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멕시코 대선: 전환기를 맞이한 로페스오브라도리즘이슈 2024. 8. 28. 00:43
수경
2024년 6월 2일 멕시코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당일 출구 조사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파르도(Claudia Sheinbaum Pardo)의 당선이 확실시 되었다. 베르타 소치틀 갈베스 루이스(Bertha Xóchitl Gálvez Ruiz)를 30%포인트나 앞서며 약 60%의 득표율을 얻었다. 선거 결과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없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셰인바움의 득표율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멕시코 대내외 언론들은 여성, 유대계, 공학자라는 세 가지 단어로 차기 대통령을 묘사하며 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셰인바움은 10월 1일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새로운 행정부를 구성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4년 멕시코 대선은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셰인바움의 당선으로 멕시코 역사상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점이 주목받았지만, 이번 선거는 애초 두 여성 후보 간의 경쟁이었으므로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2018년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에, 셰인바움이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될 때부터 셰인바움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셰인바움과 대선에서 경쟁했던 소치틀 갈베스 역시 2022년 말부터 야권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고,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대립각을 세우며 야권의 대선 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차기 대통령이 여성이 되리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셰인바움이 되리라는 사실도 일찍부터 예상되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모든 여론 조사에서 셰인바움은 1위를 고수했다. 2위인 소치틀 갈베스와 20~30%포인트 차이로 한참 앞서 있었다. 선거전 내내 지지율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셰인바움은 기술관료로서의 역량, 대중을 설득하는 정치적 힘, 리더쉽 등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이력을 가지고 2000년대 정치계에 입문했다. 다수의 언론에서 주목하듯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부모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이었다. 부계 조부모는 리투아니아에서, 모계 조부모는 불가리아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멕시코로 이주했다. 화학자였던 아버지와 생물학자였던 모친은 1968년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셰인바움은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정치 활동과 매우 가깝게 성장했다. 그는 자신을 ‘68혁명의 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회 운동의 분위기를 일찍부터 흡수했다. 1986~1987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셰인바움은 1989년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1990년 에너지 공학 석사 과정에 입학한 후 1994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연구소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도 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자로서 성장했다. 그는 이러한 학생운동 경험과 공학자로서 전문가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정치계에 발탁되었다.
그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은 2000년은 멕시코 정치사에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1929년 창당되어 70년동안 연이어 집권했던 제도혁명당(PRI)이 그해 대선에서 패배하고 국민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실상 20세기 들어 첫번째 여야교체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같은 해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민주혁명당(PRD) 소속으로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PRI가 독주하던 멕시코 정치 무대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 시장으로서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열악한 도시 환경 개선과 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메트로폴리탄 가운데 하나였던 멕시코시티는 도시 환경을 개선할 환경공학자를 필요로 했다. 그때 로페스 오브라도르 시장은 셰인바움을 추천받았다.

2000년대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셰인바움ⓒwww.telediario.mx 셰인바움은 2006년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시장직에서 물러나 대선에 출마할 때까지 도시 환경부에서 기술관료로 활동했다. 그후 2006년과 2012년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대변인을 맡았고, 2015년에는 자신이 자랐던 구의 구청장에 당선되면서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도약했다. 2018년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대통령에, 셰인바움은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되면서 일각에서 로페스오브라도리즘(lopezobradorism)이라고까지 부르는 정치적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2024년 셰인바움의 대통령 당선은 로페스오브라도리즘의 승리로 해석되었다.
로페스오브라도리즘은 로페스 오브라도르라는 한명의 정치인의 영향력과 그의 리더쉽에 의지한 정치 메커니즘을 뜻한다. 2000년 71년동안의 PRI의 집권기가 끝나고 여야교체가 이루어졌지만, PRI와 PAN 등 기존 멕시코 정치 구조를 지탱하고 있던 정치 경제 엘리트의 권력 독점은 유지되었다. 이러한 정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2018년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좌파 통합정당이었던 PRD 소속이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012년 탈당을 선언하고, 사회운동 조직이었던 모레나(MORENA, Movimento de Regeneración Nacional: 국가재건운동)를 정당으로 개편하여 2014년 창당했다. 모레나는 창당 10년만에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서 엘리트의 권력 독점 구조였던 멕시코의 정치 무대를 재편했다. 이 모든 변화는 제도화된 정당 활동보다는 카리스마를 지닌 한명의 정치인, 즉 로페스 오브라도르라에 힘입은 바 크다.
멕시코의 20세기 정치사는 70년 동안의 PRI 일당 독재 체제에서 2000~2018년까지의 20년동안의 보수 정당의 과두제 체제를 거쳐, 2018년 이후 좌파 정당의 집권기로 이어졌다. 1988년 PRI 일당 체제에 반발한 탈당파와 멕시코사회주의당과 노동자혁명당 등 좌파정당이 연합하여 탄생한 PRD는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차이로 끊임없는 분열을 겪었다. PRD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반대하고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자는 데 동의했지만,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사이의 노선 갈등, 주요지지 기반으로 민중 부문을 고려하는 세력과 중산층을 중심으로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이 이어졌다. 더구나 2000년 무렵 약화된 PRI로부터 이탈한 정치인들이 PRD로 유입되면서 PRD 내부의 정치적 입장 차이는 더욱 격화되었고, 좌파정당으로서의 정체성도 약화되었다. 이 무렵 PRD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한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민중주의적 노선을 고수했으나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하면서 당내 분열이 심화되었다. 결국 1988년 PRI에서 탈당하여 PRD를 창당했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012년 다시 PRD에서 탈당하고 2014년 모레나당을 창당했다. 창당 4년만에 대선에서 승리한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후계자인 셰인바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퇴임 7개월을 앞둔 2024년 3월 일간지 레포르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셰인바움은 그를 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되었다.

