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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는 마음 안고, 퍼레이드칼럼 2022. 9. 1. 00:00
사공성수
퍼레이드. 축제의 한 형태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는 곳으로 정치/문화/종교 등의 교차로이다. 동시에 이 단어는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나에게 퍼레이드는 곧 퀴어퍼레이드(이하 퀴퍼)이며 이날은 퀴어들 사이에서 '명절'이라고 불리는 날이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한데 모여서 몰랐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광활한 도심의 도로를 함께 걷는다. 일년 중 가장 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아닐까? 이것이 주는 감정은 일상에서의 억압과 한시적인 해방이 맞물려있기 때문에, 비-퀴어들이 느끼기 어렵고, 따라서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나는 이 특별한 날을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올해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지난 7월 16일에 열렸다.
첫 퀴어퍼레이드는 4년 전 서울에서 당시 애인과 함께 했다. 그때의 경험은 뭐랄까,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엄청난 인파의 혐오 세력을 뚫고 서울광장에 들어오니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모여있었다. 혐오 속에서도 잘 살아남은 서로를 환대해줬고 한국에서 낯선 사람들과 이런 친절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도로를 걸을 때는 생애 느껴본 적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햇살 아래 노래에 맞춰 방방 뛰면서 사람들과 인사와 칭찬을 주고 받았다. 왠지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물론 명절엔 보기 싫은 얼굴도 마주치는 법이다. 그곳에서 악연을 만나긴 했지만 같이 행진했을 정도로 너그러워졌다. 그 흘러넘치는 감정을 잊지 못해서 그 뒤로 나는 매번 꼭 퀴퍼에 가야만 했다.
올해 퀴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열리기로 했고 친구들과 나는 신이 나서 준비를 했다. 그날만 입을 수 있는 퀴어하고 과한 옷을 찾기 위해 열심히 옷가게를 뒤졌다. 하지만 넓은 세상 속에서도 쏙 마음에 드는 것은 찾기 어려웠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국 우리가 당도한 곳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다들 비슷한 모양새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에서 저렴하면서 나를 표현할 다양한 옷은 이곳에 많았다. 와중에 비건 레더 팬츠를 찾았다. H&M에 비건이라니, 내가 이걸 정말 비거니즘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옷이 만들어지고버려지는 이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의 주범에 나는 공모하는 것일까? 그렇게 갑자기 상표 하나로 비건에 대한고민이 불쑥 나타났다.



0123비건과 착취가 교차하는 곳 ⓒ사공성수_서울_2022 “퀴퍼에서 봐요.” 퍼레이드가 며칠 후로 다가왔고 내 주위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주 들떠있었다. 전전날에는 새벽 두시까지 염색을 했고 전날에는 입을 옷을 밤새 리폼했다. 친구들과 같이 티셔츠를 자르고 그 위에 색을 칠하고 글씨를 썼다. 작은 방에서 다가올 내일의 즐거움을 기다리는 일은 소박하고 매우 행복했다. 하지만 이 산통을 깨는 순간은 쉽게 찾아왔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허기짐 때문이었다. 내 주위음식에 너무 많은 동물의 죽음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생명을 생명 이하로 대할 수 없다. 사회 구조가 한 생명집단을 살덩이와 뼈다귀로 몰아넣는다는 것은 분명한 폭력이고, 나는 이에 반대한다. 이런 나의 선택권은 한밤중의 편의점이나 친구들과 밥을 먹을 식당에서 하염없이 적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나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대안을 찾고, 친구들은 옆에서 기다려준다. 이 상황이 고맙기도 하지만 나를 불안하게 한다. 갑자기 내가 속했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동참할 수 없어진다. 접시 위에서 동물들이 손쉽게 죽어나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것이 나로서는 즐거울 리 없다.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괴로워진다.
