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리를 만들기칼럼 2026. 8. 24. 23:07
김후주

12월 22일 오후 2시의 남태령 ⓒ김후주_남태령_2026 2024년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윤석열 퇴진 정국의 남태령에서는 트랙터와 경찰이 대치했고 자유발언과 유튜브 생중계, 트위터 게시물이 밤새 이어졌다. 이후 광장에 새롭게 등장한 얼굴들과 끊임없이 전해진 미담과 후일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경탄, 전율과 희망을 남겼다. 진영과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남태령에 저마다의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며 그날을 곱씹었다. 박근혜 퇴진 이후의 오답 노트를 뒤져가며 시민사회의 역량을 끌어모아 ‘사회 대개혁’을 외치며 기대했던 광장이 결국 윤석열을 퇴진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회의론이 우세해진 지금 남태령에 대한 감각은 조금씩 다른 결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사회운동에 소진되어 타성과 냉소에 빠진 사람들조차 남태령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회상하곤 한다. 사건 전체를 포괄하는 통합된 기록이 충분하지 않아 흩어진 영상과 게시물, 증언을 사후적으로 엮어낸 다큐멘터리 속 장면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당시 소식을 실어 나르며 농민과 연대하는 시민들 사이를 매개한 사람으로 호명되어 여기저기 다닌 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은 질문 가운데 하나는 남태령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민연대와 사회운동의 방향, 그리고 그 지속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다. 시민운동에 갓 입문한 청년은 과거의 운동이 어떠했는지, 무엇을 성취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묻고, 과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중노년층은 남태령에서 태어난 ‘말벌’들이 조직과 규율, 공동의 의제 없이 도대체 어떻게 활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질문의 핵심은 비슷하다. 남태령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시 만들거나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 당연히 나에게도 답이 없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그 안에서 희망의 실마리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나 역시 그 일원으로서 역사와 기록을 복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께해보자고 말한다. 한 명의 악당을 물리치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로 보일 정도로 막연하고 지리멸렬하고 거대한 문제들이 나와 타인들과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다. 내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는 비슷한 절망과 분노가 어떤 조건에서는 낯선 타인에게 다가가는 연대가 되고, 또 어떤 조건에서는 더 약한 존재를 적으로 만드는 결집으로 이어지는가이다. 그리고 그 분열의 갈림길에서 사람과 현장을 잇는 관계의 기술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이다.
종종 두 장면을 겹쳐 생각한다. 장면 하나는 수천 대의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온 유럽의 농민들이다. 유럽의 농민시위에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2019년 네덜란드에서 질소 배출 규제에 대한 반발로 시위가 크게 확산된 뒤부터는 일부 농민의 분노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의 성장과 극우세력의 개입을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농산물 가격 하락, 생산비 상승, 값싼 수입농산물, 유통기업의 시장지배력, 관료주의와 환경규제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분출했다. 극우 정치는 그 이질적인 불만 가운데 일부를 민족주의와 반이민의 언어로 번역하며 영향력을 넓혀갔다. 기후 위기 대응 비용이 이미 벼랑 끝에 몰린 농가에 새로운 부담으로 전가되는 동안, 극우세력은 농민을 관료와 환경운동가, 이민자와 소수자에게 자신의 땅과 권리를 빼앗기는 ‘진짜 국민’으로 호명했다. 모든 유럽 농민과 농민시위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폐업과 소득 하락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기존 정당과 농정으로부터 대표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농민들의 불만이 극우 정치의 주요한 자원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농산업 자본과 대규모 유통기업의 권력보다 환경정책과 사회적 소수자가 더욱 눈에 띄는 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른 장면 하나는 남태령의 트랙터다. 한국 농민들 역시 시장개방과 가격 불안, 생산비 상승, 기후 위기와 농촌 소멸 속에서 심각한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 농민운동의 분노는 적어도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적대로 변질되지 않았다. 한국 농민운동이 오랫동안 민주화운동·노동운동·통일운동과 관계망을 형성하고, 농민의 생존 문제를 시장개방과 국가정책,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로 해석해 온 역사가 이러한 차이가 생겨난 조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관계망은 열악한 현실에서도 농민운동이 지속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농민들이 사회적 고립의 벽을 넘어 새로운 시민연대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민이라는 사회적 위치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방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같은 생존 위기와 박탈감도 어떤 언어와 관계망을 만나느냐에 따라 연대의 근거가 되거나 배제의 동력이 된다. 이러한 갈림은 윤석열 퇴진 정국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청년세대의 정치에서도 확인된다.
