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건은 정신병 그리고 나의 힘

webzinepas 2023. 2. 27. 05:30

사공성수

 

물의 표면을 본다. 거울을 본다.

흐릿하게 내 모습이 비친다. 무언가 지나간다.

물결을 만진다. 손을 집어 넣는다.

살결이 스친다. 손으로 쥔다.

생명이 파닥인다. 내 모습이 흐려진다.

손에 힘을 준다. 물방울이 튄다.

숨통을 끊는다. 물결이 깨진다.

몸을 꺼낸다. 피가 물들고 물이 피-든다.

그곳에 얼굴이 다시 비친다.  

 

정환ⓒ강한서_2020

 

나 자신을 안다는 것. 철학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중요한 문제다. 무언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어느 곳에 도달하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매일 움직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꼭 내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일과를 수행하고 삶에 뛰어들기 위해 알아야 할 나의 특성은 많고, 그 빈칸을 채워나가는 일은 보람 있다. 그중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mental awareness)은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이다. 쏟아지는 정보량과 빠르게 바뀌는 생활방식, 기술 발전과 기후위기 아래서 현대인들은 취약하다. 특히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관련 논의는 늘 새로고침되어야 하기에 많은 이들의 경험과 진술, 치유 과정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의 보수성은 정신병을 멀리하는 방식으로 정신건강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이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함은 물론 정신병을 혐오하고 정신과 처방을 매우 기피한다.

 

정신건강은 ‘나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이지만 결코 지키기 쉽지 않다. 우선 정보가 많지 않아서 어떤 조치를 하면 좋을지, 상담이 필요한지 혹은 복약이 필요한지, 어떤 전문가가 맞을지,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저 자살예방센터 정도만 알려져 있고 이 사회는 우리 스스로를 챙길 만한 정보와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에 가기 꺼리거나 약 먹기를 낯설어하고, 힘들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정신과는 정신병자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비정상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생각보다 크다.

 

이는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지만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정상성 개념과 연관된다. 정상성 신화는 실로 대단하다. 정신, 신체, 혹은 성애적으로 비정상적인 내가 발견되었을 때, 거대한 정상성이 저쪽에 뭉쳐져 있고 그곳의 개체들은 나와 달리 멀쩡해 보인다. 저쪽에서 나를 보았을 때 어떤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나의 비정상성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비정상성은 생각보다 잘 숨겨지지 않고 둘 사이의 괴리만 커진다. 결국 정상의 뭉텅이에서 비정상들만 하나 둘 튕겨져 나오고 병든 정상인들의 사회는 지속된다. 하지만 정작 잘못된 것은 비정상성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라는 허상이다.

 

juiceⓒ강한서_2020

 

6년간의 내 대학생활은 정신병과의 사투였다. 퀴어임을 깨달은 뒤 두렵고 불안한 청소년기의 시간을 통과해 연고가 없는 도시에 떨어져 혼자 살기 시작했다. 더 큰 사회에서 더 큰 차별을 느끼며 나의 정신건강은 나빠져 갔다. 처음엔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괴로움이 몰려와 어쩔 줄 모른 채 몇 년을 보냈다. 그 뒤론 주변의 권유로 상담을 시작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현재 병원에 정착해 복약치료 중이다.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정신과를 가기 전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나의 정신적 고통을 지각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밝혀내지도 누군가 명명해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주는 기억과 구조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그 고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기에 이해가 안 갔고, 와중에 책임은 내가 온전히 져야 했다. 그러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설명할 언어가 생겼고 안도할 수 있었다.

 

정신병을 이야기하다 보니 나아지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지만 그 말고도 이야기할 점이 많다. 정신병은 그저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ADHD 같은 질환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사회 속 뇌와 신체가 반응하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관련 통계는 갑갑한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경우, 개인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를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 나는 정신병을 오래 겪다보니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등교나 출근을 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당연히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하던 많은 일들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사회는 내게 끊임없는 죄책감을 심어주었지만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고민들을 정리했다. 할 수 없는 일들은 겸허하게 놓아주었고, 고통과 죄책감을 들게 하는 일은 멀리 했으며,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괴로움은 덤덤히 마주했다. 그 뒤로 나만의 삶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병은 나에게 악몽 같은 괴로움이자 동시에 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이고 원동력이 되었다.

