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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는 어쩌다가 ‘안보’의 문제가 되었나칼럼 2025. 2. 27. 00:16
‘이주’는 어쩌다가 ‘안보’의 문제가 되었나
- ‘국경 통제’와 동시에 구축되어야 할 ‘국경 투쟁’을 모색하며
심아정
이주의 ‘안보문제화’와 이주민의 ‘범죄화’, 그 연원을 찾아서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 활동을 통해 외국인보호소가 ‘국가보안시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회자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녹음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과연 갇혀 있는 사람들이 국가안보에 어떤 ‘해’(害)를 가한다는 것인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질서’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발상에는 자연스레 ‘가짜 난민’, ‘불법’, ‘범죄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화성외국인보호소면회실 ⓒ 2022년 1월 18일자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23115380004830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실 사진. 상단에 “이곳은 국가보안시설이므로 일체 사진촬영을 금지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실상 이러한 조치는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을 외부로 알리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공익적 목적이 있다’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면회실 사진을 공개한 2022년 1월 8일자 한국일보 기사와 그 취지를 같이 하며 이 글에서도 면회실 사진을 공개한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3월 23일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시설에 인치할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에 대해, ‘구금 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고 ‘사법적 심사’가 없다는 이유로 피보호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고, 2025년 5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명하였다(헌법재판소 2023. 3. 23. 선고 2020헌가1,2021헌가10 병합 결정). 그러나 지난 2월 27일 22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외국인보호소의 구금 기간을 원칙 9개월로 하되 예외로 20개월까지로 정하고, '재보호'를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무기한 구금'을 없앴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구금기간의 연장 등을 심의하기 위해 다름아닌 구금의 주무부처인 법무부 산하에 외국인보호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2.3 계엄과 이후의 탄핵 국면에서 출몰한 혐중 정서, 법무부가 제출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드러난 이주민의 ‘범죄화’ 프레임, 막 출범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가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하게 국경 통제에 주력하며 내리는 각종 행정명령을 목도하면서,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물음이 생겨났다. ‘이주’는 어쩌다가 ‘안보’의 문제가 되었을까? 이주의 ‘안보문제화’와 이주민의 ‘범죄화’가 연계되어 가시화되는 데에는 분명 그 연원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국경 통제’가 강화된 과거의 여러 사례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국경 통제에 대항했던 여러 시도들, 즉 ‘국경 투쟁’의 단서 또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런 물음으로 말문을 열기로 한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호주로 이어지는 국경 통제와 낙인의 연쇄
『방법으로서의 경계』(갈무리, 2021)의 저자 산드로 메자드라와 브렛 닐슨은 1990년대 초에 ‘목격한 사건들’을 계기로 국경과 이주, 노동 등의 사안에 ‘이론적인 개입’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93년 이탈리아 제노바에 살고 있었던 메자드라는 이주민들이 지역 청년들에게 공격을 당해 폭력적인 몸싸움이 발생했을 때, 제노바에서 반인종주의 전선을 세우려는 시도를 마주했다. 닐슨은 1991년 아이티의 쿠데타를 피해 탈출한 대량의 난민을 미국 정부가 관타나모에 수용하거나 강제로 본국에 송환하는 방침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다가 1993년 호주로 귀국했다. 닐슨은 아이티 난민들에 대한 이러한 1991년 미국의 조치가 1992년 호주 정부의 강제 구금과 억류 제도 도입을 비롯한 난민 차단과 국경 강화를 시행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간주한다.
