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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장애를 통해 돌봄을 배우다칼럼 2025. 2. 28. 02:31
염운옥
아버지를 돌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2014년 늦가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오래 고생했다. 30년 넘게 진행된 당뇨는 혈관, 신장, 족부, 눈, 뇌 등 온갖 신체 기관에 합병증을 일으켰고 그 결말은 말기신부전증과 시각장애와 인지저하증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주로 돌봤지만 장녀인 나도 한몫을 맡았다. 2010년부터는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어머니와 내가 ‘주역’을, 따로 가족을 이룬 남동생이 ‘조역’을 맡아 아버지 돌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외래진료를 위한 정기적인 종합병원 방문은 물론 몇 달에 한 번씩은 새벽에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투석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나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는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체력이 쇠해지면서 섬망과 치매 증세도 동반됐다. 아버지가 낯선 사람처럼 보이는 날도 잦아졌다.
어머니와 동생과 나는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 등급 판정을 받고, 요양보호사의 조력을 받아 일주일에 세 번 투석과 정기 진료를 위한 일정표를 작성하고 공유했다. 가족들 사이에 가용한 시간을 배분하고 세심한 조율을 거쳐 어느 한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미뤄지면서 초조함이 쌓여갈 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픈 가족을 보살피는 일은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질병과 고통을 누가 아무렇지도 않게 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또 누가 한평생 질병 없이 건강할 수 있겠는가. 지나고 보면 어머니, 동생, 나 그리고 요양보호사까지 네 명이 협력해 수행해낸 돌봄의 시간은 당시 내 삶의 소중한 일부였고,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이자 돌봄이라는 보편적 화두를 고민하는 계기였다.
외래진료로 서울대병원을 찾은 어느 날이었다.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옥외 벤치에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었다. 이미 보행이 불편해진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친모 슬하를 떠나 부친 가족과 살아야 했던 유년 시절, 먹을 수 있을 때 배불리 먹어둬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식탐이 되고 당뇨로 이어진 것 같다고 억울하다 말했다. 불안정한 가족관계와 유년의 결핍을 처음 고백하는 아버지, 딸 앞에서 어린애처럼 소리 내서 우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사랑스럽다’라고 느꼈다. 짐작만 하던 가족사의 비밀이 풀리면서 마침내 아버지의 내면 깊숙한 비밀의 정원에 당도했다는 뿌듯함마저 들었다. 돌봄은 내밀한 친밀성을 선물했다.
인지저하가 찾아왔음을 알게 된 날도 잊지 못한다. 1년에 열 번도 넘게 제사를 지내는 집안이라 그때마다 아버지가 직접 지방을 쓰셨다. 그날도 밤에 있을 제사를 위해 지방을 쓰려고 붓과 먹을 준비했다. 그런데 오른손에 붓을 든 채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하염없이 한지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동공은 초점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문자 인식 능력이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평생 기자와 편집자로 살아온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산책과 독서였는데 질병과 노화는 잔인하게도 보행능력과 인지능력을 차례로 빼앗아 갔다. 어딘가에서 주워 읽은 문장으로 나를 위로해 보기도 했다. 기억을 잃으면 매일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매일 새로운 아버지와 만나는 게 아니겠냐고 애써 괜찮은 척 의미를 부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몸의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을 때까지 담배를 끊지 못했던 아버지는 가족들이 집을 잠시 비운 사이에 혼자 담배를 사러 슈퍼에 나갔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잠옷 바람을 하고는 대문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문 앞에서 서성이던 아버지. 그때 “누구세요?”라는 듯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까지 신선하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란 어려웠다.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1957-1996) 작(作) Untitled(For Stockholm) 1992 ⓒYeom_SONEUN_Seoul_2024
노화와 질병과 장애를 거쳐 서서히 소멸에 이르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느리지만 어김없이 흘러가는 잔인한 시간을 견디며,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싸우며, 동시에 돌봄 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양보호사 비용은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해 준다지만 병원 입원비와 간병인 비용은 오롯이 자가 부담이다. 부족한 공적 돌봄은 시장화된 사적 돌봄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날로 나빠지는 아버지의 상태에 비례해 병원비와 간병인 비용이 계속 불어났다. 종합병원에서는 이제 퇴원하고 요양원으로 모시라고 권했다. ‘요양시설’로는 보낼 수 없다는 결심과 제대로 된 ‘요양병원’이면 괜찮지 않겠냐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평범한 중산층의 경제 사정에 시설도 서비스도 좋은 요양병원은 너무 비쌌다. 비용 부담에 집을 팔아야 하나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밝히던 전등 하나가 ‘탁’하고 꺼졌다. 내가 아버지와 깊이 교감했다고 느낀 순간 ‘탁’하고 불이 켜졌던 그 전구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돌봄,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
아버지를 돌보면서 어머니의 돌봄노동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당뇨 식단을 포함해 가족의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해온 어머니에게 감사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솔직히 그 무게를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돌봄의 한 축을 적극적으로 담당해 보니 어머니의 가사노동에 의존해 왔음이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나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고 여겨온 게 아닐까?
