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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 서울과 가자지구를 잇는 말과 몸짓의 기록 중 하나이슈 2026. 8. 24. 22:59
타리*
들어가며
청탁을 받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감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지면이라면 마다하지 말자는 마음만으로 덥석 받아 들고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두 달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5월 17일부터 6월 20일까지 이어진 “퀴어팔레스타인연대의 달” 활동[1]을 마쳤고 6월 20일에는 ‘저항과 소음’ 기획단이 준비한 서울에서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한 거리 레이빙[2]도 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가짜 휴전상태에서 집단학살을 계속하고 있다.[3]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절멸을 의도하며 벌인 2023년 10월 7일 이후의 세계는 중단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전보다 일일 사망자 숫자가 줄어들었을 뿐 집단학살은 계속되고 있는데도 세계에서 가자 지구가 지워지고 잊힌다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민감옥 수감자가 겪고 있는 고문과 강간을 비롯한 체계적인 학살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고 아동을 향한 표적살해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가 나왔다.[4] 가자지구는 계속 좁아지고 있고,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노란선과 오렌지선을 그으며 가자지구를 잠식하고 있다. 사람들을 계속 바다 쪽으로 밀어내고 있고, 건물은 모두 부서져 대부분의 사람이 텐트에서 살고 있는데 폭염속에 상하수도조차 불비한[5] 곳에서 최소한의 위생조차 담보되지 않은 채 굶주리고 있다. 이러한 여름의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갔다. 올 여름엔 작년만큼 폭우가 내리지 않았다. 작년엔 폭우에 앰프와 현수막과 온갖 집회 물품과 사람들이 젖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가자 지구에 홍수가 난 것을 보고 물에 대한 유례없는 강도의 공포가 생겼다. 올해는 대신 40도에 육박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상반기에는 모함메드 엘쿠르드의 <완벽한 피해자>, 알라 알카이시의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이 번역되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온라인 강좌[6]를 통해서, 얼굴들에서 진행하는 책읽기 모임[7]을 통해서 이 번역서들을 사람들과 함께 읽는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로부터는 미국에서 출간된 <호모섹슈얼 인티파다>[8]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서 생산한 쿠피예를 선물받았다. 이달(8월) 9일에는 팔레스타인 무용가와 우지안 예술가가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 답케를 배우고, 광주 민중항쟁과 가자 집단학살에 대한 증언을 겹쳐 읽으며 식민성과 언어를 몸으로 체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어떤 말로 전해야 할지,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며, 어떤 이야기들을 전략적으로 잘 정리하고 전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다. 이것은 사태로 인한 막막함이다. 왜 집단학살은 끝나지 않는가? 왜 유엔은 무력한가? 왜 한국정부는 이토록 실망스러운가? 심지어 국민연금공단이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불어난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매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9] 한편으로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해왔고 나는 어떤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기도 하다. 전자는 분노가 쌓인 답답함이라면 후자는 불필요한 막연함이다. 분명 나는 구체적인 장소에 있었고, 명백한 진실을 접했고, 사람들과 계속 무언가를 했다. 그렇다면 지난 여름 서울에서 벌어진 몇 가지 연대현장을 그리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하는 것이 이 지면을 활용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겠다.