대부분의 아이티 난민들이 수용되었던 관타나모의 폐쇄된 공항 터미널에 있는 텐트 캠프 ⓒ wikipedia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1993년 관타나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아이티 난민들의 망명 신청이 승인되었을 때조차, HIV 감염인은 캠프 불클리(Camp Bulkeley)로 알려진 관타나모 기지의 한 구역에 '격리' 구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이민 및 귀화국(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 INS)은 정치적 난민으로 간주된 이들에 대해서도 입국 허가 전에 HIV 검사를 했다.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HIV 양성자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1987년 법률(2010년 폐지)에 따라 입국이 거부되었고, 캠프 불클리는 이렇게 세계 최초의 HIV감염인 난민 수용 시설이 되었다. 1993년 1월 29일, 캠프 불클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1년 반 동안 수용되어 있던 수감자들이 단식 투쟁을 벌였고, 캠프 불클리에 HIV 감염인 난민을 격리 수용하는 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던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단식 투쟁, 집회, 시위가 조직되었다. 수잔 서랜던과 팀 로빈스는 1993년 오스카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불클리 수용소의 HIV 감염인 아이티 난민 266명의 상황에 주목하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반응은 결국 당시의 클린턴 행정부에 수용소 폐쇄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주었고, 결국 6월 18일에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이렇듯 구금 시설 내에서도 HIV 감염인은 ‘격리’구금의 대상이 되어 감옥 안의 감옥이라 할 수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한국의 화성외국인보호소의 경우에도 2021년과 2022년에 걸쳐 HIV 감염인이 장기간의 ‘격리’구금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하여 외국인보호소의 대처가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 그를 조력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어떤 병원도 HIV 감염인이자 장기구금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겪는 비국민의 입원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던 그를 단기간이나마 받아준 곳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활동하며 운영하는 쉼터과 에이즈 쉼터, 단 두 곳이었다. HIV 감염인은 외국인보호소에서 나와 한국 사회로 나오더라도 겹겹의 차별과 낙인을 짊어진 채 취약성이 강화되어 살아내기 어려운 상태로 내던져진다. 시설 ‘밖’으로 나온다한들 한국 사회는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방적 구금’, ‘이주’를 ‘위기’로 인식하게 된 계기
1996년 클린턴 행정부는 ‘불법체류자’나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자’를 강제로 구금하는 규정을 확대 실시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이로 인해 교통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이민자도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 결과, 법안이 승인된 해에만 7만 명이 이민법 위반으로 구금되었고, 2년 후인 1998년에는 그 수가 18만 명으로 늘었다. 체류 기한이 지난 이주민들이 단속으로 잡혀 들어오는 한국의 외국인보호소에도 난민신청자들 뿐만 아니라, 형기를 마쳤거나 집행유예 상태에서 강제퇴거(=추방) 명령을 받은 사람들도 구금되어 있다. 이들 중에는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고, 교통법 위반을 하고도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잡혀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교통법 위반’이 곧장 ‘추방’으로 이어지는 일은 국민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비약적인 전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국민이라면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여 살아가지만, 국민이 아니라면 출소 후에도 ‘추방’이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경을 넘는 이민자를 막아내기 위해 미국의 남부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소식뿐만 아니라, 항시적인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외국인보호소 상황에 대한 자각은 과연 국민의 안전이, 국가 안보가, 누군가의 이동을 차단하고 가둠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것인지 되물을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한편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초기 2001년 9․11 사태 두 달 전만해도 미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불법이민자’를 ‘합법화’하며 임시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등 이민에 관해 유연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9.11 이후 이민정책이 급변하여 부시 행정부는 국토안보부(DHS)와 22개의 연방 사무소, 산하 기관인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방부가 창설된 이래 미국 정부가 단행한 가장 크고 중요한 조직 개편에 해당한다. 이런 조치는 이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정부가 이민자와 테러리즘 연루 의심자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가 행정력을 증대했고, 이런 와중에 ‘국가 안보에 위험하다고 추정되는’ 이민자들을 객관적 증거 없이 구금하거나 추방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토안보부(DHS)와 같은 기구의 창설은 이민에 관한 논쟁을 왜곡시켰다.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이주’의 문제를 ‘안보문제화’ 한 것이다. ‘이주’관리는 ‘위기’관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2023년 12월 13일,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를 통해 ‘국가안보나 공공질서를 해쳤거나 해칠 위험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난민인정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개정안 제19조 제5호). 그러나 난민법 개정안에는 ‘국가안보나 공공질서를 해칠 위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러한 판단의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체류기한이 지난 미등록이주민의 단속과 구금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안보와 공공질서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어,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단속되고 구금된다. 이러한 ‘예방적 구금’은 형법의 변화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전쟁의 ‘비상사태’가 ‘일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최초의 수용소는 또한 1896년 스페인이 식민지 봉기를 억누르기 위해 쿠바에 세웠던 집단 수용소였다.