2024년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셰인바움ⓒwww.cronista.com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무엇보다 최저임금 상승을 통한 경제적 효과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시행에서 비롯되었다. 35년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최저임금은 로페스 오브라도르 집권 시기 두 배 이상 올랐다. 일명 “의자법”이라고 부르는 노동 환경 개선의 법제화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법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거나 휴식 시간을 보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미의 좌파 정권과 달리 로페스 오브라도르에 대해서는 “경제 부문에서는 보수주의자이면서 사회 부문에서는 좌파 포퓰리스트”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즉 부자 증세나 대기업에 대한 제제도 없었고, 집권 이전 보수파가 체결한 석유 부문 계약에 대한 철회도 없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구조적인 변혁을 시도하지 않으면서 멕시코 사회에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 6년동안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이끈 멕시코 정치 및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양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멕시코 사회가 새로운 국가적 비전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셰인바움과 경쟁했던 소치틀 갈베스 역시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시작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고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도스보카스의 정유시설 건설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두 후보의 정치적 비전과 정책적 차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치안 정책과 관련하여 소치틀 갈베스는 범죄자에 대한 관용없는 강력한 처벌을 내세웠고, 셰인바움은 사회 통합을 통한 범죄의 근원적 해결에 중심을 둔 정도이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소치틀 갈베스는 멕시코의 석유 산업 개혁을 앞세웠고, 셰인바움은 에너지 자원의 분배에 초점을 두었다.
정책상 두 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보다는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셰인바움처럼 소치틀 갈베스 역시 2000년 정치계에 입문한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이다. 이달고주에서 태어난 소치틀 갈베스는 오토미 원주민계이다. 그의 조부모와 부친은 오토미어의 일종인 냐뉴(hñahñu)어 구사자였고 모친도 오토미계 혼혈이다. 멕시코시티로 유학을 와서 UNAM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소치틀 갈베스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쉼없이 일을 해야했다. 대부분의 원주민 출신이 그렇듯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이러한 그의 삶의 스토리는 이번 대선 후보로 발돋움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1992년 건축 설계, 자동화 설비, 통신 시설 등에 사용하는 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회사를 설립했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소치틀 갈베스는 원주민 여성들의 경제력을 증진시키고 아동 영양 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여 원주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했다. 이런 그의 활동 덕분에 2000년 비센테 폭스 전대통령은 원주민 발전 위원회장으로 소치틀 갈베스를 초빙했다.

2024년 대선 야권 후보 소치틀 갈베스ⓒwww.eleconomista.com.mx 소치틀 갈베스는 야권의 대선 후보였지만, 과거 멕시코 정치 권력을 독식했던 엘리트 정치인들과는 분명 차별화된다. 보수 정당 연합의 후보로서 그가 개인적 경험과 정치 비전을 얼마나 고수할 수 있었는지, 앞으로 고수할 수 있을런지 알 수 없지만, 야권 후보로 그가 지명된 것은 로페스오르라도리즘의 성공이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의 탄생만큼이나 멕시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이다. 2018년 사파티스타 원주민 여성 지도자 마리추이(Marichuy)는 대통령 후보 등록에 실패했지만 사파티스타 봉기 30주년이 되는 2024년 야권의 대통령 후보는 원주민 여성이었고 선거전 내내 원주민 전통 복장을 입었다. 6년전 마리추이를 향한 인종차별적 시선은 2024년 소치틀 갈베스를 정면으로 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셰인바움의 당선이 로페스오브라도리즘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카리스마 있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양상은 현대 정치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멕시코도 예외가 아니다. 멕시코 정치는 오랫동안 PRI라는 지배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전이었다. 이제 그 대항전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무대로 이전되었다. 과거 PRI의 헤게모니가 지배했던 구태의연한 정치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남미의 분홍빛물결과는 달리 독자적인 흐름을 보였던 멕시코 정치는 더더욱 보수와 진보라는 구태의연한 관점으로는 독해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혹은 진보라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지향도, 정책적 차이가 야기하는 이해관계도, 이론적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부르는 다수의 권력 행사도 아닌 특정 개인을 향한 몰입이 현대 정치 무대의 키노트가 되는 양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셰인바움이 이끌어갈 6년동안의 멕시코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현대 정치의 속성을 응시해볼 기회이다.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멕시코의 판사 선거: 삼권분립의 위기인가 국민주권의 새로운 전기인가 (0) 2025.08.27 ‘마장 집단강간 재판’의 지젤 펠리코: 피해자에서 페미니스트 영웅으로 (0) 2025.02.27 한국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이주여성의 몸을 식민화하기 ‘출산과 돌봄 노동 떠넘기기’ (0) 2024.08.28 이스라엘의 잔혹한 절멸 의지와 팔레스타인의 처절한 저항 사이: 자본군사제국주의 전쟁체제 하에서 팔레스타인의 출구는? (0) 2024.02.28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0) 20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