“내 정체성은 집단학살 시대를 살아가는 퀴어, 그래서 내 퀴어 깃발은 팔레스타인 깃발”[10]
한국작가회의와 얼굴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함께 7월 한달 간 집단학살 1000일을 ‘맞이’하여 글쓰는 사람들의 한 줄 성명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총 501명이 참여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게시되는 중이다. 나는 작가 정체성은 없지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최측에서도 참여대상을 작가로 호명하지 않고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요청받지 않은 일에는 주저하고, 낄낄빠빠 못하는 주책스러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몸을 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하면서는 유독 몸이 먼저 나간다. 부족해도 뭐든 해보자, 무슨 말이든 해보자, 실수하면 반성하고 나아가보자, 다 배우고나서 할 시간이 없다, 하면서 배우자… 와 같은 마음이 된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참상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연대 활동으로 내가 나를 바꾸고 있다는 기쁨만은 분명히 존재한다.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처음 퀴어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를 떠올린다. 이 연대활동은 내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한다. 나 자신의 개조에 헌신하려는 노력이다. 사실 나의 기존 준거 집단 안에서 차이가 더 크게 느껴서 탈퇴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농담으로 탈동성애 해야겠다고 하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정체성 같은 것은 없다는 (규범적인) 생각에 젖어 있던 차에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기쁨이다. 광장에 나섰을 때 예전에 무지개 깃발에 시선을 두고 쫒아 가듯이 이제는 팔레스타인 깃발에 몸과 마음을 둔다. 팔레스타인 깃발이 놓인 광장에서 비로소 소속감을 느끼고 연대감을 느낀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2023년 가을 집단학살을 자행하며 가자지구 땅 위를 밟고 있는 탱크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 무지개 깃발에 반대하지 않는 퀴어들과는 적대하게 되었다. 시오니즘 퀴어가 가능하다니, 말도 안 됐다.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은 퀴어라는 말을 성정체성이 아니라 퀴어가 살아가는 조건을 설명할 수 있는 저항적인 언어로 재구성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것이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역할이라고 여겼고,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후 3년째 ‘자긍심의 달’을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고쳐 불러왔다.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 연대 성명 발표 기자회견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서염_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_2026.6.18 올해도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은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두 성명은 개인과 단체의 연명을 받아서 발표했지만[11] 올해는 단독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 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구성원들과 함께 쓰면서 울고 웃었다. 연명을 요청하기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우리가 취하고 싶은 방식에 따라 여유 있게 정리하고 발표하자고 뜻을 모았다. 퀴어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퀴어를 지지하고 연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 당연한 일을 일부러 요청하고, 응답을 기다리기보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기로 했다. 미국 스톤월 항쟁으로 시작되었던 프라이드 퍼레이드(자긍심 행진)의 역사, 그것을 계기로 정해진 ‘프라이드 먼스(자긍심의 달)’와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이전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세계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여전히 집단학살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가진 이 좆같은 상황을, 자긍심에 달에 자긍심은 고사하고 오히려 좆같음을 느끼는 감정을 소리 높여 토하고 싶었다.
올해 성명을 쓰면서 집단학살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자각한다. <호모섹슈얼 인티파다>의 서문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포스트 10월 7일 세계는 그 무엇과도 다른 식으로 무섭고 잔인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10월 7일 이후의 잔혹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 전까지 내가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퀴어들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유례없이 전 세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퀴어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퀴어들이 이렇게 팔레스타인 연대에 앞장서는 이유는 비인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비롯된다 생각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퀴어들은 단지 성별이나 성정체성이라는 단일한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점차 정체성은 지배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분할선으로 악용되고,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제거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기 위한 도구로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저항세력에게는 심문의 대상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야만이 할당되고 이스라엘에 의해서 인간동물로 불려질 때, 팔레스타인이라는 사회가 퀴어에게 적대적인 사회라고 재현되고 동등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평가될 때, 이러한 선동의 언어가 무엇을 위해서 동원되는지 이해하는 퀴어들이 연대에 나선다. 이러한 혐오 선동을 의도하는 이들은 퀴어들의 삶에 무관심하며 퀴어와 무슬림 모두를 한번에 쓸어버리고 싶어한다. 올해 우리의 성명에도 인용했듯이, “모함메드 엘쿠르드가 말하듯 팔레스타인의 조건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퀴어로서, 퀴어답게 살아가는 것은 질서에 동화되기를 욕망하지 않고, 체제로부터 사랑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퀴어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부수어야 할 비인간화의 조건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간 이하라고 규정당해온, 시설화의 억압을 공유하는, 미래를 빼앗긴, 우생학에 희생되어온, 사회를 위협하는 테러집단이라고 매도되어 온, 빈곤하고 범죄화 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6월 18일 오전 올해의 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연대자들을 초대했다. 발언자로 초대한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리를 함께 지켰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와 기자회견에는 단체로 조직된 이들보다 개인들이 많이 모인다. 여전히 발언자는 단체소속으로 초대받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의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는다.
