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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민주주의와 정치: ‘국민’‘국가’를 넘어설 국가정치가 필요하다.기획 주제 2025. 8. 27. 01:54
고정갑희
이대로 충분한가?
계엄, 내란, 탄핵, 파면, 조기대선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한국 사회는 비상계엄 이상으로 비상사태를 경험했다. 과거 독재와 단절되지 않은 권위주의적 친위쿠데타를 광장과 법치가 막아냈다. 6개월의 뜨거움과 혼란을 넘어 새로운 정부의 출범으로 예외 상황이 종식되고, 광장은 ‘승리’했으며, 국가정치는 ‘정상화’되어 이제 안심하고 각자 할 일을 하며, 일상을 살면 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 되었다. ‘극우’라 불리는 윤석열 지지-반탄 세력들은 한풀 꺾였으며, 새 정부는 모습을 갖추고 움직이고 있다는 진단, 즉 국가의 매커니즘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진단이 대세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러한 진단을 근거로 ‘국가정치’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제야말로 사법-입법을 중심으로 한 법치주의와 광장의 민주주의의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국가정치의 방향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한 국가 내의 ‘헌정질서’와 입법기관 무력화를 시도한 비상사태에서 법치주의가 작동하고, 민주주의가 답이라고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의지해서 가면 된다는 생각이 왜 문제적이라 생각될까? 광장 이후 ‘중도보수’를 자청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되는 것으로 끝나면서 광장의 뜨거움이 국가정치의 모순을 건드리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과 함께 사회대개혁을 외쳤지만, 대선 이후 사회대개혁 논의는 사라진 것 같다. 한국 사회 내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 역할을 넘어 한국 사회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민국가가 위치하는 현재의 ‘국가간체계’ 속에서 오늘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현재 국가 간 관계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관세전쟁이라 불릴 정도의 무역관계를 강제하고, 이스라엘이나 러시아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와 전쟁의 피해를 집단학살의 형태로 고스란히 받는 국가와 민족이 존재하는 곳이다.
국가정치를 다시 정의하기
이 지점에서 ‘국가정치’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이후 글의 전개에 대해 혼란 혹은 질문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 ‘국가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좁은 의미의 행정 ‘정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정치는 한 국가의 국내와 국외의 정치 모두를 의미한다. 국내정치는 한 국가 내의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포함하는 제도정치뿐 아니라 광장정치도 포함한다. 한국의 국가정치는 헌법에 의하면 민주공화국 즉 민주주의와 국민을 주권자로 두는 공화주의 정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법치-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를 모두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국가기구는 과두정치 혹은 국가권력이고, 민주주의는 그 권력에 저항 혹은 대항하는 범주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헌법 1조는 ‘민주공화국’과 ‘주권자 국민’을 함께 적시한다. 그러니까 국가정치는 법치와 광장, 국가기구와 ‘국민’의 정치 양쪽을 다 의미한다. 우리는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고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국가정치를 맡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헌법적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국가정치의 영역이고, 민주주의는 법치와 광장(국민) 양쪽에 모두 적용되는 정치적 성격이다. 그러니까 단순화해서 말하면 국가정치는 국가기구로서 입법-행정-사법이라는 3권분립과 국민-광장 두 가지 다 포함한다. 따라서 국가정치의 범주는 법치-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를 포함한다.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제 운영 원리이기도 하다. 법치가 민주공화국의 원리로 규정되어 있으며,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권을 갖는 법치국가, 민주국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며, 국가 경계 너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정치는 국내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정치의 영역에서 한 국가로서 정치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단순히 ‘국제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일국의 국가정치가 그 국가 내의 정치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국민중심주의와 자국가중심주의를 넘어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는 정치를 의미한다. 국가정치가 세계를 생각한다고 할 때, 한 국가가 ‘제국주의-식민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격에 반대하면서 국제법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도 나 몰라라 하는 일국의 국가정치(3권과 국민 혹은 법치와 광장)가 아니라, 헌법 자체가 국가와 정치의 규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국가 내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국경을 넘어 국민을 넘어 국가정치의 비전을 실현하는 역할 또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정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질문할 때다
계엄과 내란 상황이 지나간 이후, 앞에서 말한 법치주의-민주주의와 국가정치에 관한 질문은 첫째,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 관계에 대한 질문, 둘째, 국가정치가 국민-국가 중심성을 넘어서기 위한 방안에 대한 질문이다.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질문은 계엄-탄핵-대선의 국면을 지나면서 광장의 민주주의는 다시 제도정치에 모든 정치적 결정을 넘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국민-국가 중심성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서 드러나듯이 자국민-자국가 중심주의와 관련이 있다. 국민-국가 중심성을 넘어선다는 것은 국가정치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지금의 일국중심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와 국민주권에 관한 질문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관련된 첫 번째 질문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정의에서 출발한다.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는 ‘대한민국’ 국가정치의 아포리아인가? 국가의 정치에서 법치는 기본이 된다는 것을 계엄이라는 예외 사태가 다시 환기시켜 주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우리는 헌법과 법률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법과 법치는 2024년과 2025년에 국가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법/헌법/사법/입법, 그리고 국가기구(국회, 공수처, 법원, 헌법재판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일상에서 ‘일반인’이 국가 법기구와 법제도 그리고 법체계를 이 국면에서처럼 강하게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법이 국가 구성요소임을 명백히 확인한 셈이다. 법은 핵심적인 국가 ‘장치’의 한 축이며 사법부는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 입법과 행정만큼이나 국가‘정치’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법은 그 자체로 국가‘정치’의 장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3권분립 원칙과 주권자 국민을 함께 규정함으로써 대의민주제를 확실히 한다.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그 주인을 ‘국민’이라 규정한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국가의 성격을 규정해준다. 그리고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국가의 주권과 권력의 주체를 규정해준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한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기구’를 규정한다. “국회(입법부), 정부(행정부), 법원(사법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구성, 권한, 역할을 명확히 하여 3권분립 원칙을 실현한다”로 되어 있다.