영어의 ‘care(케어)’는 ‘보살핌, 관심’과 ‘걱정, 슬픔, 애통, 곤경’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caru(카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caru’에서 온 ‘care’에는 돌보는 행위와 돌봄에 따르는 감정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 보살핀다는 건 생명의 연약함과 취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기에 슬프고 애통하고 지치고 곤란한 일이라는 의미가 어원에 반영되어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욕구를 돌본다는 건 어렵고 지치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고 죽고 썩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취약성에 대한 깊은 슬픔이 돌봄에는 동반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돌봄이야말로 생명의 시작부터 종말까지를 관통해 철학과 인간학을 배태하는 토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돌봄에 담긴 깊은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면 돌봄을 하는 사람도 귀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돌봄은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돌봄노동은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고 언제든 대체가능한 ‘허드렛일’이라는 인식은 돌봄을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만들어 왔다. ‘돌봄의 역설’은 돌봄노동을 고용할 재력이 있는 부유층일수록 돌봄에 기생한다는 데 있다. 돈으로 타인의 돌봄노동을 구매하고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지배층과 부유층의 돌봄 의존성은 가려진다.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화를 떠올리게 된다. 시종이 옷까지 입혀주던 황제는 청이 망하고 평민이 되자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돌봄에 가장 많이 의존하면서도 돌봄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돌봄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돌봄이 평가절하되어온 뿌리 깊은 또 다른 원인은 돌봄과 여성성의 관계다. 역사적으로 구성된 남성성과 여성성은 남성을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여성을 감정적이고 타율적인 인간으로 보게 했다. 여성은 돌봄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은 여성을 사적 영역에 묶어두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여성의 돌봄을 ‘사랑의 노동’이라 찬양했지만 실상은 대가도 없이 무한반복되는 ‘무상의 노동’일 뿐이었다. 자본주의 하의 생산노동은 여성의 재생산노동 없이는 영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공짜 노동’으로 묶어두는 과정이 자본주의의 필수 요소로 작동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돌봄노동은 평가절하되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로 돌봄의 시장화와 공공화가 이뤄졌지만 이를 올바른 해결책이라 보기는 어렵다. 중산층 여성들이 덜 하게 된 가사노동은 더 가난한 여성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여성들이 이주노동자가 되어 글로벌 노스로 이동하고 가사와 돌봄을 담당한다. 유색인 여성의 이주노동은 인종차별, 젠더차별과 결합해 전지구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돌봄노동은 더욱 평가절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술가 미얼 래더먼 유켈리스는 〈유지의 예술(Maintenance Art)〉 퍼포먼스 시리즈를 통해 돌봄노동을 존중하자고 주장한다. 청소 노동처럼 사물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노동은 새 물건을 생산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행위이기에 필수노동자는 ‘유지의 예술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 바닥과 계단을 닦는 퍼포먼스를 통해 유켈리스는 청소 노동도 박물관의 유물 못지않은 ‘문화’라고 역설했다. 돌봄을 둘러싼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정비뿐만 아니라 돌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데 예술은 고민을 풀어갈 실마리를 준다. 사물을 돌보는 일도 삶을 돌보는 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돌봄의 가치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망가진 채로도 괜찮아”: 장애로부터 돌봄을 배우다
아버지는 조금씩 망가져 갔다. 처음 5년은 천천히, 나머지 5년은 가파르게 나빠졌다. 늙으면 모두 장애인이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질병과 노화와 장애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질병-노화-장애 연속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겹치고 이어진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아버지가 중증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은 건 생애의 마지막 5년 정도이고, 말기신부전증 혈액투석 환자가 된 건 3년여 정도이다. 선천적 장애인이나 어릴 때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장애인등록증은 나왔지만 장애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돌보는 간접체험을 통해 ‘불구의 시간성’, ‘비지배적 돌봄관계’로 고민을 넓혀 가게 되었다.