“성명문. 제목과 본문에 비속어가 사용된 점에 대해 연대 발언자 여러분과 기자회견 참가자 분들로부터 여러 반응을 접했습니다. 정확히 그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내야 하는 거칠고 참담한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반가워해 주신 분들부터 널리 호소력을 지녀야 하는 운동의 언어로 부적절하다고 본다는 분들까지 다양한 입장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선택이 대단히 아쉽다고 비판해 주신 단위에서도 연대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셨습니다. 비판적 연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은 지배 질서와 폭압적 권력을 상대로 무례한 언어를 구사하고자 했습니다. 집단학살에 대한 분노를 실어나를 그릇으로 정중하지 않은 날것의 표현을 동원하고 싶었습니다. 일부러 그러고자 결정했습니다. 다만 연대발언을 요청드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취지를 보다 상세히 소통했어야 했다고 반성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해당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 선택에 대해 퀴어 정치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발화 전략 등의 차원에서 다각도로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은 동지들과 적극적으로 고민을 나누며 이후의 언어를 벼려가겠습니다.”[12]
소음, 소란, 진동, 파열
위의 인용문은 기자회견 이후 발언자로 초대한 이들에게 보낸 감사 메일의 일부다. 이번 성명에서 사용된 비속어는 소수자를 혐오하는 혐오표현과 달랐고, 그저 누군가를 향한 욕설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최근 윤석열 광장에서 혐오표현을 몰아내고자 했던 사회운동의 노력(박근혜 탄핵광장의 경험과 교훈으로부터 내려온)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 3년간 퀴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한 성명을 쓰고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어떤 파열이 있었고[13], 그 파열 자체가 의미있게 느껴졌다. 한계 속에서 언어를 시험하고 가능성을 넓히고 새로운 접촉면을 가늠한다. 우리가 무엇과 적대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가고자 하는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파열이다. 올해 우리는 성명을 통해서 “이제 팔레스타인인이 되어가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 과도하고 불경한 제안이라니. 응급한 초과의 말임이 분명하다.[14] 이렇게라도 선을 넘어간다면 지금의 이 사회의 침묵과 외면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미 유구한 역사로서 존재하고 있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살해당하고 있고, 이들의 얼굴과 역사가 지워질까 두려워 이들이 되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 조금이라도 그것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동시에 이런 말들은 당사자성을 해치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과 지향을 단일화할 위험을 키우고, 연대자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전유하고 함부로 같다고 말하는 것이 될까. 이 질문은 연대 운동을 하는 내내 가져갈 것이다. 엘쿠르드의 외침을 새겨들으며 갈 수 있어서 할 수 있다.
저항과 소음이라는 기획단을 구성하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표방하는 거리 레이빙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도쿄 프로테스트 레이브”[15]라는 활동에 영감을 받아서 우리도 저항의 목소리를 도시를 점유한 채로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내며 외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클럽에서 우리가 상황적으로 경험했던 음악과 춤이 매개된 해방적 경험이 어떻게 좀더 의식적인 저항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6월 20일 자긍심에 달에 팔레스타인, 퀴어, 연대를 연결하는 레이빙을 했고, 7월 26일에는 이런 기획에 대한 의미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8월 15일에는 두번째 본 행사가 열린다. 집회에서, 행진하면서 팔뚝질을 하면서 구호를 외친다. 피켓과 현수막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거리 레이빙은 이상하고 비정형적인 움직임을 만들면서–춤을 추면서–소음과 음악을 가까운 소리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며 움직임을 만든다. 정중하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이성적이지 않은 언어와 몸짓이 발산하는 공간이 되기를, 그렇게 보이길, 느끼길 바라는 시공간이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소중한 워크숍이 열렸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 ⓒ서염_이태원광장_2026.6.20 문학적인 저항을 열망하며