‘응원봉’으로 상징된 청년 여성들은 어느 날 갑자기 광장에 출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의 경험이 그 안에 있었다. 여기에 아이돌 팬덤을 비롯한 문화 향유 과정에서 익힌 조직력도 작동했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했으며, 현장의 필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물자와 인력을 지원했다. 물론 청년 여성을 균질한 하나의 집단으로 그릴 수는 없다. 내부의 배타성과 극우화, 광장에서 발휘한 정치적 역량이 구체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윤석열 퇴진 광장의 가장 주목받는 주체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응원봉 청년들의 다른 편에는 태극기 집회와 서부지법 폭동 등에 참여한 일부 극우 청년 남성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하나의 집단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베류의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라이트 역사관, 극우 개신교와 정치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흐름이 존재한다. 이 공간에서는 지역·이주민·중국·여성에 대한 혐오와 반공주의가 반복적으로 생산되었고, 여성과 소수자를 특혜받는 집단으로, 자신을 역차별의 피해자로 위치시키는 서사가 확산되었다. 인증과 조롱, 혐오표현과 좌표 찍기, 때로는 물리적 폭력과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행동 양식도 형성되었다. 여기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남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아니다. 박탈감의 원인을 여성·이주민·소수자에게 돌리는 담론과 그것을 증폭해 온 온라인·종교·정치 네트워크다. 이들은 ‘연대’를 단체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후원과 보급, 돌봄을 요청하며 과거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의 명분을 전유한다. 최근 부정선거 농성에서는 윤석열 퇴진운동의 연대 문법을 차용하고, 남태령의 상징적인 구호였던 “차 빼라”를 외치기도 했다. 연대의 언어와 외형이 언제든 배제의 정치에 의해 복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럽과 남태령의 트랙터, 응원봉 시민과 극우 청년정치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비슷한 외형을 가진다. 박탈감의 호소, 집단적 상징, 실시간 온라인 소통, 자발적인 후원과 보급, 국가권력과의 대치, 역사적 정당성의 호출이라는 형식만 보면 그렇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남태령을 하나의 성공한 광장 모델로 고정하고 그 외양을 반복하려는 욕망이다. 트랙터와 응원봉, 밤샘 대치와 실시간 중계, 쏟아지는 후원과 미담을 다시 배치한다고 해서 남태령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남태령은 누군가 사전에 설계한 완결된 기획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위기 속에서 상대의 필요에 응답하며 만들어낸 결합이었다. 지속해야 할 것은 그날의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을 가능하게 했던 관계의 원리다. 돌봄과 연대처럼 보이는 행위도 특정한 권력에 복속되거나 닫힌 공동체 내부에서만 순환하며 외부의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순간 배타적 결속의 기술이 된다.
민주적 연대와 극우적 결집을 가르는 선은 집회 방식의 새로움이나 참여자의 열정에 있지 않다. 그 실천이 누구를 동료로 호명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 고통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있다. 자신이 빼앗겼다는 감각은 다른 피해자를 발견하는 감수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더 약한 누군가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적대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남태령에서는 농민의 생존 위기와 청년 여성·소수자의 요구가 서로의 몫을 빼앗는 경쟁 관계로 배치되지 않았다. 각자의 고통이 완전히 같다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밤새 추위를 견디는 동안, 그 고통을 함께 만들어낸 정치·경제적 구조를 바라볼 가능성이 열렸다. 남태령이 남긴 희망은 우리가 선하고 단결된 하나의 공동체였다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차이를 없애거나 자신을 표백하지 않고도 한동안 서로의 조건이 되어주었다는 데 있다. 타인의 절박함을 자신의 행동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그러므로 남태령이 다시 가능한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지금 누구의 다급한 신호를 지나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남태령은 기념해야 할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낯선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곁으로 이동하라는 현재형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신념에만 충성하지 않으며, 모든 참여자를 묶는 단일한 적대와 목표를 전제하기도 어려워졌다. 공식 지도부와 조직의 권위만으로 참여를 지속시키거나 현장의 흐름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복수의 지향점을 따라 이동하며, 그 물결을 누구도 완전히 예측하거나 지휘할 수 없다. 이렇게 복잡다단해진 광장에서 생성된 관계가 다른 투쟁과 일상으로 이동하고 변형될 수 있다면 남태령은 지나간 예외가 아니라 종결되지 않은 정치적 가능성이 된다. 