. 실상 오늘날 현실의 돼지들은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착취와 수탈 그리고 살해당한다. 『동물농장』에서 짧게 제시된 이 동물들의 농장은 현대 자본주의-가부장체제 하에서는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 되고 실험실이 된다. 실험실의 동물들은 동물산업복합체에 의해 이리저리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공장식 축산의 동물들은 생사여탈권을 스스로 갖지 못한다.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논의를 넘어 체제전환으로
공장식 축산을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한 원인으로 보는 시각은 이 축산업 동물들의 참혹한 노동 현실보다 환경오염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공장식 축산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원인으로서 공장식 축산에 접근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불러오는 오염원으로서 공장식 축산을 말하게 되면 결국 인간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뒤로 사라지고 오염원만 남게 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공장식 축산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동물을 사육하고 도축하는 시스템을 만든 이 공장식 축산은 그 생산-노동을 자연화하면서 그 결과물은 상품화한다. 이는 임노동 바깥의 인간 여성의 생산-노동이 자연화되면서 그 결과물은 인간노동력 상품이 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의 생산-노동이 자연화되고 자원화되는 것은 유사하다. 하지만 차이가 크게 있다. 인간은 살해하면 안되지만, 공장식 축산의 비인간동물은 살해되고 도축되어 고기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농장 동물의 90% 이상이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되고 있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이 기후위기를 불러오는 지점에 대해서도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엄청난 양의 토지사용, 물사용, 산림벌채와 아마존 삼림파괴, 동물들의 메탄가스 배출, 생물다양성 손실, 온실가스배출 등은 공장식 축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언급되는 사항들이다. 현대 축산업은 오랜 가축 사육의 역사 가운데 근 100년 동안 가장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공장 속의 동물들은 거세당하고, 이빨과 꼬리가 잘리고 감금된다. 운송과 도살 과정 또한 끔찍하다. 동물복지라는 단어는 실상 끔찍함을 숨기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기후재난을 인간종중심으로 사고하는 한, 우리는 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고, 이 체제는 임노동자만이 아니라 여성 (임신출산양육가사)노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장식 축산으로 대표되는 비인간동물들의 생산과 노동에 기반하게 된다. 이 기반을 인식하고 이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기후재앙 또한 막을 수 없다. 화석연료 에너지체제전환을 넘어 공장식 축산업의 전환 또한 논의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와 함께 이야기되는‘성장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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