‘이스라엘 문화예술 보이콧 캠페인 모자이크’는 팔레스타인 무용가(안전상의 이유로 익명을 유지한다)와 공연예술가 우지안과 함께 답케 워크숍을 열었다. 두 사람은 식민성과 언어의 축소와 발굴, 아랍어와 한국어의 교차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 언어가 몸을 통과할 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주목한다. 팔레스타인 무용가는 몸을 기억의 아카이브로 보는 관점 속에서 답케에 담긴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고,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가진 기억과 몸짓이 만나 연대의 공통 언어가 되는 시공간을 창조한다.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페미시어터에 모여서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알라 알카이시의 문장과 광주항쟁의 보고서를 겹쳐 읽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 사람은 1980년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보고서[16]와 “아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김준태의 시를 읽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상황을 담고 있었고에서 공수부대에 의한 시민학살에 대한 증언과 보도가 담긴 문장을 읽었고, 한 사람은 알라 알카이시의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에 실린 “축소되는 언어, 폭발하는 기억”을 읽었다. 이 글은 집단학살을 거치면서 응급한 호소를 하느라 축소되어 버린 아랍어에 대한 고민을 담은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짝꿍은 최대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장을 상대방에게 잘, 충분히, 이해가능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상대는 그 말을 온몸으로, 오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광주 상황을 증언하는 문장을 받아들었는데 자주 눈이 흐려지고 목이 메어서 멈추어야 했다. 이 광주 상황을 소리 내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내 짝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언어가 축소되는 응급하고 참혹한 학살의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와 가치들이 지워져 버리는 것에 대항하고자 어떻게 애쓰는지 증언하는 알카이시의 문장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광주항쟁에 대한 보고서는 알카이시의 문장과 마주침으로써 내가 영상으로 보아왔던 가자지구의 참상을 그려내고 증언하는 역할을 해냈다. 또한 알카이시의 문장은, 폭도로, 간첩으로 왜곡될 수 없는 광주의 항쟁군들을, 단지 순진무구한 피해자로만 축소될 수 없는 광주여고 학생들의 외침을 새롭게 보게 해주었다. 긴박했던 80년 5월 광주의 순간들을 읽으면서도 총칼에 스러져간 사람들의 몸과 역사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광주항쟁을 둘러싸고 지금도 계속되는 기억 투쟁은 광주학살을 가능하게 했던 권력이 여전히 펄펄 살아있음을 직면하게 하는 동시에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는 감각 역시 재차 일깨운다. 바로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폭도로 매도되었던 이들의 명예를 살리는 길이고, 그들을 인간화하는 투쟁이라는 점을 안다. 알카이시는 가자지구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담을 만큼 큰 단어들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자신을 전혀 표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56쪽) 고 쓴다. 하지만 표현할 길이 없다는 말을 쓰는 것을 통해 결코 포기한 적 없는 언어와 기억의 투쟁을 상기시킨다. 1948년에 시작된 식민지배로부터, 2006년 가자지구 봉쇄로부터, ‘잔디깎기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학살과 공습으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이들은 이번 집단학살이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살아남아 참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다른 종류의 표현을 위한 공간을 보존하고”(60쪽) 그럼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발언권이 없는, 인도주의적 대접으로 족하다는 비인간화하는 가치체계에 저항한다. “글쓰기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의 축소에, 우리의 어휘가 기사 제목이나 인도주의 보고서 안에 들어맞도록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맞서는 나의 저항이 된다.”(62쪽) 그렇다면 연대가 축소와 제한에 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증폭기 되기를 수행하면서 나의 글과 몸짓이 울림통이 되고, 그 경험을 체화하면서 나의 해방과 관련된 말과 몸짓을 창조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기대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나의 해방과 연결하게 한다. 광주항쟁을 다시 본다. 우리를 다시 본다.
