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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은 생태위기에 대한 근본적 물음 위에 가능하다기획 주제 2023. 2. 27. 05:29
고정갑희
현재 기후정의 운동은 탄소제로와 에너지체제 전환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재난, 기후난민, 기후파업과 같은 사회적 개념과 행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결과로 여겨진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화석연료라는 ‘이윤을 위한 에너지체제’가 지목된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은 커졌고, 한국에서도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집회에 3만 이상이 모였다. 이윤체제와 시장체제 중심의 에너지 불평등을 넘어 공공/민주/생태적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인식도 커져가고 있다.
이런 반가운 현상에도 불구하고, 1992년 유엔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고 30년이 흘렀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1997년 유엔 기후변화총회에서 교토의정서를 합의한 이후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게 한 것도 변화를 늦추고 있는 이유의 하나다. 그리고 각국 정부들은 여전히 녹색성장의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과이익을 낸 기업에게 부과하는 횡재세(windfall profits tax) 정도로는 기후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전력산업을 민간자본에 개방하고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핵발전소 수출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추동시켜야 하면서도 그것을 넘어 전면적이며 근본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점점 더 확실해 지고 있다.
이 국면에서 이 글은 기후정의 운동은 생태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설정부터 더 근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는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갖는다. 첫째, 현재의 기후위기 대응은 생태위기에 대한 근본적 물음 위에 가능하다. 둘째, 생태위기는 서구근대사상인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 체제가 낳은 위기다. 셋째, 인간중심주의체제는 서구 근대의 이원론에 입각한다. 이러한 이원론을 해체하고 체제를 전환할 새로운 인식론/존재론/가치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생태위기에 기반한다. 지구온난화의 원인 또한 지표면 온도 상승으로만 이야기될 수 없다. 최근 인류세와 자본세를 연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는 움직임들도 기후위기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근본적 물음은 이제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생성한 인식론과 가치론뿐 아니라 인간종(種)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필요하다. 인간종중심의 근대화·산업화·서구화가 만든 생태위기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고는 기후위기 대응 운동은 협소하거나 부분적인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체제전환을 내세운다 해도, 에너지체제 중에서 화석연료를 문제로 설정하는 정도로는, 구체적 행동을 위한 일시적 목표로는 적절할지 모르지만, 전면적 대응도 전면적 전환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종중심사회가 만든 생태위기에 대한 질문은 (1) 인간의 권리 (2) 사회적 불평등 (3)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더 근본적 질문을 전제로 한다. 권리는 인간의 권리로 충분한지, 사회는 인간사회로 국한되는지, 체제설정은 자본주의로 충분한지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생태위기를 직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권리'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가 될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생각 또한 ‘인간사회’를 의미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체제도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권리, 사회, 체제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체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이 물음은 인간의 권리를 넘어 자연의 권리로, 권리 개념과 범주의 확장을, 인간사회를 넘어 생태사회로의 확장을, 자본주의체제를 넘어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 체제로의 확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확장에 입각한 구체적 실천들을 요구한다. 이 물음은 자연의 권리를 현재 법률체계로 불러오는 ‘정치철학적’ 전환을 요청한다. 그리고 자연파괴와 ‘사회적’ 불평등을 연동시키며, 종간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요청한다. 또한 화석연료 에너지 체제 전환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넘어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 체제의 전환을 요청한다.
인간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다.

Comparison between wrong way (human-centered) and a fitting way (environment-centered) of sustainability ( source: https://uxdesign.cc/the-time-for-environment-centered-design-has-come-770123c8cc61 ) 이 그림은 생태주의나 생물다양성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다. 왼쪽의 그림에는 인간이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 다른 동식물들이 피라미드 형태로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른쪽은 그것을 바꾸어 제일 위에 있던 인간의 이미지는 없어지고, 위계적인 피라미드가 아니라 둥근 원형의 형태로 인간과 동식물이 위치지어져 있다. 그리고 이 구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그림은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으로 자신을 위치시킬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구적 차원에서 자연으로 대표되거나, 다른 종으로 일컬어지는 타 종과의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종과 다른 종들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며, 현재 지구상의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전면적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간의 권리로 개념화하고 추구해 오던 것에 대한 전면적 재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공기와 물, 동식물 등 ‘자연’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생태계 파괴가 인간종중심주의에 기반한다는 인식과 그에 따른 체제의 전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자연의 권리를 현재 법률체계로 불러오는 ‘정치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한 표현으로 ‘자연의 권리’에 대한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최근 자연의 권리, 그리고 축산동물과 함께 동물의 해방과 권리에 대한 정치적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자연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가 단순히 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사회 내의 법제도, 즉 정치적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강과 숲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와 관련된 실천들은 기존의 국가법 체계를 뒤엎는다. 인간 종이 동식물과 자연을 지배-종속관계로 몰아간 사회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권리를 넘어, 자연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되는 상황에서 공동체와 민주주의와 평등과 권리에 대한 질문을 근본적으로 다시 하게 만든다. 과거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헌법이 이를 명시하기도 하였고, 이제 서구사회에서도 ‘법률혁명’이라 이름붙이면서 자연의 법적 권리를 추진하는 흐름이 진행중이다. 이와같이 이미 제기된 강의 권리, 바다와 숲의 권리 등이 앞으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노동자의 권리나 여성의 권리와 같은 해방사상이 한 계급(階級) 중심의 인간사회, 한 성(性) 중심의 인간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자연권과 동물권은 한 종(種) 중심의 인간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변화는 사물, 인간, 자연의 존재론적 연결성을 기후위기와 생태 논의의 장에 함께 불러올 때 가능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와 같은 생태적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실천운동이 따를 때 가능하다.