대의제의 모순은 바로 헌법에 기인한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인인, 주권자라 명시한다. 하지만 3권분립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타내듯이 대의제에서 권력은 사법부와 행정부와 입법부에 나누어 맡겨진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대선과 총선을 통해 선출된다. 선출 당시에는 대의 권력자들은 유권자 국민들의 눈치를 본다.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헌법 또한 ‘민주공화국’이라 명시한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신화화/낭만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권자로서 ‘국민’ 또한 낭만화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구호 이상의 실천력을 갖는 순간들이 있지만, 동시에 제도정치 하에서 명백하게 한계를 지니는 말이다.
국민/국가 중심적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한 질문
광장과 법치의 민주주의를 거치고 조기대선을 통해 등장한 새정부의 대통령 이재명은 2025년 광복절 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식민과 전쟁을 거쳤으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고, “세계 경제력 10위와 군사력 5위”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를 위해 피땀흘린 ‘국민’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국가정치의 측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 내용은 조금 확대하면 군사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가 함께 나란히 동렬에 놓이는 국가정치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군사주의와 자본주의에 저항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균열을 내지 않으며, 헌법이 말하는 국가의 구성요소인 영토와 주권의 명시는 국가의 ‘군사주의’와 민주주의가 균열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으로 국민의 권리와 재산권을 보호한다. 때로 법치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전쟁 기계”라거나 자본주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내 문제에서 다양하게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국가안보와 국가안전이란 말에는 아무도 제대로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저항이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이 결국 인권을 탄압한다는 의미에서 반대했지만,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광장의 민주주의가 군사주의와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대적하기 어렵다. 일부 사회운동체들은 군사주의와 K-방산과 전쟁을 반대하지만 한 국가 내의 민주주의는 자국가중심주의와 자국민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민주공화국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국가로서 작동한다는 의미는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의 87체제 혹은 87헌법이 독재로부터 ‘정치민주화’를 이룩했으나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논의는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실상 법 앞에 평등을 보장하는, 법이 지배하는 국가는 자본주의체제의 소유관계를 보호하며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정치경제적 구조는 문제 삼지 않으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산권 보호는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법치국가는 사회적 갈등을 법적 논리로 치환하여, 근본적인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법치주의적 측면이 민주주의적 측면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일국내의 민주주의 또한 전면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통령에 도전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일국중심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한계를 노정한다.
‘국가주의’라는 일국 중심의 국가정치가 갖는 한계로 인해 세계의 국가들은 비교적 ‘무법천지’에서 존재한다. 물론 국제관계가 작동하고, 국제법이 존재하지만 한 국가 내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국가 담을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 내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국가의 대의 권력, 대표 권력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헌법적, 법률적 조항들이 있다. 하지만 국제법은 이 지구촌의 국가들의 권력남용을 막을 정도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나 러시아 같은 전범국가들에 대한 제제를 할 법적 실행력이 없다. 남아공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로는 제어력이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집단학살 등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2년 로마협약에 따라 설립되었다. ICC는 2023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발부하였다. 같은 해 2023년 그리고 미중러에 속하지 않는 5개의 ‘글로벌사우스국가’(남아공, 방글라데시, 볼리비아, 코모로, 지부티)가 가자지구 내에서 자행되는 ‘전쟁 범죄’를 멈춰달라며 ICC에 수사 의뢰를 했다. 이스라엘은 가입하지 않은 상태고, 팔레스타인은 2015년 가입한 회원국이다. 참고로 남미 볼리비아가 전쟁 발생 뒤 가장 먼저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었고, 벨리즈가, 차드, 바레인 요르단 콜롬비아 칠레 등도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하거나 자국대사를 소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항의했다. 소수지만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향한 국가정치를 실행하는 국가들이 있다.