 

어떤 진실을 알게 되면 그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내게 찾아온 괴로운 밤들은 나를 변화시켰고,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변화들은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부서져 있던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다고 느꼈고 대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며 힘을 얻기로 했다. 내가 차별과 폭력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을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알게 되었다. 동물이라는 이유로 성착취를 당하는 소들과 죽기 위해 태어나는 돼지 등 여성과 장애인 말고도 이 세상의 약자는 정말 많았고 축산업과 육식문화에 대한 사실은 들을 때마다 충격이었다. 그 뒤로는 횟집이나 삼겹살집 앞을 지나가는 게 힘들어졌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괴로운 건 피하는 게 상책인데, 소극적으로 생각을 피하기보단 행동으로 적극 피하는 게 더 낫다. 내가 예민한 지점, 나를 우울하게 하는 상황, 숨 막히게 하는 것과 겨우 숨쉬게 하는 것 등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못 하는 것과 절대 안 하는 것의 대척점 어느 즈음에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살아갔고 비거니즘은 내 삶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비거니즘이 비인간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동물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적극 내민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plant potⓒ강한서_2017

 

정신병자인 나는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들이 육식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내 눈 앞에 있는 고양이를 먹는 상상을 해본다. 아무래도 잔인하다. 하지만 누군가 대신 죽여준다면? 내가 못 보는 곳에서 고양이를 죽인다면? 이목구비와 털이 있으면 너무 사실감이 높아지니까 말끔히 뭉텅이의 살만 보여야 한다. 자 이제 먹어보자. 죄책감과 생명을 플라스틱 포장과 함께 갖다 버릴 수 있을까? 옛날부터 사람들은 예쁘고 동그란 눈을 소눈이라고 불렀다. 영험하고 깊은 눈. 고양이의 그것과 다르지만 둘 다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이 둘은 종만 다를 뿐 모두 힘을 내뿜으며 살아가는 같은 생명이다.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가두어 발도 꼬리도 다 잘라버리고 조금 살이 찌면 죽여버릴 수 있을까? 나는 못 한다.

 

이렇게 생각을 뜯어보면 꽤나 상식적이지만 사람들은 자꾸 날 더러 비건이 정신병이라고 내게 말한다. 이번 주에도 두 번 정도 들었다. 꽤나 불친절한 그들은 이유를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더라. 만약 이런 생각이 정신병의 증거라면 과연 나쁜 것일까?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페미가 되고 정신병이 된다면 수치스러운 일일까? 결국 정신병이 문제일까? 전혀 아니다. 전 혀 아 니 다. 그저 내 고민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 사람들은 괜한 위기감을 느끼고 나를 저지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공감과 실천은 내 배움이자 삶이었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만약 내가 가진 상상력과 깊은 공감력이 정신병이라면 나는 기꺼이 정신병자가 되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신병은 대단하다. 나와 내 삶에 전혀 관계 없는 이를 관계짓고 서로를 느끼게 한다. 느껴보지 못한 고통에 이입을 하며 행동하게 한다. 때로는 공포스럽지만 때로는 아름답고 초월적이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일은 끊임없는 관심과 인내를 필요로 하므로 일상에 큰 문제가 없는 비-정신병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정신병자들이 해낸다. 그 원동력은 결코 불쌍하지 않고 오히려 강력하다. 사실 정신병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정신병자들이 대단하다. 이 삶의 모순과 괴로움을 이겨내는 이들의 동력은 오히려 정신병이 가진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병은 나의 힘이자 우리의 힘이 된다.

 

나와 내 동료들에게 사람들은 계속 멍청한 말을 던진다. 오늘도 들었다. “비건은 정신병이야. 착한 척 하지마. 너 예민하구나 단백질이 부족해서 그렇니? 고기 좀 먹고 힘 내자.” 그런 이들에게 나지막히 말해주고 싶다. “제가 정신병인가요? 맞는 말이에요. 근데 당신도 약간의 조치가 필요해보이네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고민도 해보고 병원도 가보는 거 어때요?” 이렇게 내 정신병은 남들이 싫어할 걸 알면서도 계속 속마음을 뱉어내게 만든다. 때로는 멈출 수가 없어서 말이 뿜어져 나오다가 말이 막혀 버리고 눈물이 쏟아지는 밤을 보낸다. 이런 나에게 정신병이 어떻게 큰 문제일 수 있겠는가. 난 그저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보고 싶은 친구들, 죽어가는 것들이 받는 고통과 세상의 끔찍함에 대해서 문득 문득 생각이 들 뿐이다. 피로 번진 물에 내 얼굴을 비추고 싶지 않을 뿐이다.

 

 

있잖아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해

근데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어

그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매일 죽이더라고

그걸 보다 보면 생각하다 보면 그냥 안 하게 돼

요즘은 너무 춥고 집 안에도 바람이 들어

부엌은 차갑고 식당은 너무 멀어

배고파

자꾸 애를 써야만 이곳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데

나는 그냥 나에게 박수쳐 주고 싶어

아무 박자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 평생 노력하지 말고 살자 놀고 먹자

그래봤자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너가 있어 기뻐

나랑 스무디를 먹겠다고 약속해줘서

집에 몰래 놀러오라고 해줘서

내가 다음 주에 키친타올 받으면 나눠줄게

이거 재생용지래

곧 보자

같이 고양이도 돌보고 산책도 하자

우리가 죽기엔 세상이 불쌍해

진짜 필요한 존재들은 정작 우리인걸

우리 스스로라도 가치를 알아야해

아직 세상만 모르는 것 같지만

언젠가 알겠지

척으로라도 고개를 끄덕여주겠지

돈을 좀 쥐어주면 좋겠다만

그럼 잘자.

 

...