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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그늘, ‘실패 이후’에 관하여이슈 2025. 8. 31. 00:27
김은희
사빠띠스따는 ‘물으면서 우리는 걷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는 그 길을 모른다)
길을 묻는 것이 혁명적 과정 자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묻는다.
- 존 홀러웨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갈무리, 2002) 중에서
광장의 ‘민주주의’는 승리한 걸까?
느닷없이 닥친 비상계엄으로 인해 열린 탄핵광장은 겨울을 지나 봄이 무르익도록 여의도 그리고 경복궁역 앞을 들락이게 했다. 많은 이들이 형형색색 물든 ‘빛의 혁명’을 상찬했고, ‘응원봉을 든 2030 여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대중들’들은 스스로 길이 되어 다른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들였다. 마스크로 자신을 감추기보다 광장식 인사로 존재를 가시화하면서 연대를 생성해내고 있다. 남태령 그곳에 모인 이들이 만들어낸 연대의 힘은 어떤 홀러웨이의 표현처럼 “행위할-힘의 비순응적-넘쳐흐름”으로 다가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일렁인다.
탄핵광장을 지나오면서 가장 답답했던 시간은 길게 늘어지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광장에서 외친 ‘법치(法治)’는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사이 어디쯤이었을까. 지리한 기다림 끝에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파면”을 결정했고,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장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였다는 20대 여성조차 사회대전환연대회의를 통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 비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인원이 2배에 가깝고,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국민의힘의 김문수 후보 최종득표율이 41.15%에 달했다는 두 가지는 놀랍진 않지만 두려운 결과다.
그렇게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색 빛 혁명과 K-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지만, 차별과 인권도 여성도 말하지 않았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첫 번째로 꼽으면서 앞으로의 살길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에서 찾고 있다. 그리곤 둘째도 셋째도 오직 성장을 강조한다. 길지 않은 취임사에서 ‘성장’이라는 단어를 20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은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정당”이라는 새 대통령의 방향에는 대처리즘이 드리워있는 듯하다.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종목이 바뀌었을 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산을 소유해서 자본주의의 일부가 되는 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 사회를 권하고 있다.
어떤 부대낌 그리고 예정된 결과
그간 우리 사회가 지나온 광장들의 경험은 어땠나? 긴 시간을 조망하면서 학자들은 광장의 경험을 "선형적 승리보단 민주화와 탈민주화의 교차", "포스트권위주의와 포스트민주주의의 진자" 등과 같이 분석했다. 또한 사회학자 김정환은 한국의 광장과 민주주의를 죽임당하는 민의 자연적 신체 그리고 결집을 이루는 민의 집합적 신체라는 두 가지 스펙터클로 분석했다. 그는 죽음과 부활(resurrection), 결집과 봉기(insurrection)라는 죽음-결집의 계보는 예외적이고 비일상적인 사건이 되고, 민주주의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등장하지 않았나를 질문한다. 지금도 비상이 일상이 된 폭력과 배제로 인해 일터에서 거리에서 생명들이 바스러지고 있는데, 최후의 보루로는 답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다.
조기대선을 경과하면서 우리 사회의 ‘광장 이후’를 말하거나 혹은 “광장은 끝나지 않았다”는 논의들이 제출되고 있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빛나는 광장과 대선 결과에 대해 ‘승리’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듯하다. 파시즘적 징후에 대한 우려나 청년남성의 보수화 또는 극우화에 관한 담론들도 무성해진다. 한국의 역사적 파시즘 체제는 특정 시기 국가적으로 나타났던 일련의 파시즘 양상에 대한 회고적 분석이기보다, 박경미의 분석처럼 "과거의 재구성’을 통해 ‘현재의 낯섦’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서부지법 폭력사태와 같은 특정한 사건과 정치적 현상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 파시즘적 사회체제의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작동을 경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광장을 계속 오가며 동료들과 같은 깃발 아래 어울리며 분노하지만 즐겁게 뭉쳐 어울리기 어려웠고, 광장 한복판에서 조금은 비켜나 주변을 서성이게 되는 어떤 부대낌이 없지 않았다. 실패가 공중에 떠도는 듯 혼란스러운 시기에 실패를 탐구한다는 캐서린 알렉산더(Catherine Alexander)의 구절이 떠올랐달까. 대선에서의 현실정치 양상은 위성정당을 만들어낸 야권연대 구도와 판박이다. 이는 탄핵광장을 채운 공기가 마냥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찝찝함을 숨 쉬듯이 감각하게 했다. 정치의 실패는 어떤 예외가 아니라 시스템 작동 자체에 예정된 ‘실패 이후(post-failure)’가 패턴화되고 있다.
위성정당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선 국면 선거의 시간이 시작되면서 〈내란종식·민주헌정수호·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원탁회의)〉는 “압도적 승리”를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은 원탁회의 제2차 선언문에서 “민주헌정수호 다수연합 실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선거 직후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마무리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고 합의했다. 이 ‘다수연합’은 민주진보세력의 대안적 헤게모니 구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류정치와의 다수자연합을 통한 이해관계 조합이다. 그리고 대선 이후 정치개혁도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와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협소해졌다.