01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국가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법치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와 광장의 민주주의가 계엄과 탄핵 너머, 어디까지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향할 수 있고,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국가정치와 관련하여 민주주의를 어디까지 정치적 이상으로 갖고 갈 것인지 물어야 한다. 국가정치란 세계 속의 한 국가로서 세계의 정치상황에 어느 정도 법치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정치행위를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법치-민주주의로 우리가 세계속에서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가?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라는 배타적 정치 이상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장치가 인류사/세계사에서 믿고 갈 만한 정치적 단위인가? 국민주권을 위탁하는 대의민주제가 바람직한 정치 제도인가? 한 국가를 중심으로 경계가 만들어진 국가정치와 국가주의가 지구적 차원의 정치의 폐해가 되지는 않는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아니면 우리는 계엄-탄핵-조기대선을 계기로 늦었다 하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을 넘어 변혁의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해야 한다면 무엇부터 해야할까?
역설적으로 일국의 ‘국가정치’의 비전과 방향성이 중요하다.
자국민/국가중심주의와 자본주의-군사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국가정치의 비전이 필요하다. 광장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지금, 계엄과 내란을 막은 힘으로, 생태주의-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적녹보라)적 비전과 지구지역적 위계와 불평등 구조에 대한 대안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국가정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계 속의 하나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가정치는 어떤 비전을 갖고 어디를 향해야 할까? 한국은 K-방산 무기수출로 경제이익을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국가가 되고자 애썼지만, 국제사회는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의 욕심을 방관하며 지금의 가자 참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 운동이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학살에 대해 항의와 시위를 한다. 하지만 국가정치 자체가 국가간체계 속의 약소국을 제대로 직면하는 정치가 되려면, 이번 비상계엄과 내란, 탄핵, 파면, 대선 과정 속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을 향했는지 살펴야 한다. 정부가 경제 10위를 이야기할 때, 입법과 사법은 이를 저지하면서 반자본주의-반군사주의를 향해 명실공히 권력분립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입법부 또한 앞장서서 성종계급적 모순에 눈감는 ‘진짜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상대적 약소국/종속국으로서 대한민국 또한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행정부가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울 때, 입법과 사법이 행정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3권분립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일국가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국가주의’는 윤석열, 트럼프, 네타냐후, 시진핑, 푸틴 같은 정치지도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다. 자랑스러운 ‘국민’, 국가의 주권자로서 국민, 새 대통령이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하는 ‘국민’에는 비국민은 포함되지 않고, 비인간은 포함되지 않으며, ‘자연’은 포함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주권에 대한 헌법적 단서조항이 필요한 이유다. 아니 헌법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지구헌법’과 ‘지구법학’ 개념이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등장했다. 자연권/생태권의 법조항을 말하면서 부각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이상주의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국가의 헌법이 새로운 국가정치의 비전을 갖고 세계 속의 국가헌법을 향해 갈 수 있을 때, 제국주의/식민주의 야심 또한 대적할 수 있다.
광장과 법치가 ‘국민’‘국가’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계엄-탄핵-조기대선을 거치면서 법과 법치주의만큼이나 그동안 숱하게 논의되어온, 아니 그냥 일상화되었다 할,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24년과 25년 추운 겨울의 뜨거운 광장은 민주주의가 답이라는 생각을 쉽게 갖게 한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에 기대고 의존한다. 무엇보다 이번 계엄-탄핵-대선 국면은 국가정치에서 ‘광장’이 부각되는 역사를 만들었다. 국가의 ‘국민’을 넘어 다양한 목소리를 낸 광장은 2008년, 2016년에 이어 국가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파면이 광장정치를 통해 가능했던 셈이다. 특히 이번은 여의도, 남태령, 광화문, 한강진이라는 광장의 장소 이름들과 트랙터와 응원봉, 은박외투와 다양다종의 깃발이 국가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했다. 국가간체계 속의 대한민국의 국가정치에 대해 현재는 하지 못하지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답을 제시하려면 국가정치에 대한 깊숙한 질문이 필요하다. 국가정치와 국가주의, 그리고 자국민주의, 국민 외의 존재들에 대한 구조적 고민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체제와 그 너머 세계체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국가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국민’ 주권을 넘어 새로운 주체들의 주권을 고민하고, 일국의 국가정치가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도록 법치와 광장이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것도 그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국민’ 너머로 국가의 장벽을 열 수 있는지 논의하면서 ‘헌법’에 명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의 뜨거웠던 광장과 법규범이 기존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재생산하는 것을 넘어, ‘국민’국가를 넘어, 새로운 ‘국가정치’를 모색하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페미니즘 없는 민주주의 없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도 페미니즘의 비전을 ‘국가정치’에 개입시키기를 기대해 본다. 민족, 애국, 국민, 국가를 넘어 새로운 세계적 비전을 가진 한국의 정부와 법치와 민주를 만나고 싶다. 한 예로, 공장식축산과 군산복합체, K-방산 무기수출을 중단하고, 전쟁국가와 외교단절 등을 국가정치의 기조로, 일국의 헌법으로 만들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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