“문학은 우리의 삶이 경보와 알림, 좌표와 사상자 수 이상의 무언가라고 주장한다. 우리 주위의 세계가 속도와 단순화에 보상을 베풀 때조차 언어는 여전히 세부를, 망설임을, 모순을, 부드러움을, 그리고 복잡성을 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긴급한 말하기가 유일한 말하기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재앙 속에서도 우리는 여기저기 헤매고, 살피고, 되돌아오는 문장들에 대한 권리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62쪽)
답케 워크숍은 막막함을 극복하고 이 글을 써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진행자는 팔레스타인에서 무용가와 교육자로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공유해 주었고, 답케의 방향과 의미를 알려주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느끼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표현법을 알려주고, 그것을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일시적인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고 외롭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잘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면 우리는 서로를 덜 외롭게 할 수 있다. 답케는 기쁨을 표현하는 춤이기 때문에 심각한 저항의 현장에서는 잘 추지 않는다고 했다. 주로 결혼식에서 추어왔고 특히나 신랑을 위한 파티에서 춘다고 했다. 답케 안에는 젠더 역할이 나뉜 표현도 있는데 이날 워크숍에서 배운 동작에는 그런 것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폐허가 된 가자지구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소녀가 막대기를 흔들며 답케를 추는 릴스를 본다. 그래서 답케를 배우고 싶다. 답케를 연습하면서 기쁨의 순간을 예비하고,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서로를 덜 외롭게 만들고 싶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답케의 리듬을 배웠고 기억하고 있다면서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다. 아주 작은 기쁨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주저없이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 우리는 땀을 흘려가면서 열심히 동작을 익혔다.

팔레스타인 무용가와 함께 하는 답케 워크숍 @서염_페미시어터_2026.8.9. 답케 워크숍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가진 기억 중에 기쁨과 잉여의 순간을 떠올리도록 이끌어주었다. 응급하고 효율적인 언어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잉여적인 말을 떠올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답케 동작과 붙여보았고 함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답케를 추었다. 답케가 나에게도 그런 기쁨과 잉여의 몸짓이 되도록 도움을 받았다. 워크숍의 순간에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오빠와 나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환경에 있었다. 나는 다독가인 오빠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자주 졸랐다. 오빠는 이제 더 이상 해줄 이야기가 없다고 하면서도 나의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몇 초간 고민한 후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애가 길을 가고 있었대.” 이 문장이 언제나 처음이다. 나는 매번 기대한다. 그 아이는 누구였고, 어떤 길을 가고 있었고, 가다가 무슨 일을 만났을지. 침을 삼키며 그 다음의 말을 기다린다. 오빠는 몇 초간의 정적을 지킨 후 “그냥 갔대.”라고 말한다. 팽팽한 긴장이 해소된다. 나의 기대감은 허무함으로 바뀌고, 웃음이 터진다. 몇 번이나 반복해도 매번 같다. 전혀 지겹지 않다. 이 기억을 소환하며 응답에 요청하려 애쓰는 것과 포-즈(일시정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기로 한다.
문학적인 저항은 세계와 나, 나와 우리 사이를 파고드는 무력함에 맞서게 해준다. 이 이야기는 퀴어팔레스타인 포럼 때 접촉면 출판사의 보영이 세션 2 진행자인 화로부터 받은 질문에 답을 하며 들려준 이야기[17]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접촉면에게 개별적으로 해주신 질문은 답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답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언어가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때로는 무력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제가 쓸 수 있는 도구는 언어이며, 언어가 가진 무서운 힘도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오션 브엉 작가의 말을 자주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어떻게 지내세요? ”, “좋아요. 잘 지내요.” 이런 순간들에, 언어는 우리를 배반한다.”고 말합니다. 언어는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뒤에 이런 이야기를 더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만질 수 있죠. 그런데 아무리 가까워져도 피부를 사이에 둔 만큼 가까워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말한다면, 내가 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한다면, 내 말들은 곧장 당신 안으로 들어갑니다.”라고요. 저는 여기서 언어의 힘을느꼈습니다. 글자가 무력하고 책이 무력하다 하더라도 어떤 문장은 어떤 사람 안에 곧장 박혀 들어가기도 하는, 접촉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장을 찾고 문장들을 다듬어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독자분들께 전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자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오는 10월 7일은 집단학살이 만 3년 되는 날이다. 