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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 집단강간 재판’의 지젤 펠리코: 피해자에서 페미니스트 영웅으로

webzinepas 2025. 2. 27. 00:18

마장 집단강간 재판의 지젤 펠리코: 피해자에서 페미니스트 영웅으로

화학적 복종 강간, 남성성과 강간법 개정을 사회의제화하다.

 

반하라

 

20241219일 프랑스 전역과 해외에서 온 수백명의 기자들이 아비뇽 법정에 모였다. 15주 동안 매일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됐던 마장(Mazan) 집단강간 재판의 최종판결일이었다. 근 십년(2011~2020) 동안 도미니크 펠리코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아내 약물강간을 제안해서 호응한 남성들을 집에 불러 아내 지젤 펠리코를 그녀가 모르게 강간하게 하면서 촬영했다. 자신이 아내를 강간할 때는 다른 남성이 자신을 촬영하도록 했다. 도미니크는 20년 징역형을 받았고, 공범 50명은 3년에서 15년 징역형을 받아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집단강간의 피해자 지젤은 최종판결이 끝난 후 법정을 나와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서 입장문을 읽었다. 재판이 고된 시련이었다며 자녀들, 사회의 미래인 손주들과 가족 모두를 생각해서 투쟁했고,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을 생각했다고 했다. 여성들의 피해 증언을 들으며 분노했고 그 분노에서 끌어낸 힘으로 다시 법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며 자신과 여성들의 공동투쟁을 강조했다. 평범한 여성이었던 지젤이 성폭력에 반해서 투쟁하는 모든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그는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되어갔다.   

'나는 지젤이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지젤을 응원하는 프랑스 시민ⓒ www.theguardian.com(2024년9월17일)

 

51명의 가해자들과 그들의 수많은 변호인들에게 둘러싸인 법정으로 72세의 지젤이 침착하게 들어가고 차분하게 퇴정할 때마다 수십명의 여성들이 모여 박수와 화환으로 지젤을 응원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수천 명의 지지 시위들이 열렸고 아비뇽 시의 역사적 성벽엔 "지젤 고마워요"라고 쓴 큰 현수막이 걸렸다. 첫 재판에서 지젤은 자신의 온 삶이 무너져 내렸다고 하면서 70대 초반인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삶을 회복하는 데 충분할 지 모르겠다며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훼손될 수 없는 피해자의 존엄함을 알리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면서 일어섰다. 지젤은 자신이 한 것은 모든 여성들도 할 수 있다며 움츠러든 여성들의 용기를 북돋았고 여성들은 그의 말을 받아 "펠리코 부인이 해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써가며 강해졌다.

 

지젤은 사회가 성폭력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길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개인적 피해로 고정시키려는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비공개 강간재판을 거부했다. 그는 전 사회가 강간 법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고 토론해서 사회변화를 위한 지식을 축적하도록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 공개재판을 결단했다. 자신의 피해가 성폭력 사회를 바꿔낼 시민들과 페미니스트들의 공유지식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강한 의지를 관철시켜서 여성 혐오적 남성연대 성폭력을 막아내는 미래가 당도하길 염원했다. 

 

지젤의 피해자로서의 존엄투쟁은 수치는 가해자의 몫이라는 캠페인이 되었다. "수치심의 진영을 바꾸라"는 팻말과 그래피티는 메시지가 되어 사회에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강간문화에서는 강간당한 여성들이 자기 잘못으로 강간을 막지 못했던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몸이 더럽혀졌다며 수치의 낙인을 찍고 무거운 침묵만이 생존할 길이라고 주입한다. 이에 따라 가해자들은 자동적으로 완벽히 자유롭다. 남성지배적 강간문화와 여성 혐오적 성폭력 간의 핵심적 유착 관계를 파악한 지젤은 남성 지배를 위한 왜곡의 정수를 겨냥해서 피해 여성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여성들이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는 투쟁에 나서서 성폭력사회를 바꿔낼 수 있는 의지를 모을 수 있도록 인도했다.  

