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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판사 선거: 삼권분립의 위기인가 국민주권의 새로운 전기인가이슈 2025. 8. 27. 02:17
수경
2025년 6월 1일 멕시코에서 선거가 진행되었다. 행정부의 수반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도 아니고, 입법부를 구성할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도 아니었다. 세 개의 국가 권력 가운데 국민의 직접 선거 대상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법부가 세계 최초로 선거의 무대에 올랐다. 연방제인 멕시코의 각 주 지역 법원부터 연방 단위의 1심 법원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판사를 직접 투표로 선출했다. 이번 선거는 2024년 9월 15일 공표된 사법 개혁에 따른 결과였다.
사법 개혁은 극단적인 대립을 낳은 쟁점이었다. 2024년 2월 5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개혁안을 제안한 후, 약 7개월 만인 9월 11일 상원을 통과한 후 주 의회의 동의를 거쳐 9월 15일 공표하였다. 야당과 대다수 법조인은 개혁안에 반대하며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했다. 2023년 대통령과 대법원 사이의 대립이 사법 개혁의 직접적인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경 모레나(Morena), 노동당(PT), 녹색생태당(PVEM)이 결성한 좌파-중도 좌파 선거 연합이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손에 꼽힐 만큼 지지층이 두터웠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제안한 법률 및 헌법 개혁안은 번번이 대법원에서 무력화되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사법부를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엘리트 세력으로 간주하며 사법부와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그는 사법부가 정치화되었다는 판단 아래 사법부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혁을 추진했다. 멕시코의 사법 개혁은 행정부, 특히 대통령이 강행한 개혁이었으므로 개혁안이 제안된 순간부터 선거가 두 달 지난 현시점까지 대다수의 법조인과 전문가가 행정부에 의한 사법부의 자율성 침해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표명하고 있다. 판사 선거가 종료된 후인 2025년 6월 16일 야당 측에서는 부정 선거 의혹 등을 제기하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 무효화를 위한 소장을 제출했다.
역사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는 권력투쟁의 주축을 이루어 왔다. 이에 비해 사법부는 기술 관료적 성격이 강해 오랫동안 정치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사법부가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이자 헌정질서의 최종 해석자로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위상은 점차 강화되었다. 20세기 후반 여러 나라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정치적 쟁점의 주요 행위자, 혹은 최종결정권자로 등장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정치적 사안을 법률적 사안으로 가공하여 사법부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손을 빌리거나, 사법부는 객관성과 전문성이라는 커튼 뒤에서 정치적 사안을 결정했다. ‘정치의 사법화’는 최근 세계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정치적 현상이다.
애초에 삼권분립은 권력의 독점을 막고 상호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 목적은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멕시코 사법 개혁은 행정부의 개입으로 진행되었으나, 그 결과 이론적으로 국민의 주권 행사에 ‘더 적합하다’고 간주되는 직접 선거로 3대 국가 권력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기술적으로 삼권분립을 고수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국민의 주권 행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 가운데 ‘더 민주적’인 것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더 민주적’인 것이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가치이자 제도적 완성인가. 이백여 년의 시간 동안 다수의 인간사회가 민주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판사를 선거로 선출한다는 전례 없는 상황이 부각 되었지만, 멕시코 사법 개혁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 대법원의 권한이 축소되었다. 기존 대법관은 15년 임기의 11명으로, 대통령이 추천한 3인 후보 가운데 상원에서 2/3 찬성으로 지명되었다. 이번 개혁을 통해 대법관의 수가 11명에서 9명으로 축소되었고, 임기는 12년으로 단축되었다. 기존 8명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했던 위헌 판결은 6명 찬성으로 바뀌었으며,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헌법소원의 효력도 확대될 수 있었으나, 이제 신청인에게만 적용된다. 둘째, 판사 임명 등 사법부 인사 관리 및 감사 징계 기능을 수행했던 연방사법위원회(Consejo de la Judicatura Federal)를 폐지하고, 사법징계법원(Tribunal de Disciplina Judicial)을 창설하였다. 사법징계법원은 독립된 헌법 기관으로, 기존 사법부 조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국민이 선출한 판사로 구성되어 판사 및 사법부 직원에 대한 징계, 벌금, 해임, 자격 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판사 및 사법부 직원에 대한 징계 권한이 사법부 내부에 있음으로 내부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을 외부 감시 제도를 마련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던 판사 선거이다. 이번 사법 개혁을 통해 사법부의 구성 방식이 임명 중심에서 선출 중심으로 전면 개편되었다. 각 주의 법원부터 연방 대법원까지 멕시코의 모든 판사는 국민 투표로 선출된다.
사법 개혁의 결과 2025년 6월 1일 다음과 같은 총 6가지 직위의 연방 판사 881명이 선출되었다.
- 여성 5명과 남성 4명으로 구성된 대법관 9명
- 연방사법부 선거재판소 상급법원(Sala Superior de Tribunal Electoral del Poder Judicial de de la Federacion) 판사 2명
- 연방사법부 선거재판소 지방법원(Salas regionales del Tribunal Electoral del Poder Judicial de de la Federacion) 판사 15명
- 신규 창설된 사법징계법원(Tribunal de Disciplina Judicial) 판사 5명
- 항소심 담당 법원(Magistraturas de Circuito) 판사 464명
- 1심 담당 연방 지방법원(Juzgados de Distrito) 판사 386명
같은 날 멕시코시티와 18개 주의 지역 판사 선거도 동시에 진행했다. 2027년 연방 판사의 나머지 절반인 약 850명에 대한 선거가 다시 진행되고, 연방 헌법 개정에 따라 주 헌법을 아직 개정하지 않은 나머지 13개 주에서도 지역 판사 선거가 진행되면, 멕시코는 판사 전원이 선출직으로 바뀌게 된다.
