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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이주여성의 몸을 식민화하기 ‘출산과 돌봄 노동 떠넘기기’이슈 2024. 8. 28. 00:38
정혜실
지난 2024년 6월 19일 국민의 힘 이헌승 국회의원을 대표로 12인이 발의한 국적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안되었다.
<제안이유 및 내용>
현행법은 배우자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외국인이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거나 그 배우자와 혼인한 후 3년이 지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경우 귀화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음.
그러나 최근 농촌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이 혼인기간을 채운 후 가출하여 혼인이 파탄되거나 외국으로 출국하는 사례와 같이 국적취득만을 목적으로 혼인기간 유지 후 이혼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국제 결혼한 농촌 남성들과 가족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 있음.
이에 배우자가 대한민국 국민인 외국인에 대한 간이귀화의 거주기간 요건을 2년 이상에서 4년 이상으로 늘리는 등 국적취득 요건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국적 취득만을 목적으로 한 위장 국제결혼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안 제6조제2항).
국적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6조제2항제1호 중 “2년 이상”을 “4년 이상”으로 하고, 같은 항 제2호 중 “3년이”를 “5년이”로, “1년 이상”을 “3년 이상”으로 한다.
부 칙
제1조(시행일) 이 법은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2조(간이귀화 요건 강화에 관한 적용례) 제6조제2항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이후 배우자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외국인이 법무부장관에게 귀화허가를 신청한 경우부터 적용한다.<표1> 국적법 일부개정안 제안이유 및 내용
이번 개정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농촌 거주 남성들과 그 가족들이 결혼이주여성의 위장 국제결혼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받지 않도록 간이귀화의 요건을 거주기간 2년 이상에서 4년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개정 법률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자 이주여성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하여 46개 단체와 개인 109명이 연명을 통해 반대의견서를 발표하였다. 반대의견서 취지는 아래 표2와 같으며 전문은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대의견서>
○ 지난 6월 19일 국민의 힘 이헌승 의원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국적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하였습니다. 배우자가 대한민국 국민인 외국인에 대한 간이귀화 거주기간 요건을 현행 2년 이상에서 4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으로 국적취득 요건을 강화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 농촌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이 국적취득만을 목적으로 혼인 기간 유지 후 이혼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성·인종차별이며, 농촌지역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현재 결혼이주민에 대한 체류정책은 결혼이 유지되어야 안정적인 정착과 지속적인 체류가 가능하도록 이주여성의 자유와 체류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귀화제도 역시 불허율이 40%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이주여성에 대한 체류와 귀화 정책이 불안정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지적과 개선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 이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여성단체연합을 포함한 46개 단체와 개인 109명은 국적법 개정안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철회를 요구하며 "국적법 일부개정안 반대 의견서"를 발표하였습니다.<표2> 반대의견서. 차별과 편견을 담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간이귀화 요건 강화 반대한다
사실 국적법과 관련한 규정은 결혼이주여성과 한국 남성 배우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주남성과 한국 여성 배우자에게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제안 이유 어디에서도 이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결혼이주여성을 겨냥해 농촌 남성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피해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결혼을 통해 독립된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할 부부 당사자들이 핵심주체가 아니라 남성 배우자 가족까지 포함한다는 것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얼마나 가부장제에 충실한 정치인들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하지만 이 법안을 반대하는 여성단체들조차도 가부장제의 문제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이며, 농촌 남성에 대한 편견이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반대의견서 전문에는 “서울 경기와 같은 도시 거주 한국 남성들의 결혼이주여성과의 혼인비율이 54%이며 그다음이 경남과 충남이 뒤를 잇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국제결혼이 부계혈통주의에서 양성평등주의로 개정된 1997년 국적법에 의해 이미 자동으로 주어지던 국적이 2년 국내 거주 후 귀화 심사 형태로 바뀌면서 국적취득이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의견서] 차별과 편견을 담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간이귀화 요건 강화 반대한다. https://women21.or.kr/statement/24610참고할 것).
사실 국적 자동부여로 인해 부계혈통주의에서 양성평등주의로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도 더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부계혈통주의로 인한 피해자는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여성들이었다. 이들이 지적하듯 출가외인이라는 가부장제적인 관습 때문에 국적법조차도 한국 여성들의 배우자인 결혼이주남성들이 안정적인 체류가 불가능하도록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호주제 폐지 이후 개정된 국적법으로 인해 결혼이주남성의 체류가 결혼이주여성과 동등해졌다고 보기보다, 결혼이주여성의 위치가 열악하게 바뀐 것에 불과하기에 형식적 양성평등주의가 실질적 양성평등주의로 이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만약 한국인이 결혼하고자 한 외국인 배우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국적이 자동으로 부여되었다면 다르지만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왜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회자 되었고 국가정책이기까지 했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저출생 문제는 현재는 지역소멸 문제로 이어질 정도로 농촌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촌 이야기는 무수했고, 나이 들어가는 농촌의 남성들을 걱정하던 국가는 농촌에 남지 않는 한국 여성들을 대체할 여성을 이주여성으로 채우고자 했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오게 된 이주여성은 농촌 남성이 가족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농촌이라는 지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해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결혼이주여성의 몸은 자녀를 낳아 결혼의 진정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출산할 수 없는 몸들은 귀화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순위에 밀렸고, 만약 성격 차이로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기에 추방의 대상이 된다. 이를 한국 남성 배우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체류자격이라는 조건으로 국가가 결정한다. 한국의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몸만을 원하는 국가는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 이주여성 또는 가족을 떠나려는 이주여성의 삶의 맥락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삶의 도전이었을 결혼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적인 질서 안으로의 편입일 뿐이고, 이주여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통제에 속박당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제를 벗어날 기회는 온다. 바로 그것이 귀화라는 절차이고, 국적취득은 해방의 시간을 부여한다. 한 남자와 결혼을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이때 획득되는 것이다. 그것이 못마땅한 국회의원들이 결혼이주여성에 대하여 국가가 좀 더 통제의 시간을 늘리고, 가부장제적인 가족구조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도록 족쇄를 오래 채울 수 있게 귀화자격을 손질하려는 것이다. 개정법안을 발의한 자들이 바로 국가의 가부장제를 대리하려는 자들이며, 법으로 이러한 족쇄를 채우려는 자들이다. 이주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삼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감추지도 않은 채 출산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혼인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다.