 

수치심의 진영을 바꾸라ⓒhttps://lesglorieuses.fr/gisele-pelicot/?cn-reloaded=1

 

마장 사건의 경과와 화학적 복종 강간의 문제화

 

20209월 수퍼마켓에서 여성들의 치마 속을 찍던 도미니크를 본 경비직원이 피해사실을 여성들에게 알렸고 그들이 도미니크를 경찰에 고발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도미니크의 컴퓨터 파일에서 2만여 강간 촬영물과 사진들을 발견했고 촬영물에 찍힌 의식 없는 피해자가 도미니크의 부인인 것을 확인하고 지젤에게 집단강간 피해의 전말을 알렸다. 아비뇽시 북동쪽 인구 7천의 소도시 마장에서 벌어진 초유의 집단강간 사건은 그렇게 발각되었다. 악마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인 자신을 보고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었다고 했던 지젤은 도미니크와 이혼하고 힘든 치유의 시간을 갖고 재판의 시련을 극복해가면서 수많은 여성들의 고마운 영웅이 되어갔다.    

 

정체가 확인된 51명만 기소되었지만 최소 72명 최대 83명의 남성이 92차례에 걸쳐 지젤을 약물 강간했다. 그동안 지젤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체중은 9킬로그램이나 감소했고 기억상실, 두통 등에 시달렸다. 그동안 여러 의사들이 지젤을 진료했지만 어떤 의사도 약물부작용을 의심하거나 장기 집단강간의 피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젤은 58세에서 67세까지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의사들에게 노인 여성도 여성 혐오적 성폭력의 대상일 될 수 있고 화학적 복종 강간의 초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면, 지젤의 성병 감염 진료 기록을 참고하여 지젤의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젤은 일찍 구해졌을 수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화학적 복종 강간이 특정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는데 사회적 경각심이 없다가 지젤의 피해를 통해서 위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젤의 딸인 카롤린도 피해자로서 화학적 복종 강간의 위험을 알리는 책을 써내고 운동단체를 만들어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화학적 복종 강간미수 피해자인 하원의원 상드린 조소와 함께 약물 테스트 키트 개발을 추진하고 의료진들과 경찰들이 화학적 복종 성범죄에 대해서 실무적 교육을 받도록 설득해 나가고 있다. 프랑스에서 화학적 복종 강간은 강간법에서 가중처벌하고 있는데 아직 피해자들에 대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다.

 

강간재판 법정, 남성성 논란과 강간법 개정

 

믿기지 않지만 40년이 훨씬 넘는 결혼생활 동안 도미니크는 좋은 남편으로 세 자녀들과 일곱 손주들에게 좋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모든 가족의 신뢰를 받았다. 그들은 외부에서 봐도 좋은 가족이었다고 한다. 펠리코 가족들은 도미니크에게 무참한 배신감을 느끼며 치료받고 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도미니크의 분열적인 삶과 잔혹한 범죄에 대해서 법정에 나온 그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이유를 댔다. 아홉 살에 남자 간호원에게 성폭행 당했고 13세 때에는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하는 폭행을 지켜보게 했던 성학대의 트라우마가 그를 견딜 수 없이 짓눌렀고,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려고 아내를 희생시켰다고 했다.  다른 13명의 피고인들도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 법정을 개인피해의 토로장으로 만들었다.

 

어느 변호인은 피고인이 증거로 제시된 촬영물에서 몸은 강간하고 있지만 실제로 강간의도가 없었다며 검찰이 피고인의 강간의도를 증명할 수 없다면 강간이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다른 피고인들은 도미니크 부부의 합의된 섹스게임인 줄 알고 참여했지 강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또다른 피고인은 여성을 강간하고 싶었다면 왜 60대 여성을 찾아 갔겠냐며 강간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도미니크에게 속아서 혹은 그가 두려워서 억지로 강간하게 되었다는 피고인들도 있었고 강간한 게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한 17명의 피고인들은 항소했다. 지젤은 51명 피고인과 그들의 변호인들을 견디며 법정에 매일 앉아있다가 물었다. 왜 이 많은 피고인들중 단 한 명도 자신이 강간당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익명으로라도 경찰에 신고해주지 않았느냐고.... 평생을 믿고 살았던 전 남편 도미니크를 포함해 51명의 집단 가해자들을 마주해서 매일 열리는 마라톤 법정을 완주해 낸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와 투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공개된 강간법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회변화를 염원하는 한 영웅적 인물을 보며 숙연해 졌다.