‘예방적 구금’과 관련된 또 하나의 사례로 1975년 해양박람회를 위해 일본 황태자 아키히토가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경찰이 108명의 ‘정신 장애가 의심되는 자’를 목록으로 만들어 강제 입원을 포함한 ‘예방적 구금’ 조치를 취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때 지역공동체는 목록 작성에 관여함으로써 이웃을 적발하는 ‘치안대리자’ 역할을 했다. 경찰과 공모하여 사람들을 구금하는 정신 의료는 ‘보안처분’이라 불렸다. 예방적 구금과 보안처분은 ‘혐의’만으로도 즉각적인 구금이 가능한 메커니즘을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혐의’는 밀고와 적발에 가담하는 이웃들에 의해 추동된다.
난민이 아닌, 국경을 보호하라? 호주의 국경 통제 사례
여기에서 다시 9.11 직전 호주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2001년 8월 26일, 노르웨이 화물선 ‘탐파(Tampa)’가 구조한 난민에 대해 호주 정부가 수용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선박에 타고 있던 43명의 어린이와 26명의 여성과 수많은 부상자가 포함된 438명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몽골계 하자라(Hazaras)인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종적인 차이를 이유로 상시적인 폭력과 학살에 노출되어 온 이들이다. 그러나 당시 호주의 총리 존 하워드는 난민들이 호주의 ‘안보’를 위협한다며 그들이 호주 땅에 발을 내딛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강경한 대응 방침을 밝히고, 구호물자는 물론 호주 영해(領海) 진입과 정박까지도 거절하면서 “불법이민자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숫자로 늘어나는 것에 선을 긋는 것이 국익”이라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호주 정부는 이들의 수용을 거부하고 태평양의 ‘나우루’ 섬에 구금한 이후, ‘태평양 해결책(Pacific Solution)’으로 알려진 국경 통제 체제를 마련했다. 이 정책에는 배를 타고 호주에 접근을 시도하는 난민에 대한 해안 억류수용소의 건립과 호주 영토 내의 여러 낙도(落島)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시책이 포함되었다. 이는 바다를 통한 이주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지의 낙도에서의 난민 신청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역외(域外) 수용’은 난민들이 호주 영토에 일단 발을 디디면 국제법에 따라 강제 송환을 할 수 없음을 예상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탐파에 의해 구조된 난민들ⓒAustralian Refugee Action Network 연도 정책 / 조치 내용 2001 -호주 정부, 438명 규모 난민선 입항 금지, 난민을 크리스마스섬에 수용,
-난민을 남태평양의 섬들(나우루, 마누스, 크리스마스)에 분산 수용하는 ‘퍼시픽 솔루션’ 발표2003 크리스마스섬에 1200명 규모의 난민 수용소 개소 2008 호주 노동당 정부 ‘퍼시픽 솔루션’ 포기, 나우루, 마누스섬 수용소 폐쇄 2010 크리스마스섬 난민 수용 규모 2400명까지 확대 2012 호주 자유당 정부 ‘퍼시픽 솔루션’ 재가동, 나우루 난민 수용소 재가동 2013 파푸아뉴기니 마누스섬 수용소에서 난민 재정착 방침 발표 2014 난민용 임시보호비자 발급 대상에서 나우루 수용소 난민 제외 2015 크리스마스섬 탈출 감행 난민 사망 및 폭동 사태 발생 <표1> 호주의 주요 역외 난민 수용 정책 연표
역외(域外) 구금과 국경 통제의 외주화
나우루 난민수용소를 관리하는 트랜스필드 서비스(Transfield survices)와 하청 경비업체 윌슨 시큐리티(Wilson Security)는 2015년 호주 정부로부터 12억 호주달러(1조원)를 받았다. 2016년에는 나우루 난민수용소에서 성폭행과 아동학대 등 인권유린이 비일비재하게 자행되어 왔다는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호주 이민국경보호부/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Border Protection에서 공개한 자료들은 다음의 사이트 참조. https://www.homeaffairs.gov.au/foi/files/2016/20160317_FA150701970_Documents_Released.pdf)
호주의 역외 구금시설 위치ⓒ2016년 8월 11일자 국민일보 한편, 2004년에 설립되어 바르샤바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프론텍스(Frontex)는 EU의 국경 보호 대행기관이다. 2021년에 출범한 상비군은 1년의 훈련 기간을 거쳐 선발되는 EU 최초의 제복을 입은 군대로, EU 가맹국에 ‘불법 거주’하는 이민자의 본국 송환을 담당한다. 2027년까지 1만 명의 인원을 확보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가 기관과는 달리, 프론텍스 등의 국경보호 대행기관은 <제네바협정>이나 <세계인권선언>같은 조약들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에 의해 부여된 의무를 회피하려는 국가들에 의해 종종 활용된다. 예방적 강제송환을 시행하고, 외재화된 구금 시설을 운영하는 초국적 대행기관인 셈이다. 영국의 경비업체 G4S와 다국적방위업체 서코(SERCO) 등 이주 구금과 추방 등 국경 통제를 위해 정부들과 계약을 맺는 사설 보안 회사들도 생겨나 이른바 ‘수용소 시장(asylum market)’이 형성되었다. 