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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의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이슈 2023. 2. 27. 05:30
정선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유럽 간 갈등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문제를 재점화시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은 러시아를 제재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항하여 천연가스 공급을 빌미로 유럽을 압박했다. 그러자 유럽은 러시아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한 반격으로 에너지의 탈러시아화를 외치면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유럽 간 갈등이 다시금 불거지게 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관계는 어떠한 역사와 특징을 지니고 있었기에 양측 간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러시아-유럽 간 에너지 협력과 갈등
러시아와 유럽은 냉전 시기부터 긴밀한 에너지 관계를 구축해왔다.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더불어 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하던 북해 가스 및 유전의 고갈이 우려되자 소련과 서유럽 간 에너지 협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 중동발 오일쇼크는 서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수입선 다각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며,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중동을 대체할 공급자로 부상한 소련과 새로운 가스공급 협상을 추진하는 등 에너지 협력을 강화했다.
러시아의 유럽行 가스 파이프라인 [출처: Tass.com] 영원할 것 같았던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관계는 2000년대 중반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반전됐다. 러시아가 과거 중동처럼 에너지를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정책을 펼치며 유럽연합과 NATO 가입을 추진하자,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가스 가격 인상안을 거부하고, 유럽으로 수출하는 러시아산 가스를 우크라이나가 중간에서 훔치고 있다는 혐의로 2006년과 2009년 우크라이나행 가스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러시아는 비슷한 이유로 몰도바, 리투아니아, 조지아, 벨라루스 등 동유럽 국가들의 가스공급을 몇 차례 더 중단했다.
문제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2021년 유럽의 1차 에너지(Primary Energy) 소비 중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이었으며, 이 중 러시아는 유럽의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의 각각 38%와 30%를 차지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중단할 경우 유럽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없음을 의미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서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에너지 대부분이 동유럽 국가를 통과한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잇따른 동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 중단 사태는 겨울철 유럽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를 발생시켰다.
TAP-TANAP 파이프라인 연결 노선도 [출처: Faz.net] 유럽의 에너지 탈러시아화 정책
에너지를 담보로 한 러시아의 공급 중단 사태가 반복되자 에너지 안보에 위협을 느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연구와 함께 러시아 우회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연간 60-120bcm의 중앙아시아 및 카스피해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직접 수송하는 ‘남부가스회랑’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가스관 중 가장 큰 비중(31bcm)을 차지하는 나부코(Nabucco) 프로젝트가 참여국 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무산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간 10bcm의 천연가스 수송능력을 지닌 TAP(Trans-Adriatic Pipeline) 가스관이 채택되면서 러시아 우회 가스관 건설을 통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체 계획은 요원해졌다.
2019년 유럽연합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유럽 그린딜(Europe Green Deal)’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유럽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40%까지 늘림으로써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국의 양적 완화 정책과 백신 보급 확대로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자 유럽의 에너지 자립의 꿈은 다시금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는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출처: 일요주간]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탄소중립’에 집중된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탈러시아화’ 중심으로 빠르게 변경시켰다.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개인에 대한 제재와 더불어 첨단 기술과 에너지 산업 장비, 사치품 등의 러시아 수출을 규제하고,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등 제재를 부과했다. 또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2년 5월,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에너지 소비 절감, 청정에너지 사용 확대,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등 세 가지 정책목표를 지닌 REPowerEU를 발표했으며, 7월에는 기존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서 제외되었던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포함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에너지 자립을 위한 다양한 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의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로 잠정 합의하고, 내년 2월 중순부터 천연가스 가격 상한을 메가와트시(㎿h)당 180유로(약 25만원)로 정하는 내용에 합의하는 등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러시아 경제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유럽의 에너지 탈러시아 정책의 현황과 시사점
유럽의 에너지 탈러시아화를 위한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2월 유럽 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시장에서 선물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인 ㎿h(메가 와트시)당 70.8유로를 기록했으며, 유럽의 대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비중은 2022년 10월 8%로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다. 또한,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원유 및 관련 제품 수입액 역시 2022년 2월 22.8%에서 9월 12.1%로 감소했다. 반면 전체 천연가스 수입 중 19%를 차지했던 LNG의 비중이 2022년 10월 38%로 증가하면서 LNG 수입이 증가했다.
그러나 유럽이 에너지 ‘탈러시아화’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아직 섣부르다. 유럽 가스 도매가격의 안정세는 피크시간대 전력 사용 감축, 전력회사 이윤 상한제 시행, 공공 화장실 온수 공급 중단, 건물 내부 온도 19도 제한 등 유럽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과 더불어 비교적 온화한 겨울 날씨가 맞물린 결과라는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급격하게 낮아진 원인은 러시아-유럽 간 주요 가스관인 노르드스트림-1이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 결과가 큰데, 만약 올해 이 가스관이 가동하지 않을 경우, 독일은 무려 30bcm의 천연가스가 부족하게 된다. 이 경우 30bcm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공급자를 찾는 것이 유럽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가 미국의 셰일산업을 겨냥하여 셰일 기업의 채산성 마지노선인 40달러 이하로 떨어뜨리기 위해 증산에 합의하였다는 점 역시 유럽이 마냥 미국산 LNG에 기댈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유럽 에너지 정책의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탄소중립 기조 하에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유럽의 사례는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은 유럽연합의 사례를 보다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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