 

최근 프랑스, 영국과 호주의 다양한 기관들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들은 일관되게  사법부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10명중 8~9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2012년에서 2021년까지 프랑스의 공공정책연구소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신고된 강간의 94퍼센트가 기각되었다. 영국에서도 성폭력의 3퍼센트만 기소되고 성폭력의 0.6퍼센트만 유죄를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성폭력이 거의 처벌받지 않고 비범죄화되는 충격적인 수치다.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마장 강간 사건은 충격적인 동시에 미미한 처벌 때문에 성폭력이 조장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는 마장 집단강간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피해자는 한 명의 왜소한 여성 노인이고 최소 72명에서 83명까지의 가해자들은 모두 남성임이 드러났다. 사회적으로 폭력적 남성성 또는 악성적 남성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방어적인 남성들은 지젤의 가해자들 중에서 정체가 확인되어 기소된 51명의 남성들을 괴물이나 악마로 자신들과 떼어보면서 이들의 남성성을 문제삼지 않고 이들의 극단적인 특수성을 보려고 했다. 지젤은 가해자들을 악마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의 직종, 계층배경과 대인관계를 보면서 특정될 만한 범죄적 공통점을 찾고 싶어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이 특정될 만한 괴물도 악마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성이었다고 본 여성들은 언제든 남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호소했다. 반면 51명의 가해자중에 4분의 1이 전과가 있는데 프랑스 사회평균의 4배일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아내강간 제안을 받고 실제로 강간하러 간 남성들이 절대로 일반 남성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비뇽 법정이 고용한 정신과 전문의는 51명의 피고인들은 괴물도 아니고 일반적이지도 않다는 모호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일반 남성들과 다른 지는 전문가도 모르는 것이다.

 

2024921리베라시옹 신문에 가수 소설가 등 200여 남성들이 서명한 녀석들, 우리 깨어나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서 화제가 되었다. 글을 쓴 모르강 N. 뤼카는 마장 재판은 피고인 51명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남성성에 대한 재판이라며 남성지배 폭력체계 구조에서 예외 없이 모든 남성들이 이권을 누리고 있다면서 미투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친구, 동료, 형제가 성차별적 행동을 할 때 어디에 있었냐며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뤼카는 펠리코 사태는 괴물들이 아니고 모든 남성들의 문제라며 체계적 현실이 된 남성폭력을 끝내기 위한 남성행동 로드맵 10포인트를 제시했다. "모든 남성은 아니다"라는 해시태그 반론도 이어졌다. 하지만 ‘남성성을 겨냥한 뤼카의 남성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실천행동 로드맵을 사회가 논의하게 된 것은 성장기 소년들이 펠리코 사태와 관련해서 기존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재고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장 재판을 통해서 프랑스의 강간법이 조명되었고 의회에서도 활발한 개정 논의가 이어졌다. 2011년 이스탄불 협약의 권고와 2017년 미투 운동이후 2024년까지 유럽의 24개국은 점차 비동의 강간법을 도입했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폭력, 강제, 위협 또는 기습에 의한 성적 삽입을 강간으로 정의하면서 ‘yes’로 명확히 동의해야만 강간이 아니라는 비동의 강간죄로 법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지젤을 강간했던 가해자들이 의식이 없는 지젤의 상태를 그의 허락으로 간주했다는 주장을 한 이유다. 이미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비동의 강간죄를 찬성하고 있고 마장 재판을 통해서 비동의 강간죄로의 법개정은 빠르게 되리라 보고 있다. 다만 비동의 강간죄로 인하여 피해자가 더 불리해질 수 있는 부작용을 점검하면서 동의여부 자체가 아니라 진정한 동의였나를 판단할 수 있는 보강된 동의 플러스법 개정이 되도록 신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또 법개정에 매달리며 사회적 노력이 약화될 수 있는 법제도에 대한 의존성을 경계하고도 있다. 1219일 최종판결에 대한 입장문을 읽었던 지젤은 마지막으로 자신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서로 존중하고 상호 이해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미래를 집합적으로 만들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미래세대들을 위한 굳은 의지와 초인적 낙관의 표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