이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10월 3일 개최한다. 집단학살이 3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폭탄으로 살해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3년간을 버티고 있는 몸과 땅과 물과 텐트는 마르고 파괴되고 이전과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자지구 사람들은 증언하고 주장하고 있다. 문학적인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집단학살 시대에 인간성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통계를 넘어 본질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 저항이, 연대가 그것을 다만 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시와 음악과 춤과 구호가, 성명서가, 에세이가, 일기가, 그것을 배우기를 바란다. 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몸으로 곧장 침투하는 언어를 받아들이고 품으며, 세상이든 스스로든 때로 잠시 멈춤을 무력함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 타리(필명 나영정)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 ‘이스라엘 문화예술 보이콧 캠페인 모자이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1]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 작성한 퀴어팔레스타인연대 포럼과 기자회견의 후기를 참고할 수 있다. https://srhr.kr/announcements/?bmode=view&idx=171499770 https://srhr.kr/announcements/?bmode=view&idx=171990130
[2] ‘저항과 소음’의 소식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noise_for_protest/
[3] 격주 집회에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활동가가 준비하는 정세보고를 통해서 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현지 소식을 접할 수 있다. https://pal.or.kr/wp/20260627-news/
[4] “교도소 담장 안 또 하나의 집단학살” 이스라엘 교도소와 구금시설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그리고 설계된 불처벌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0월까지의 사례들, 유로메드휴먼라이츠모니터, 2026년 4월. 전문읽기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BOygMR-yzl4mz4672hWqas1o4ZZ1L7kk7nt0EFCq2Hs/edit?tab=t.0 / “The essence of childhood has been destroyed”: Israel’s deliberate targeting of Palestinian children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since 7 October 2023 전문읽기: https://www.ohchr.org/sites/default/files/documents/hrbodies/hrcouncil/sessions-regular/session62/a-hrc-62-crp-2.pdf
[5] ‘불비한’이라는 표현이 입에 붙었다. 뎡야핑 활동가가 자주 쓰는 말인데 연대체 활동을 하다 보면 실무 준비를 꼼꼼하게 하는 게 어려워 옆으로 새는 일이 많다. 긴급한 사안을 다루지만 느슨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책임소재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은 어렵고, 그렇다고 한두 사람이 완벽하게 실무를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기에 어느 정도는 부족함을 감수하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없는 것은 없는 채로 그저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해 계속 해나아가야만 한다. 그런 복잡한 상황과 심정을 표현하는 말로 느껴왔다. 그런데 이 표현을 가자지구 상황에 쓰는 것이 맞을까. 뒤에서 이야기 하는 ‘문학적인’ 가능성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하며 일단은 놓아두겠다.
[6]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26 여름강좌 <점령의 언어를 부수는 팔레스타인 읽기> (강사: 서제인, 자아, 이준태, 화) https://gofeminist.tistory.com/520
[7] 얼굴들, 팔레스타인 작가 신작 읽기 𝑤𝑖𝑡ℎ 뎡야핑 https://www.instagram.com/p/DZ6UVYik4Gb/?img_index=1
[8] Hannah Moushabeck & George Abraham, Homosexual Intifada: A Queer Palestinian Anthology (2026) https://interlinkbooks.com/product/homosexual-intifada/
[10] 가자지구 집단학살 1000일 한국작가 한줄성명 https://www.instagram.com/wordsforgaza/
[12] 발언단위, 발언자 분들에게 발송한 사후 공문 내용 중
[13] 곧 공유될 퀴어팔레스타인연대 포럼 자료집을 통해서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4] “I am become a Palestinian”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된)다.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trymagazine/poems/161355/moving-towards-home 준 조던의 시가 없었다면 결코 생각해내지 못했을 말이다. 5월 23일에 열린 퀴어팔레스타인포럼에서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쓴 퀴어~팔레스타인~연대에 대한 글을 읽는 와중에 누군가 준 조던의 이 시구를 또 낭독해주었다.
[16] 이 보고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841380
[17] 퀴어팔레스타인연대포럼 자료집은 곧 온라인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https://www.instagram.com/qk48_2025/ 에서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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