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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칼럼 2026. 8. 24. 23:19
권봉철
쿠바는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사회주의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단하는 시험대가 아니다. 국가는 얼마나 오래 국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가. 외부의 압박 속에서 주권을 지키면서도 내부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가. 쿠바는 지금 바로 그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지금 쿠바에서 가장 절실한 정치적 언어는 ‘혁명’이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기’일지 모른다. 전기가 언제 복구되는가, 냉장고 속 음식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급수 시설과 병원의 의료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가가 시민들의 하루를 결정한다. 2026년 7월에는 불과 아흐레 사이 국가 전력망이 세 차례나 전면 붕괴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 전력망이 무너지면서 아바나 시내의 신호등이 꺼졌고, 학교와 병원, 상점과 공장의 운영도 큰 차질을 빚었다. 일부 주민들은 무더위를 피해 옥상에서 밤을 지새우고, 잦은 정전으로 음식이 상할 것을 우려해 냉장고를 비워 둔다.

혁명 이후 쿠바: 페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Perfecto Romero_1960 한국인이 기억하는 쿠바는 이와 사뭇 다르다. 체 게바라의 얼굴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말레콘 방파제와 오래된 미국 자동차, 살사와 손(Son) 음악은 쿠바를 낭만적인 ‘혁명의 섬’으로 각인시켜 왔다. 그러나 그 풍경의 이면에는 장시간의 정전과 물 부족, 연료난과 식량난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2026년 7월 초 아바나에서는 정전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냄비를 두드리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불을 켜라”고 외쳤다. 이제 쿠바의 현재는 더 이상 관광 엽서 속 풍경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필자가 처음 쿠바를 찾았던 1990년대 말의 경제적 결핍도 심각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쿠바는 최대 설탕 수출시장과 주요 석유 공급망을 한꺼번에 잃었다. 쿠바인들이 ‘특별시기(Special Period)’라고 부른 경제적 비상사태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고, 사람들은 중국산 자전거를 타거나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냉장고가 비어 있는 집이 많았고 기름과 비누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도 귀했다.
그럼에도 당시 사회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두운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이웃과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결핍과 불편을 농담으로 견뎠다. 학교와 병원도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했다. 적어도 당시 필자가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이 위기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소련 붕괴라는 외부의 거대한 충격을 사회 전체가 함께 견디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국가는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배급과 의료, 교육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을 지키려 했다.
최근 쿠바 지인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지금이 특별시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제를 지탱하던 대외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던 1990년대보다 어떻게 지금이 더 힘들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고통은 단순히 물자의 절대적인 양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특별시기에는 위기가 왜 닥쳤는지 비교적 분명했고,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원인은 복합적이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지속적인 제재와 연료 공급 감소, 발전시설 노후화와 외화 부족, 낮은 생산성과 더딘 구조 개혁이 서로 얽혀 있다. 위기가 한때의 충격을 넘어 일상의 구조가 된 것이다.
오늘의 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에너지 부족이다. 연료가 부족하고 정비가 지연되면 노후화된 화력발전소의 가동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전력난과 연료 부족은 대중교통의 축소와 공장 가동 차질, 농산물 유통 지연과 관광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전기는 하나의 공공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물과 식량, 교통과 통신, 보건과 교육을 이어 주는 쿠바 사회의 생명선이다.
미국의 대쿠바 경제 제재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더욱 키운다. 금융제재와 거래 제한은 원유와 기계 부품의 수입뿐 아니라 송금과 보험, 해운과 국제결제를 어렵게 만든다. 식량과 의약품이 형식상 제재 예외에 해당하더라도 외국 은행과 운송회사들은 제재 위험을 우려해 쿠바와의 거래를 피한다. 제재의 공식적인 목표가 쿠바 정부와 핵심 권력층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부담이 정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거래가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전기와 식량, 필요한 의약품을 구하기 어려운 평범한 시민에게도 돌아간다.
쿠바의 정치체제와 인권 상황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일당 체제와 정치적 자유의 제약, 반대 의견에 대한 통제를 주권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쿠바 정부를 비판하는 일과 쿠바 사회 전체의 경제적 고통을 심화시키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삶을 악화시켜 체제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은 시민의 고통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늘의 위기를 오직 미국의 봉쇄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정직하지 않다. 쿠바 경제는 오랫동안 특정 우호국에 집중된 에너지 공급망과 교역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는 베네수엘라가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대신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유리한 조건으로 석유를 공급했고, 쿠바는 그 대가로 의사와 교사, 기술 인력을 대거 파견했다.
이른바 ‘석유와 의사의 교환’은 쿠바 경제에 중요한 숨통을 열어 주고 베네수엘라의 기초 보건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쿠바 경제가 또 다른 외부 에너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자체적인 식량·에너지 생산 기반을 충분히 확충하지 못한 상태에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와 석유산업까지 흔들리자 쿠바의 구조적 취약성은 다시 드러났다.

쿠바 아바나의 한 국영상점에서 정전으로 인해 식품을 구매하기 위한 줄 ⓒhttps://quepasamedia.com/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과 과도한 중앙집중, 낮은 농업생산성과 더딘 정책 결정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쿠바는 농업에 유리한 기후와 토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상당한 양의 식량을 수입한다. 정부는 농민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가격과 유통에 대한 통제를 쉽게 완화하지 못했다. 민간 부문을 허용하면서도 그 성장이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을 경계했다. 개혁과 규제 완화, 그리고 재통제가 반복되면서 생산자와 투자자의 신뢰도 약해졌다.