염기용(1938~2014). 돌아가시기 두 달 전 뇌수술 후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Yeom_2014 미국 장애학자 앨리슨 케이퍼는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에서 장애인에게 미래없음을 강요하는 비장애중심주의(ablism)를 비판하고, 낙인의 언어인 ‘불구’를 긍정의 언어로 바꾸고 ‘불구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자고 주장한다. 케이퍼는 불구의 시간성을 논하면서 “시간의 관절이 어긋나 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5장에서 햄릿과 유령과의 대화 바로 다음에 나오는 대사다. 우선 불구의 시간이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과 맞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몸을 움직이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예기치 않게 아파서 중요한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시간이 내 편이 아니라는 느낌, 미래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환자와 장애인의 시간은 치료를 향해 나아갈 때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치유의 약속에 매여 현재의 시간을 살지 못한다. 유예된 시간을 벗어나 아프고 망가진 채로 남들 하는 대로 생애주기를 거치고 생로병사를 경험하자고, 불구의 미래를 상상하고 실천하자고 후천적 장애인 케이퍼는 역설한다.
불구의 리듬에 따라 불구의 시간을 사는 즐거움에 대해 유색인 퀴어 장애정의 활동가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는 『가장 느린 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외로워하고 비통해하고 발견하는 수퍼 파워를 가진 불구 생존자다. … 나는 고쳐지길 바라지 않는다. 만약 고쳐진다는 게 기억이 표백된다는 뜻이라면, 내가 이 생존의 기적을 통해 배워온 것들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라면.” 건강강박증 문화, 비장애중심주의 문화에서는 환자나 장애인으로 이행이 죽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애를 긍정하는 문화에서는 아픈 사람이 되는 것, 장애인이 되는 것을 ‘트랜지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행의 과정은 고정되고 닫힌 죽음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가지가 뻗어 나가듯 진화하는 창조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노화, 질병, 장애를 죽음과 맞닿아 있는 부정적인 상태로만 본다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 온전함과 병듦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출렁이는 변화를 모두 놓치게 된다. 질병과 장애를 트랜지션으로 보는 관점을 수용하면 한 이음새에서 다른 이음새로 이동할 때 일어나는 변화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이끌 수 있게 될 것이다.
돌봄이 통제가 되지 않도록
인지저하증으로 의식이 흐릿하고 말이 어눌해졌어도 아버지의 호불호는 분명했다. 다만 그걸 알아차리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주체적이고 싶어하는 아버지, 밖에 나가고 싶다고 말하지 못해도 바깥바람을 쐬면 표정이 좋아지는 아버지가 있었다. 서로 주파주가 맞지 않을 때 돌봄은 통제로 흘러가기 쉽다. 돌봄에는 자동화나 기계화로 전부 대체될 수 없는 대면돌봄 고유의 영역이 있다. 중증 환자나 중증 장애인의 대면돌봄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공적 돌봄의 경우 한정된 자원과 인력 안에서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돌봄받는 쪽의 호불호를 가벼이 여기고 자유를 억압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돌보되 지배하지 않는 관계, 즉 ‘비지배적 의존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돌봄시설 ‘요리아이(한데 모임)’의 소장 무라세 다카오는 『돌봄, 동기화, 자유』에서 돌봄의 묘미는 하나의 행위를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그때까지 몰랐던 ‘나’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라세는 돌보는 자와 돌봄받는 자 사이의 ‘동기화(싱크로)’는 자주 어긋나기 때문에 감각을 맞추고, 느낌을 교환하면서, 합의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리아이에서는 외출을 규제하지 않는다.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노혼(老昏)이나 인지저하증으로 말없이 요리아이에서 외출하는 노인들을 발견하면 연락해달라고 반경 200미터에 사는 동네 주민들에게 부탁했다. “우연히 혼자서 걷고 있는 ○○씨를 발견하면 요리아이에 연락해주세요”라고 알렸다. 주민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관여’한다. 요리아이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주민도 있고, 전화로 알려주는 데서 그치는 주민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무리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느슨하게 관계맺기는 개인돌봄이든 공적돌봄이든 돌봄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돌봄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깊고 넓어질 수 있다. 아버지를 통해 돌봄을 만났고, 장애학을 만났다.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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