헨더슨은 한국을 일컬어 "소용돌이 정치"라고 진단한다.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선거정치에 모든 의제가 빨려 들어가고, 넓고 깊고 광장의 정치도 대선 국면 선거 승리로 귀결되었다. ‘비판적 지지’라는 유령도 때마다 등장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기득권 양당 중심의 정치질서가 공고화되면서 대안적 정치세력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은 차단되었고, 사회운동도 굴절되어 왔다. 대의를 왜곡하는 기득권정치에 균열을 내고자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한 다원적 정당구도를 모색하고, 그 방법론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치개혁을 추진해왔다. 이런 노력을 어그러뜨린 것이 바로 위성정당 사태다. 위성정당은 정치에 윤리와 책임, 신뢰 따위는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22년 당시 이재명 대표는 2020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하면서 잠시 길을 잊어버렸다고 “정도로 갔어야”했다고 반성했다. 2022년 대선에서 위성정당 금지를 공약하면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다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준(準)위성정당’을 만들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민주당 일각에서는 “다른 소수정당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게 하자는 주장을 하는 게 자기모순” 아니냐고 반문한다.
위성정당, 그런데 여성의 얼굴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제도 해킹’을 두고 전문가들은 “자기기만”(조석주)이며, “준위성정당 정도가 아니라 하이퍼(hyper·超) 위성정당”(박원호)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소득당과 사회민주당 등은 위성정당의 위성정당을 만들어 준위성정당에 몸을 실었고, 제도화된 시민사회 일부에서도〈정치개혁과 연합정치를 위한 시민회의〉를 꾸려 통합비례정당(준위성정당)과 함께 했다. 2025년의 광장연합은 뭐랄까 더불어민주당과 준위성정당 그리고 ‘유사 위성정당’의 조합이다. 여성들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2024년 총선 준위성정당 참여를 통해 진보당은 현재 지역구를 포함한 원내의석 4석을 확보했고, 그 중 3명이 여성의원이다. 기본소득당 역시 용혜인 대표가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진보당 김재연 대표는 “여성후보 없는” 조기대선에서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예비후보로 나섰지만, 이재명 후보를 ‘광장의 후보’로 호명하면서 그의 압도적 승리를 위해 알아서 사퇴했다. 조기대선 이후 이재명정부 인선 과정에서 비례대표 승계가 이뤄지면서 손솔 의원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고, 더불어민주연합과 더불어민주당을 거쳐 다시 진보당으로 복당했다. 당선되고 본회의 첫 연설에서 60만 명이 넘게 서명한 이준석 제명 청원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고 차별금지법 제정 공론화위원회를 제안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회의원 의석을 가져다준 위성정당이 새긴 흔적이 사라지진 않는다. 페미니즘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다른가. 진보당이나 기본소득당의 ‘페미니즘 정치’를 낡은 정파 구도로 납작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과연 충분한지도 토론된 적이 없다.

2025년 8월 25일, your party를 알리고자 무대 위에 선 술타나 ⓒ Zarah Sultana 페이스북 아직은 없는, 대안정치 정당의 가능성
제도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결정할 권한은 기득권 정당에 있다. 진보정당도 사회운동도 그동안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제도화를 통한 정치개혁을 도모해왔고, 어떤 교착상태에 온 듯하다. 할당제의 법적 제도화를 통해 동등한 대표와 젠더민주주의를 추구해 온 여성운동의 고민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사례처럼, 제도화 자체는 성취할지라도 사회적 무게중심이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패러다임 내에서 길들여지고 수용되어 결과적으로는 대안으로서 힘은 약화 된다. 정책에는 가까워졌을지 모르나 정치로부터는 더 멀어져 보인다는 포레스터의 지적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서로 전혀 다른 계보의 논의이지만, 소이치로가 말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퇴화에 맞서는 풀뿌리 반파시즘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의 정치적 형태’에 관한 고민과도 이어질 수 있다.
어디에도 뾰족한 수는 없지만, 최근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과 자라 술타나(Zarah Sultana)를 중심으로 제안되고 있는 신당 창당 운동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Your Party, 당신의 당/모두의 당) 결사체는 출발 전에는 “과연 되겠냐” 하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2025년 6월에 10%(New Statesman), 7월에는 노동당 지지율과 같은 15%(Find Out Now) 그리고 18%(YouGov), 8월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에서 발표한 결과에서는 영국인 5명 중 1명 그리고 젊은 세대와 노동당 유권자의 경우 3명 중 1명이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안정당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술타나 의원은 청년여성 정치인으로 학자금 대출 이슈는 물론 여성이슈와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고, 스타머 내각의 우경화와 친이스라엘 행보에 반대해왔다. 8월 13일자『트리뷴』지 인터뷰를 보면, 코빈은 창당 참여자 모집 일주일 만에 60만 명의 서명이 폭주한 상황을 마치 댐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대안을 거부당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기다려왔다더라는 말을 전하면서, 정당정치와 운동정치를 함께 모색하는 것의 필요와 가능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참여제안문(https://www.yourparty.uk/statement)을 보면 현실에 대해 “시스템은 조작되었다(The system is rigged).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서 450만 명의 어린이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이 시스템이 조작된 것이다. 거대기업들이 폭증하는 가격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때 이 시스템이 조작된 것이다. 이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돈은 없다고 하면서 전쟁에 지출할 돈은 수십억 달러 책정할 때 이 시스템은 조작된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부의 재분배와 복지정책 전환, 팔레스타인 가자 학살 반대라는 분명한 입장 등으로 극우정치에 맞서고, 구체적인 내용은 풀뿌리 방식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국 역시 한국처럼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추진의 필요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도를 경유하는 선거제도 개혁에만 메이지 않고 대안정치 정당 조직화 시도를 통해 다른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지는 않을까? 한국 진보정당 운동 역시 역사의 한 시기가 일단락 되어가는 국면을 지나고 있다. 이제 어떻게 내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재발명할 것인가? 발본적인 질문을 해야할 의무가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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