애초에 결혼이주여성의 출산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력의 재생산을 의미했다. 농촌은 농업이주노동자들이 채워 줄 것이라고 이주노동자들을 끌어들였지만, 끊임없는 사건사고의 발생과 인권침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기보다는 비용이 덜 드는 방식으로서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족들을 계절이주노동자라는 그럴듯한 체류자격을 빌미로 불러들이고 있다. 기숙사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할 때만 잠시 고용하고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따로 없다. 타인의 몸을 마음대로 처분해왔던 노예제로부터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제도적 외피를 입었지만, 국가는 결혼이주여성의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 사회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 사회를 배우라고 강요하면서 그 이유가 앞으로 낳게 될 한국 아이를 위해서임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데려다 바치라고 요구한다. 마치 특권인 양 결혼이주여성 가족에게 우선권을 주는 제도로 포장한 채, 부족한 농촌의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라고 말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어머니는 한국 아이를 위한 양육을 떠맡는 도우미이자 모성으로 소환되어왔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그 소환은 중지된다. 농촌 일손이 아닌 이주여성의 부모 또는 형제는 도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오직 아이 양육만이 가능할 때 자리가 주어진다. 그래서 결혼이주여성의 어머니가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은 아이 양육을 도와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이주여성은 이제 한국 남성의 배우자로 등장하거나 한국 아이의 할머니로 등장하고 그 둘의 몸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국가적 사명 속에서 체류 지위를 획득해 간다.
결혼이라는 가부장적인 제도 안에 위치하고 있지 않는 경우, 이주여성은 한국인들만으로 구성된 가정으로 그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돌봄 노동자로서 유입된다. 중국동포라는 특별한 체류 위치가 제한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수행할 중국동포여성들에게만 주어졌다.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감시카메라가 동원된 것을 보면 믿지 못할 양육자로 의심받아왔다. 하지만 중국동포여성 돌봄 노동자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자기 경력을 포기할 수 없는 여성들이 출산을 미루지 않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조력을 대체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 시급한 양육의 해결사로 등장한 중국동포 여성들은 어느새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다. 고용의 주체가 될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이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을 ‘돌봄 노동자’로 채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https://v.daum.net/v/20240728132914530 중앙일보, 문희철기자, 2024.7.28일자 기사 참고). 정책을 집행하는 자들이 워킹맘을 지원하여 저출생을 해결하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명문을 내세웠지만, 실은 중산층 이상의 지불 능력을 갖춘 여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제도이다. 양육의 조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저임금 노동자들, 야근을 해야만 생계유지가 가능한 하층계급의 노동자 여성들을 위한 제도는 절대 아닌 것이다. 공적 지원을 통한 돌봄을 해결할 체계를 만들고, 노동시간의 단축과 주4일제와 같은 근무제의 재편은 기업에게 비용이 가중되므로 고려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가사노동을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여성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 대체재로서 이주여성 가사노동자의 몸은 세계화의 하인들이 되어 서구를 향하던 것에서 대한민국의 서울의 중산층 이상의 한국 여성들 대신 아이를 돌보고 때로 집안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성들 사이의 인종적 위계와 계급 차이 그리고 불평등한 고용형태의 차이가 ‘돌봄 노동’이라는 행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사서비스 정부 인증 서비스 홍보 영상 (출처: http://www.ikbn.news/news/article_print.html?no=164643) 국가는 돈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장가가지 못하는 남성들을 위해 결혼중개업자를 통해 결혼을 거래하게 하고, 한국 남성들이 결혼 시장에 진입하여 이주여성을 소비하는 주체가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국가는 이 한국 남성들을 대신하여 가부장제적 가족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주여성들의 몸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때로 추방의 가능성을 두고 위협함으로써 그 몸을 식민화한다. 식민화된 몸을 통해 저출생과 노동력을 해결하고자 이주여성의 가족까지도 끌어들인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한국인 중산층 이상의 가족들을 위해 가사서비스를 수행하는 몸으로 이주여성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다시 소비의 주체로 등장한 한국사회의 중산층 이상의 가족은 일과 가정의 양립만이 아니라 영어를 가르쳐줄 능력까지 갖춘 돌봄 노동자를 한국 여성의 양육과 가사노동을 대신할 몸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이주여성의 몸은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에 의해 체류자격의 요건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도구화되고 식민화된다. 이에 공모자가 된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이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전복하지 못한 채 이를 두고 볼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 여성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방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우리 여성의 몸을 가로지르는 인종과 계급과 출신국과 출신지 그리고 학력과 사회적 신분 등의 속박을 벗어내고 여성해방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모색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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