‘자연’은 서구 근대적 인간이 대상화하면서 창조한 개념이다. 서구의 인식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정신과 영혼의 유무, 내면성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런 차이에 입각한 인식론과 존재론은 인간 아닌 비인간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수동적 존재로 보았다. 하지만 최근의 물질론과 신유물론은 물질 자체가 능동적 행위자임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인간 중심의 형이상학이나 주체론을 다시 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근본적 질문이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이유는 한 종인 인간, 한 성인 남성, 한 계급인 자본가가 만드는 세계의 토대를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지배와 여성지배는 연동된다: 종적 불평등과 성적 불평등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불평등'은 여성과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성적, 계급적 소수자들의 불평등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인간 사회 내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 인간과 타종 사이의 불평등을 포함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과 남성이 여성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인식론적 차원에서 연결될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차원에서도 연결된다. 인간의 자연파괴로 인한 기후위기와 생태적 위기는 자본의 자연착취와 여성착취와 연동된다. 자본의 자연착취와 여성착취는 인간종중심주의와 가부장제가 토대가 되어줌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종중심주의는 자본주의-가부장체제의 인식론적 토대다. 자연/인간, 자연/문화, 야만/문명, 여성/남성, 육체/정신을 이분법으로 나눈 인간중심주의적 이원론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고, 자본-제국주의의 토대가 되었으며, 가부장제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자연=여성=육체=야만 대 인간=남성=문화=정신이라는 두 개의 인식론적 등식이 결국 현재 생태적 위기 국면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가부장제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이 자연=여성=육체의 등식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이 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등식이 근대서구자본주의를 태동시켰다고 본다. 자연-물질-여성-육체를 인간-문화-문명-정신과 다른 것으로 놓고, 이 둘 사이를 나누고 분리하면서 근대서구 인간중심주의가 태동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자본주의가 태동하였다. 같이 태동하였다는 것은 인간(=남성=문화=정신)이 물질을 지배하고, 자연을 지배하고, 여성을 지배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정치경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배는 한 종인 인간중심, 한 성인 남성중심, 한 계급인 자본가 중심의 지배를 지칭하기도 한다. 자연파괴, 물질경시, 여성경시에 바탕을 둔 경제체제가 자본주의체제이며, 필자의 말로 자본주의-가부장체제다. 다른 말로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체제다.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넘어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 체제의 적녹보라적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지구온난화와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 지표면의 온도가 높아져서 파생된 위기로 정의한다면 생태위기는 인간종중심의 자본주의-가부장체제가 만든 위기라 정의할 수 있다. 생태위기는 서구 근대의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에 기반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인간중심주의와 연동되어 있다. 다른 말로는 적과 보라와 녹의 문제설정이 연동되어 있다는 말이다. 기후위기 대응이 생태위기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기반하기 위해서는 기후정의가 분리수거, 플라스틱사용,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의 대체 등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화석연료를 넘어 원자력에너지를 넘어 재생에너지로 향해야 된다는 논의 또한 넘어선다.
체제전환이란, 생산체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역사적 유물론에서 논의하는 ‘물질대사’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역사적 유물론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생산양식과 체제를 문제삼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자연을 자원으로 간주하면서 석탄·화석연료의 대체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 위기의식을 계기로 현재의 인간문명에 대한 질문 즉, 자본주의-가부장체제적 인간종중심주의에 대한 생태적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류세/자본세 그리고 ‘남성세’이기도 한 현재의 문명 전체를 다시 보고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이다. 석탄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폐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인간중심의 인식론을 문제삼으며 존재론적 전회가 일어나야 하는 문제다. 생산체제를 문제삼는다는 것은 화력에너지의 전환으로 국한될 문제가 아니다. 생산체제의 전환이란 지금의 자본주의-가부장적 인간중심의 생산체제를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수동적 물질로 보고, 동물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론적이며 정치·경제적인 폭력을 전면적으로 다시 보고, 인식론-존재론-가치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기후위기 담론과 운동을 이러한 전환의 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간이 물질성과 신체성 그리고 동물성을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정치와 경제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치론적 전환을 동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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