생각해보면 착취 속에서 이뤄진 세계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해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때조차 해방되지 못한 세상의 것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내가 퀴어로서 바라는 해방과 인간동물로서 연대하는 비인간동물의 해방은 다르지 않다. 퍼레이드에 나가는 이유는 내 존재를 끊임없이 지우고 가리고 깎아내는 사회에 반대하기 때문이고, 어딘가에 갇혀 존재가 지워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거대한 집단이 있다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회 구조 속에서 퀴어해방과 동물해방 간의 괴리는 크게 느껴진다. 순식간에 나는 동물 사체를, 혹은 폭력의 부산물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고, 동물들은 그냥 분절된 살덩이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친구들과 같이 갈 식당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집에서 밥을 해먹고 퀴퍼로 향했다.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 ⓒ 사공성수_서울_2022 시청 광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광장을 둘러싼 혐오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게 설교 중이었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동성애는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같은 문구를 지나쳐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새로 들어온 비거니즘 부스(전국풀떼퀴연합)에도 방문했고 그 어느 때보다 비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도 나처럼 해방을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생각해 이곳에 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3시간을 달려 서울에 온 한 친구는 내게 손수 뜬 무지개 귀걸이한 쪽을 주었다. 원래 두 쪽이어야할 귀걸이의 한 쪽을 준다는 건 사랑의 징표가 아닐까?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마음이 주는 힘을 느끼며 비건 커뮤니티와 퀴어 커뮤니티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보았다. 내가 열망하는 두가지의 해방이 분절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나서도 비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폭우 속에 우산 없이 도시를 걸었다. 트럭과 큰 음악을따라 다같이 뛰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에 충실했다. 길을 따라 걷고 노래에 따라 춤을 추고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비가 세차게 내려 렌즈가 떨어지고 핸드폰은 고장났지만, 함께 나누는 에너지가 너무 크고 생생해서 모든 걸 잊었다. 빗방울에도 눈이 부셨다.
그렇게 강렬했던 퍼레이드가 끝난 후 하늘이 개이고 비가 그쳤다. 햇빛은 젖은 옷을 말릴 정도로 세지는 않았고, 그렇게 젖은 옷과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다. 나를 바라보던 혐오세력의 젊은이들, 우리를 경계하는 눈빛의 아이 엄마들,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리의 사람들. 이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점점 원래의 사회 속에 들어옴을 실감했다. 나는 훤히 드러나는 배를 젖은 셔츠로 가리고 조금은 위축된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 안에서는더이상 무지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들 각자의 제자리로 돌아가며 스스로의 무지개를 떼어 냈을 것이다. 그렇게 한시적인 자유가 끝나고 모두들 슬그머니 자신의 일부를 숨기게 되겠지. 씁쓸한 기분이 들자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집에 와서는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잤다.
며칠이 지나 퍼레이드의 긴 여운이 남고, 큰 덩어리의 행복이 허함으로 슬쩍 변해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모래가 파인 듯 쓸려나간 기분이었다. 그 다음 월요일은 어느 때보다 무기력했고 변함없는 일상인데도 숨 막히게 답답했다. 사무실에서는 퀴퍼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나오진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나의 무지개 손톱을 들키기 싫어 손바닥을 내밀었다. 책상에 앉아서 몰래 본 주말의 사진은 너무 행복해보였고, 사무실의 나와 대비되었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은 매일 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질문만 많아졌다. 내 존재가 다시 가려졌다고 느끼니 한없이 우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우울함 끝에 왠지 모르게 비거니즘 실천을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나를 너무 많은 것과 연결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 경계 없는 자아는 정신병의 근원이라는데, 퀴어든 동물이든 다른 존재자들의 고통을 나의 것인양 느끼기도 한다. 혹은 느낀다고 착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건은 정신병'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분명 예전의 나는 퀴퍼에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치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내면적 성장의 징표이다. 이 성장은 계속해서 쉽게 답하지 못할 질문들을 안겨주고 나를 괴롭히겠지만, 나의 세계가 확장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나의 세계는 무한한 생명력과 연대의 힘을 향해 뻗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해서 퍼레이드의 모습을 상상한다. 자유의 기쁨을 아는 이들은 모두 해방의 경험을 나누고 싶지 않을까? 이 칙칙한 사회에서 더 거대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적인 생각이 나를 쥐락펴락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거나 못하며, 구조를 바꾸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이 모여 구조를 만들 수도 있고, 이미 수많은 구조를 바꿔나간 이들이 있어왔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주위 세상은 나노단위로 변해왔다. 당장 수많은 동물들과 세상을 구원할 수 없어도 나와 내 주위의 실천은 어느 샌가 내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뭔가를 바꿔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구조를 바꾸는 힘이 개인에게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나는 한번 더 해방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연대와 동참의 메시지를 어디엔가 흩뿌린다.
커버사진: Tanya Shultz 작(作) When Flowers Dream ⓒYeom_Shirley Sherwood Gallery of Botanical Art_London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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