쿠바의 디아스-카넬(Miguel Díaz-Canel) 정부도 기존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국영기업의 자율성과 지방정부의 재량권을 늘리고, 민간기업과 협동조합의 대외거래를 확대하며, 외국인 투자 장벽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가 중심의 계획경제 운영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하는 변화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안의 목록이 아니라 실행의 속도와 일관성이다. 쿠바 정부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장과 민간 부문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민간 경제 활동이 확대되면 다시 통제를 강화하곤 했다. 자본과 투자는 받아들이면서도 생산자와 기업에 실질적인 경영 자율성을 주지 않는다면 생산과 투자를 회복하기 어렵다. 경제적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정치적 통제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방식 역시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힘들다.
쿠바 혁명의 사회적 정당성은 오랫동안 추상적인 구호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확인되었다. 농촌과 저소득층의 자녀에게도 대학 교육에 접근할 기회가 확대되었고,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문맹 퇴치와 교육·보건 접근성의 확대, 혁명 이전의 극심한 사회적 격차를 완화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성과였다. 가난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진다는 믿음이 사회를 지탱했다.
오늘날 흔들리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이다. 국영 부문의 임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해외 친지에게 송금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관광업이나 민간 사업을 통해 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도 커졌다. 국영 부문 노동자와 연금 생활자는 높은 물가 상승에 더욱 취약하다. 사회주의가 완화하려 했던 불평등은 이제 해외 연고와 외화 접근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다.
전문직과 젊은 세대의 대규모 이주는 쿠바가 당면한 더 근본적인 위기를 보여준다. 쿠바 정부는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의사와 교수, 기술자를 양성해 왔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은 국내에서 자신의 노동에 상응하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혁명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시민과 전문 인력을 길러냈지만 오늘의 경제 현실은 그들이 쿠바에 머물며 미래를 설계할 충분한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많은 청년이 나라를 바꾸는 데서 미래를 찾았다면, 오늘날 적지 않은 청년은 나라를 떠나는 데서 자신의 미래를 찾는다. 물론 과거에도 대규모 이주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쿠바 내부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청년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쿠바를 떠나는 선택이 일상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와 시민 사이의 오랜 사회적 계약이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7월 쿠바의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도 이러한 변화를 드러냈다.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심각한 식량과 의약품 부족, 정전과 코로나19 확산이었다. 그러나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생활 개선뿐 아니라 자유와 정치적 변화를 요구했다. 정부는 미국의 선동과 체제 불안정화 시도를 주요 원인으로 강조했지만, 시위의 전부를 외부 개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혁명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군의 피그만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 반제국주의의 역사적 기억은 오늘 저녁의 ‘식사’와 내일의 ‘전기’를 대신하지 못한다.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거나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조금씩 마모되고 제도는 피로해지며, 세대가 바뀌면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혁명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결핍은 국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 희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반복되는 결핍은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현실로 경험된다.
바로 이런 전환기에 한국은 쿠바와 공식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한국과 쿠바는 2024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2025년에는 아바나와 서울에 차례로 상주대사관을 열었다. 양국 관계가 체 게바라와 한류를 교환하는 문화적 호기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다.
한국은 이제 쿠바를 낭만적인 혁명의 성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식량, 이주와 세대 변화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놓인 현실의 사회로 만나야 한다. 쿠바 역시 한국을 단순히 시장경제를 통해 성장한 국가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국 또한 식민지배와 전쟁, 분단과 권위주의, 급속한 산업화와 불평등을 경험해 왔다. 한국의 경험이 쿠바가 그대로 따라야 할 경로는 아니지만,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과 시장경제, 사회복지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함께 논의할 수는 있다.
필자는 여전히 쿠바를 좋아한다. 좋아하기 때문에 현실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오늘의 고통을 사회주의의 실패를 증명하는 장면으로만 소비하고 싶지도 않다. 미국의 봉쇄만 해제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도, 쿠바의 정치체제만 바뀌면 곧바로 번영이 찾아온다는 주장도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오늘의 쿠바 위기는 외부의 압박과 내부의 경직성이 맞물려 만들어 낸 결과다. 그 책임을 정확히 같은 비율로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을 말해서는 오늘의 위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의 제재는 쿠바 경제가 회복하고 변화를 모색할 공간을 크게 좁힌다. 쿠바 정부의 경직된 통치와 비효율적인 경제 운영은 외부의 압박이 시민의 고통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두 요인은 서로를 정당화하면서 위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따라서 해법도 두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은 주민의 기본적인 삶을 악화시키는 경제적 압박을 체제변화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쿠바 정부 역시 국가의 주권과 혁명을 정책 실패를 가리는 방패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생산과 투자의 실질적인 자율성을 확대하고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넓혀야 한다.
쿠바는 이제 사회주의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이념의 실험실이 아니다. 국가가 시민의 구체적인 삶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묻는 세계적 질문의 최전선이다. 이 문제는 쿠바만의 것이 아니다. 기후 위기와 전쟁,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에너지 불안 속에서 모든 국가는 비슷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국가는 위기의 책임을 외부에만 돌리지 않으면서도 부당한 외부 압력에 맞설 수 있는가. 시장의 효율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교육과 의료, 평등과 연대라는 공공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시민에게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국가권력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혁명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해답은 박제된 기념비나 반복되는 정치적 구호에 있지 않다. 전기가 끊기지 않는 집, 필요한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병원,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 떠나지 않고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에 있다. 혁명의 진정한 성패는 혁명이 시작된 날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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