2025년 6월 선거에서 총 2,681명을 선출하는 데 약 7,700명의 후보자가 선거에 출마했다. 대법관 9석에 64명이 출마하였으며,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 판사 850명을 선출하는 데 3,000명 이상이 지원했다. 입후보 기본자격은 상당히 너그럽다. 법학 학위 소지자로서 일정한 평균 성적과 실무 경력을 가진 멕시코 시민권자는 판사 후보로 지원할 수 있다. 지원자는 형사법상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고, 최근 1년간 장관, 국회의원, 주지사 등 특정 공직에 종사한 적이 없어야 한다. 지원자는 법에 대한 철학을 기술하는 에세이와 5통 이상의 추천서와 각종 증명서를 플랫폼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사실상 법학 학위 소지자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판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원자는 심사위원회의 평가를 통과하거나 무작위 추첨으로 후보자가 된다. 심사위원회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서 각각 5명을 지명하여 총 15명으로 구성되었다. 행정부에서는 대통령이 단독으로, 입법부에서는 상원의 정족수 의결에 따라, 사법부에서는 대법관의 다수결에 따라 지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지명한 5명의 평가위원이 사퇴하는 등 절차 진행이 어려워진 경우나, 동점자 발생 시 무작위 추첨으로 후보가 결정되었다.
판사 후보의 선거운동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라디오 방송과 TV를 통한 선거운동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고, 공청회라 할 만한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유인물이나 명함을 배포하거나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유권자와 직접 접촉하는 방식만이 허용되었다. 선거 자금력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줄었지만, 제한적인 선거운동은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이루어지는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을 낳았고, 결국 13%대의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 절차도 복잡해서, 주에 따라서 총 9장의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는 알록달록 색깔과 기호로 표시된 빼곡히 적힌 이름을 파악하며 마치 시험을 치르듯이 도장을 찍어야 했다.

지역에 따라 한 사람이 최대 9장의 투표용지를 배부받았다 ⓒ 멕시코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한 투표용지 샘플 판사를 선출한다는 획기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선거운동과 선거 절차 역시 기존의 대통령과 의회 선거와는 매우 달랐으며, 이 모든 ‘다름’은 의구심으로 표출되었다. 후보 결정과 선거 과정에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여 사법권의 자율성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투표용지 9장에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유권자의 문해력이 충분한지, 후보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판사 당선인이 대중적인 인기만 쫓으며 판사로서의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은 아닌지 등등 우려와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았다. 반면, 직접 선거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게 된 국민 대다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에 환호하거나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이는 선거의 정당에 대한 또 다른 의구심을 낳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꿀만한 사건도 생겼다. 선거 두 달 후인 7월 28일 선거관리위원회는 200건 이상의 벌금과 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 가운데 176명의 후보자는 소위 ‘아코디언’에 이름이 적힌 탓에 불법 선거 운동으로 벌금을 선고받았다. 선거운동 기간 일부 후보자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명단이 소셜 미디어뿐 아니라 인쇄된 형태로도 유포되었는데, 여당인 모레나의 당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을 치르는 듯 복잡한 선거에서 친여당 성향의 후보자 리스트를 마치 컨닝 페이퍼처럼 만들어 준 것이다. 멕시코에서 ‘아코디언’은 ‘컨닝 페이퍼’를 부르는 은어이다. 여러 가지 버전의 ‘아코디언’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돌아다니면서 정당이 판사 선거운동에 조직적으로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멕시코의 사법부 선거는 제3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현대 사회의 합리적 제도적 모델에서 어긋난 기상천외한 이벤트였고, 그런 이벤트의 당연한 수순으로 부정부패로 얼룩진 것처럼 보였다.
2025년의 멕시코 판사 선거는 실험이었다. 마땅히 평가되어야 할 지점이 파묻혀버린 실험이었다. 실험의 성패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 선거에서 제기된 의구심은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적 속성을 검토하게 만든다. 사법부만이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의 자율성은 보장되고 있는가, 삼권분립은 일종의 가설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복잡한 선거 절차에 대한 우려란 애초에 국민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우민한 존재라는 엘리트주의가 기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그들이 가진 중요한 권한을 행사할만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선거를 통해 평가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의 경우 앞선 2004년과 2017년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에 뒤이어, 2024년 12.3 내란으로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더욱 분명해졌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를 수반한다. 정치적 사안을 의뢰받아 세간의 이목을 끈 법조인은 정치인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하고, 본인의 홈그라운드인 사법 체계의 질서, 관습, 문화를 정치에 활용한다. 이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의 민주주의 제도는 삼권분립을 전제했으며,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지만,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현재적 모습은 ‘삼권결탁’이다. 한국도 멕시코도 그 맥락과 양상은 큰 차이를 보이지만 삼권분립은 애초에 신화였거나 도달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해 마련된 장치인 삼권분립이 온전히 작동하지 못할 때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가에 있다. 삼권분립도, 정당 선거도, 법 기능도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란 국민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만큼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심문을 받고 있다. 자기결정권은 천부적 권리가 아니라 투쟁을 통해 성취한 산물이었다. 자기결정권은 사회적으로 설득하고 증명해내야 하는 자질이다. 지금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파워 게임의 시기가 아니라 국민이 자기 증명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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