이처럼 복잡한 지형을 넘나들며 연대를 확대하려면 유연하고 민첩한 연결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연결자는 한 현장의 경험과 요구를 다른 현장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서로 다른 당사자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접점을 만드는 사람이다. 연결자의 정치적 중요성은 분노와 박탈감이 더 약한 타인에 대한 적대로 번역되기 전에 서로의 조건을 마주하게 하고,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함께 발견하도록 돕는 데 있다. 연결자는 분노를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노가 향할 방향을 민주적으로 다시 묻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연결되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일괄적으로 양성되기보다 서로 다른 현장을 오가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성장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가 다른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말을 대신하기보다 서로 직접 대화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요구를 매끈하게 봉합하기보다 긴장과 차이를 남겨둔 채 공동행동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현장에 일정 기간 머무르는 교차 체류와 공동 프로젝트, 사건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가는 정기적인 대면의 기회가 필요하다. 농민운동 활동가가 다른 분야의 현장에 참여하고, 그 현장의 활동가와 시민이 다시 농촌의 노동과 생활 속에 머무르며 서로의 언어와 시간, 문화와 위험을 몸으로 배우는 식이다. 여기서 교육의 단위는 추상적인 신념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수행하는 구체적인 과업이어야 한다. 또한 이미 이런 일을 해온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시간과 자원, 지지구조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 관계를 유지하고 낯선 집단 사이를 조정하며 외부의 변화를 내부의 언어로 설명하는 노동은 대부분 공식적인 활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를 연결자 개인의 친절과 헌신에만 맡기면 그는 가장 먼저 소진될 것이다. 뛰어난 한두 명의 인물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 지속 가능한 연대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현장에 여러 접점을 둔 분산된 연결망이 필요하다. 연결자의 역할은 모든 목소리를 대신 대표하는 데 있지 않다. 정보와 자원을 필요한 곳으로 옮기고, 자신에게 집중된 발언권을 다시 당사자에게 돌려주며, 마침내 자신이 없어도 관계가 이어지게 하는 데 있다. 좋은 연결자는 더 많은 사람을 자신에게 연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자신이 점유한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다. 연결자들에게 활용할 수 있는 물적 자원과 시간, 대체 인력을 보장해야 한다. 동원 규모와 가시적인 위력만을 인정할 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관계와 조율의 과정, 공동의 소통 자체도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결국엔 빠르게 변화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유연하고 민첩한 협력과 연대가 특별한 이벤트나 누군가의 특수한 과업이 아닌, 현대 시민들의 일상적인 습관의 차원으로 펼쳐져야 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 같아 보여도 지금 우리의 주변은 너무나 파편화되어 있고 황폐하기에 첫 기반을 다시 다지는 단계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연대는 한 번 증명하면 영원히 유지되는 성취가 아니다. 매번 달라진 조건 속에서 의식적으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실천이다. 그리고 그 실천이 무르익으면 조금 더 관용적이면서도 다양성에 열려 있는 안전 공간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합의점에 도달하는데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연히 이루어졌던 선택을 반복되는 실천으로, 다져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인 것 같다. 만약 다음에 또 다른 남태령이 온다면 그때는 우연의 일치와 행운이 조금 덜 필요하기를, 그 빈자리를 우리가 미리 준비해 둔 관계와 습관이 채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대는 실패할 수 있고 관계는 소진되며, 우리가 사용한 언어와 형식마저 특정 권력이나 배제의 정치에 빼앗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감각은 우리에게 남아 삶을 바꿔놓는다. 이미 완성된 우리의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갈등 속에서 매번 다시 더 큰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낙관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바,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0) 2026.08.24 제주 해상 로켓 발사와 제주 군산복합체 (0) 2026.02.27 자라고 싶은 마음: 성장주의에 맞서는 아주 내밀한 대안 (0) 2026.02.27 돌봄이 퍼포먼스라면 (0) 2025.08.27 광장의 가장자리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말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0)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