난민신청자의 인권을 고민하는 담론들은 사실상 안보화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민간 경비업체가 난민 구금시설을 운영하고, 다국적 방위업체가 국경을 관리하는 현실은 이주의 외재화, 외주화,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남부 국경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대가 파병되었다. 한국의 12.3 계엄상황에서 국회에 군대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난민을 잡아들이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기묘한 간극은 10년 전의 충격적인 장면을 상기한다. 2014년 여름 ‘미성년 이주민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왔을 때, 강간이나 갱들의 폭력을 피해 남미 각지에서 혼자 먼 길을 떠나온 어린이와 청소년을 태운 버스가 그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시위에 가로막혔던 일이 있었다. 그때 텍사스의 한 공화당원은 이러한 사태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미국 헌법 제1조 9절을 인용하여 “의회는 침략 발생시, 군(軍)을 요청할 권한을 갖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병균’과 ‘색깔 있는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상상하는 미국의 왜곡된 이주민 신화는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향한 반이민정서로 분출되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 사태를 “국경에서의 긴급한 인도주의적 ‘도전’”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는 “아이들이 가하는 인도주의적 ‘재난’이자 시민들에 대한 ‘위협’”으로 상반되게 표현했다.
‘국경 통제’의 연계에 대항하는 ‘국경 투쟁’의 연대는 가능한가
앞서 언급한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호주로 이어지는 국경 통제의 연계를 목격한 브렛 닐슨은 호주에서의 억류 수용소 반대 투쟁이 세계의 다른 ‘국경 투쟁’(국경 통제에 반대하는 저항행동)과도 긴급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국경 통제’의 움직임 속에서 이에 대항하는 ‘국경 투쟁’의 가능성은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국경 통제에 대항하여 2002년 호주 우메라 억류 수용소와 2003년 이탈리아 바라 팔라제 수용소에서 이주활동가들이 억류자들의 탈출과 도망을 지원하는 저항행동을 펼침으로써 ‘국경 투쟁’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 젖혔다. 그들은 잠시나마 시민권의 논리나 정치조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나름의 길을 내며 자신들의 힘을 증식하는 공간을 확보했다.
‘국경 경관’(border-scape)이라는 용어가 있다. ‘국경 통치’와 이에 대항하는 ‘국경 투쟁’의 길항으로 열리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수벤드리니 페레라가 만든 이 개념은 2025년 현재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각국의 반이민정책, 그리고 한국에서의 난민법/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마주하고, 이를 어떻게 문제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경은 실제로 ‘배제’의 기능을 할 때조차도 항상 ‘포섭의 차별적 관리’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유연한 통제 장치’다. 단속-구금-추방의 연쇄를 파악할 때 ‘배제’만을 강조하면 국가/국경의 내부와 외부라는 분명한 분할을 상상하게 되고, 이는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국가 내부의 완벽한 통합이 가능한 것처럼 혹은 완벽한 통합을 향한 욕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웬디 브라운은 이와 관련하여 “국경의 장벽은 이주노동을 ‘배제’하기 보다는 ‘규제’하는 것이고, 이로써 유연한 생산을 위해 필요한 법과 비법(non-law) 간의 구별이 모호해 지는 지대가 창출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러한 법과 비법의 모호한 지대에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저변의 노동력은 부당한 처우에도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미등록이주민들의 노동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미등록이주민의 삶은 단속에 대한 불안과 유예된 추방의 두려움 속에서 간헐적인 노동과 도망을 이어가며 이 사회의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우리의 안온한 일상은 바로 이러한 끄트머리의 노동으로 지탱된다.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서, 탄핵 이후에도 변화의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주 관련 쟁점들이 더욱 가시화되어야 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3 계엄과 탄핵의 국면에서 펼쳐진 광장은 이른바 ‘민주시민’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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